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지루하거나 답답할 때, 주변 인간관계가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 있을 때가 있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끼리 난리가 났는데 어느 순간 나한테만 화살이 쏠릴 때도 있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럴 때가 있노라, 진심 어린 조언들도 와 닿지 않을 때다.
"나는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나를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I don't want to be alone, I want to be left alone)"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도 이런 말을 했더랬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다. 충고나 조언으로 포장된 잔소리, 지적에서 벗어나 혼자 조용한 곳에 있는 걸 꿈꾼다면 말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 가면 도움이 될 적막한 국내외 여행지 7곳을 추려봤다.
1. 거금도 (전남 고흥)
서울 기준으로 거금도는 남쪽 끝자락에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이지만,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 덕분에 붐비지 않는다.
거금도로 들어가는 거금대교에서부터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쭉 뻗은 대교를 따라 들어가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답답한 가슴이 뚫린다. 워낙 섬이 작아 자동차로 쭉 돌아보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거금도를 기준으로 서쪽을 보면 완도, 남쪽엔 거문도, 동쪽엔 작은 섬들을 볼 수 있다. 둥근 돌로 된 해변이 특징인 몽돌 해수욕장과 고운 모래가 반짝반짝 빛나는익금 해수욕장이 나름 유명하다.
여행객이 적은 탓에 숙소는 펜션 또는 민박이 전부다. 만약 낚시가 취미라면, 채비를 꼭 해가자. 이곳 숙소 주인들은 갯벌에서 해산물을 직접 잡아 요리해 먹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2. 자작나무숲 (강원 인제)
강원도 인제 깊은 산골짜기에 길고 하얀 자작나무들이 가득한 숲이다. 자작나무숲은 사계절 중 겨울이 특히 아름답다. 흰 나무기둥에, 나뭇가지마다 내려앉은 흰 눈, 빈틈없이 하얗게 눈 덮인 산자락 모두가 절경이기 때문이다.
자작나무숲은 생각이 복잡할 때 혼자 차분하게 걷기 좋은 곳이다. 숲이 넓어서 여러 관광객이 돌아 다녀도 딱히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없이 버스를 타고 가려면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평일에 가면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다.
자작나무숲에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겨울에 간다면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챙겨 가자.
3. 소나기 마을 (경기 양평)
조용한 곳에 혼자 있고 싶은데, 멀리 갈 수 없다면 소나기 마을을 추천한다. 작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모티브로 만든 마을이다.
소나기 마을은 작아서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 소나기 마을 특징 중 하나는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다. 만약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원하는 노래를 들어도 좋다.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소나기 마을에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오솔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잘 정리된 숲길을 걷고 싶을 때까지 걸을 수 있다.
4. 루앙프라방 (라오스)
라오스는 동남아 중에서도 여행객 손이 그나마 덜 탄 곳으로 분류된다. 지난 2014년에 tvN '꽃보다 청춘'에 소개되면서 20대 배낭여행 필수 코스로 라오스가 포함되긴 했지만 말이다.
라오스 북쪽의 작은 도시 루앙프라방은 그나마 조용하면서도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여행하기 편한 곳이다.
그나마 가장 유명한 관광코스는 '탁발'이다. 아침 일찍 동이 트기 전부터 마을 주민들에게 공양을 받는 의식이다. 엄숙한 분위기라서 정숙을 유지하는 건 필수다.
길고양이가 많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메라 배터리 충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5. 사하라 사막 (모로코)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고 싶다면 사막에 가보자. 사막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로코는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특징이다.
모로코 수도 마라케시 여행자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행사에서 사막 투어를 신청하면 떠날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사막으로 떠난다. 유적지 두어 군데를 지나 사막 초입에 도착하면 낙타를 타고 사막 안으로 들어간다.
밤이 되면 사막은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변한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아득한 별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고민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6. 나트랑 (베트남)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고 싶을 때 베트남 나트랑은 최적의 여행지다. 다낭이나 하노이 같은 베트남 유명 관광지와 달리 한국인에게 아직 덜 알려진 곳이다.
나트랑에서 배를 타고 닌반베이에 있는 숙소를 찾아보자. 이곳에 있는 풀빌라들은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해준다. 방문객끼리조차 마주치지 않도록 설계된 탓이다.
가만히 있다가 인기척이 느껴져도 놀라지 않도록 주의한다. 원숭이나 청설모, 도마뱀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을 공격하진 않는다.
7. 순례자의 길 (스페인 북부)
몸을 고생시키면서 혼자 길게 여행하고 싶을 땐 스페인 북부를 따라 걷는 '순례자의 길'을 추천한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은 어느새 잊게 된다.
순례자의 길의 특징은 여러 가지 감정과 풍경을 다양하게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멋진 풍경을 보거나 좋은 사람과 만나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동시에 너무 힘든 산길에서 절망을 겪을 수도 있다.
순례자의 길을 완주하려면 40여 일 걸리기 때문에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길을 걷는 내내 숙소와 식사는 중간중간 있는 '알베르게'에서 해결할 수 있다. 각 알베르게에는 특색있는 도장이 마련돼 있다. 출발점에서 지도를 얻어 알베르게에 들를 때마다 도장을 찍어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