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덕후' 대한미국놈을 만났다... 메뉴는 당연히 부대찌개 (인터뷰)

2017-01-18 12:00

사진을 누르면 해당 계정으로 이동합니다 / 울프 슈뢰더 트위터 "대한미국놈은... 참이슬보

사진을 누르면 해당 계정으로 이동합니다 / 울프 슈뢰더 트위터

"대한미국놈은... 참이슬보다 처음처럼이 더 맛있다. 처음처럼 내 여보다"

여태껏 한국말을 이렇게 찰지게 하는 외국인이 있던가?

새해 인사는 "부대찌개 많이 받으세요"로, 셀카는 소주병을 껴안고 찍는 미국인이 나타났다. 대한미국놈은 현지인 뺨치는 한국어 실력과 드립력으로 SNS 스타가 됐다. (바로가기)

그는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대한미국사람'으로 SNS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대한미국놈'으로 바꿨다고 한다. '대한미국놈'과 '대한미국새끼'를 놓고 고민했다면서.

안녕하세요. 대한미국놈 김울프입니다 / 이하 위키트리

지난 9일 상수역 근처 부대찌개집에서 '대한미국놈' 울프 슈뢰더(Wolf Schröder·이하 울프 씨)를 만났다. 실례가 될까 망설이며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라고 물었더니 그는 익숙하다는 듯 "아 구공이요"라고 답했다.

턱수염 때문에 중후한 분위기가 났을 뿐 울프(26)씨는 호기심이 눈에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는 2011년부터 한국에서 활동 중인 7년차 e스포츠 캐스터다.

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선 부대찌개와 소주가 필요했다. 울프 씨는 거의 '모든'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부대찌개를 1등으로 사랑하고 소주 덕후에 불닭볶음면, 곱창, 번데기도 문제없다.

"이모님! 여기 부대찌개 2인분에, 라면사리 주세요. 처음처럼~ 있어요?"

위키트리

이 가게에 다섯 번째 온다는 울프 씨가 또박또박 주문했다. (호칭은 주로 이모님, 가끔 누나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양념을 슬슬 섞어주며 익히는 것도 울프 씨 담당이었다. 국자 주도권을 뺏겼다.

-부대찌개 맛있게 먹는 팁이 있는지

제일 중요한 건~ 라면 빨리 드셔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면이 진짜 나쁘게... 그거 좀 중요해요. 부대찌개는 매운 것도 좋고 라면도 좋고 스팸도 좋고... 음식 천국 같은 느낌? 아 두부는~ 별로 관심 없어요

-부대찌개는 언제 처음 먹었나요

2011년 처음 한국 오고 한 달 뒤에 먹었어요. 사진 보고 '별로 맛이 없을 것 같은데' 했는데 먹고 진짜 맛있어서...(말을 잇지 못하다가) 그때부터 진짜 좋았어요

원샷! 크...

울프 씨는 팔꿈치로 톡톡 두드려준 뒤 소주병을 따는 것도, 건배할 때 '짠'도 잊지 않았다. "'처음처럼' 마시면 먹은 다음에 나쁜 맛 없고 다음날 별로 아프지 않아요" 울프 씨는 소맥(소주+맥주)도 좋아한다고 했다. 소주와 피자 궁합을 추천하기도 했다. "피자랑도 나쁘지 않아~"

말하느라 부대찌개를 비우지 못한 채 라면 사리가 불어 버렸다. 안타까워하며 울프 씨는 즉석에서 트윗을 남겼다.

울프 슈뢰더 트위터

-혹시 언어 천재? 한국말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 건가요

한국 오기 전에 한글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배우고 왔어요. 처음 왔을 때 외국인 친구들도 한국말 알려줬고 혼자서 인터넷 많이 했어요

-트위터에서 "개귀엽네", "한국 존나 춥네"라고 한 것 봤다. 독학으로 안 될 텐데...

그건 많이 들어서 그래요 (웃음) '존나' 나쁜 말이란 거 알고 있지만 너무 쓰고 싶어서 트위터에서 썼어요. 처음 한국 왔을 땐 인터넷에서 한국말 배우고 대화에서 써보고 사람들 웃으면 '아 맞았네' (하면서 좋아했어요)

울프 씨의 한국어 실력에는 숨은 비결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게임 채팅이었다. 그는 한글 타자도 꽤 빠른 편이라고 했다. 가끔 '게임 채팅' 부작용도 있었다. 한 번은 카카오톡 프로필에 'ㅅㅅ'을 써놓아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물론 게임에서 자주 쓰는 '샷샷(잘했어)'이라는 의미로 쓴 거였다.

