"왜 카네이션도 못 드리게 해요?" 학생들이 뿔났다

2017-05-16 16:10

이하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서혜린(17) 양은 남몰래 준비한 스승의

이하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서혜린(17) 양은 남몰래 준비한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끝내 담임 선생님께 달아드리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이 "청탁금지법에 어긋나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려던 서 양은 낙담했다.

올해 '스승의 날'(15일)부터 선생님에게 비공개적으로 카네이션을 주는 건 불법이다. '김영란 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시행되면서부터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학생대표가 교사에게 '공개적으로' 주는 카네이션과 꽃만 허용된다. 서 양은 학생 대표가 아닌 데다가, 교무실이라는 비공개적인 장소에서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주려 했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위반인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일선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해당 행위가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렸다. 따로 카네이션을 선물한 학생과 교사가 처벌되는 상황 등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스승의 날' 사제 간에 금액과 상관없이 선물을 주고받으면 위법이다. 돈을 각출해서 선생님을 위해 케이크를 사는 이벤트도 안 된다.

청탁금지법은 선물을 주고 받은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양벌법'이다. 수수 금액이 1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100만 이하면 금품수수금액의 2~5배를 과태료로 내야한다.

◈ 스승의 날은 학생에게도 '작은 축제'였다.

'스승의 날' 또 다른 당사자인 학생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 정겨웠던 스승의 날 풍경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다솔(16) 군은 정이 사라지는 거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군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초코파이 케이크를 준비하고, 풍선을 사서 교실을 꾸며 파티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작은 이벤트지만 정을 나누고 평소 쌓였던 감정을 풀 수 있는 자리였는데 왜 이런 걸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스승의 날 추억이 하나 사라진 거 같아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산시 한 중학교에 다니는 정모 양(15)은 청탁금지법의 원래 취지가 이런 것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정 양은 "스승의 날이었지만 정작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승의 날이 얼마나 남았으니 무엇을 준비하자' 등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정 양은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위해 돈을 모아봤자 천원 이천 원 남짓이다. 아무리 학생이지만 이 정도 금액은 큰 부담이 없을뿐더러 음식을 준비해도 거의 다 학생들이 다 먹는다. 이게 뭐라고 법으로 금지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용돈을 모아 1500원짜리 카네이션 달린 볼펜을 선물로 드렸던 걸 좋은 추억으로 갖고 있다. 지금 청탁금지법에 의하면 선생님과 내가 불법을 저지른 셈"이라며 "진짜 큰돈을 뇌물로 받는 어른들이나 제대로 잡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9일 보도된 "스승의 날 '종이' 카네이션도 불법"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학생 개인 카네이션 금지' 등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다. 해당 기사에 달린 약 3500개 댓글 중 대다수가 현행법이 과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페이스북 이용자 권경준 씨는 "너무 과하다. 반장이랑 부반장이랑 둘이서 천 원씩 걷어서 케이크 등을 준비하고 '선생님 사랑해요'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데 (아쉽다) "는 댓글을 달았다. 해당 댓글은 '좋아요' 약 1만 개를 기록했다.

또 다른 페이스북 이용자는 "감사하는 마음도 마음대로 표할 수 없는 김영란 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댓글은 약 23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2013년도에 찍힌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청탁금지법이 새로 그려낸 '스승의 날' 풍경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는 일부 선생님들에게도 감지된다. 원래 취지인 '감사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행사만 남았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중학교 3학년을 맡은 박모 교사는 "부정청탁법이 마치 교사를 비싼 선물을 받지 못해 혈안이 된 사람으로만 규정하고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스승뿐만 아니라 감사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자율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교육인데, 아이들이 그걸 제대로 배우지 못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고 했다.

수도권 한 중학교에서는 학교 예산으로 생화 카네이션을 구입해 각 반 학생 임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괜한 구설에 오르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학교에서 직접 카네이션 구입까지 한 것이다. 학생 대표들은 스승의 날 행사에 참여해 달아주는 역할만 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돈을 들여 따로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금지됐다.

하지만 새로운 스승의 날 풍경이 후련하다는 반응도 있다. '스승의 날'만 되면 긴장해왔던 부모님들은 15일 인터넷에 홀가분하다는 글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김영란법에 저촉 안되는 범위에서 무언가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또다른 부담을 표하는 부모도 있었다.

home 장순현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