울프 씨는 "팀 게임이면 보이스 채팅도 해요"라고 했다. 그는 "음성으로 하면 맨날 사람들이 '이 병신아 뭐야~니 목소리 왜 그렇게 해. 게임에 집중해'라고 해요"라며 웃었다.

울프 씨는 "제가 '저 외국사람인데요?'라고 해요. 그러면 상대방이 '거짓말하지마'라면서 다시 욕해요"라고 말했다. 그럴 때면 울프 씨는 "Seriously I'm a foreigner. I live in Korea"라고 말하는, 최후의 방법을 쓴다. "너 진짜 (외국인)였구나..."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외국인 맞다니까~

대한미국놈 울프 씨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한국 사랑해요"라고 했다.

울프 씨는 한국에 오기 전, 미국에 살 때에도 아파트에 스튜디오 설치해놓고 혼자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했었다. 큰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고 마침 동영상 제공 사이트 '곰티비'가 그를 캐스터로 한국에 초대했다.

울프 씨가 한국을 접하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미국 애틀랜타 출신인 그는 한국친구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한국 사람 되게 많았고, 한국 사람들 스타크래프트 너무 잘해서... 유명한 선수 임요환(도 있고). 한국 사람들 맨날 공부 잘했고 친하고 싶었어요. 밥도 맛있고. 한국 친구들이 줘서 초코파이 먹어봤고 뿌셔뿌셔? 그것도 먹었어요"

울프 씨가 18살이었을 때 신라면 먹고 찍은 인증샷(왼쪽) 16살 울프씨(오른쪽) / 이하 울프 씨 트위터

울프 씨는 서울 목동, 이대역 근처, 강남 등으로 옮겨 다니며 벌써 7년 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스타크래프트2 해설자로 왔고 이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 다양한 게임을 맡았다. 최근에는 오버워치 해설을 맡았고 현재는 오프시즌이다. 그는 미국, 호주, 유럽 등 해외 팬들에게 영어로 경기를 중계해준다.

울프 씨는 7년쨰 한국에서 e스포츠 캐스터로 활동 중이다

그는 "임요환, 강민, 이윤열... 좋아하는 한국 선수 너무 많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선수 별로 없어요"라고 했다. 선수를 좋아하면 해설이 바뀔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고 했다.

한국어 해설과 한국어 인터뷰를 해내는 게 e스포츠 캐스터로서 울프 씨의 또 다른 꿈이다. "해외 경기에서 한국 선수 이기면 '오 처음 이긴 경기예요. 기분 어떠세요?' 물어보고 선수가 '완전 기쁘고요' 이러면 영어로 (통역해주고 싶다)"며 목표를 말했다. "좀 시간이 오래 걸려야 될 것 같아요. 5년? 10년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울프 씨는 한국에 '더' 살고 싶다고 했다.

"미국 많은 회사들은 나를 원하는데... 돈 많이 줘도... 한국 사랑하니까 가고 싶지 않아요. 가족은 아쉽지만(웃음)" 애정이 있는 만큼 울프 씨는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도 관심이 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달 9일 그는 트윗을 남겼다.

울프 씨 트위터

"친구들이 계속 나한테 박근혜 대통령 얘기 많이 해서 CNN이나... 영어로 뉴스 찾아서 봤어요. 한국 사람들이 왜 싫어하는지. 토론도 가끔 봐요. 저한테 한국, 너무 좋은 나라라서 관심있어야 겠죠. 새로운 선거 반기문, 문재인... 나오는데 보고 있어요"

앞으로도 우리나라 맛집에서 부대찌개 먹는 울프 씨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을까.

"미국에 가 있을 때 맨날 (그리운 건) 부대찌개예요. 미국에서 부대찌개 집 찾았는데 완전 별로였어요. 여기(한국) 너무 좋고 한국말 많이 배웠고 아마 5년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계속 살고 싶으니까~ 아직 몰라요!"

마지막으로 울프 씨는 "진짜 엄청 많이 좋은 메시지 많이 보내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웃긴 트윗 기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울프 씨의 한국 사랑 / 위키트리

이날 울프 씨는 주인 아주머니 부탁으로 가게 벽에 사인을 하게 됐다. 벽에는 울프 씨 친구이자 프로게이머 출신 기욤 패트리(Guillaume Patry) 사인도 남겨져 있었다.

"비정상 회담에 출연하면 어떨 것 같아요?"

"아 안돼요. 내 한국어 더 많이 늘면 그때~"

부대찌개집 벽에 사인하고 있는 울프 씨(뿌듯) / 이하 위키트리

유튜브, WIKITREE - 위키트리

글 = 강혜민

영상 = 김수진

일러스트 = 김이랑(@goodrang)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