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페미니즘 노래' 만든 작곡가·대학생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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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린 '시간을 거슬러', 브아걸 '한여름밤의 꿈', 백지영 '불꽃' 등을 작곡한 유
김 씨는 린 '시간을 거슬러', 브아걸 '한여름밤의 꿈', 백지영 '불꽃' 등을 작곡한 유명 작곡가다.

모란 : (김대현 씨가) 진짜 걱정 했어요. 인터넷에서 엄청 욕 먹는 거 아니냐.
김대현 : 걱정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걱정마. 내가 다 상대할게".
모란 : 전 걱정 안했어요. 이 노래는 개인 경험을 말하는 건데요. 한탄을 담은 노래잖아요. 다른 사람을 교정하고, 비판하는 노래가 아니라.
무슨 노래길래 욕 먹는 것을 각오해야 했을까. 작곡가 김대현(30) 씨와 대학생 모란(이민재·23) 씨가 말한 노래는 'I'm not OK(아임 낫 오케이)'다.
김 씨가 작곡을, 두 사람이 공동 작사를 했다. 노래는 모란 씨가 불렀다. 지난 11일 주요 음원 사이트에 발매됐다. 가사에는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적인 경험을 담았다.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뮤직비디오에는 'Korean Feminist Song(코리안 페미니스트 송)'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해외에는 여성이 겪은 일을 노래한 아티스트도, 음악도 여럿 있다.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Madonna)는 여성의 경험을 무대에서 강렬히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디바다. 해외 일부 대학에는 마돈나가 사회에 던진 질문을 연구하는 '마돈나학'이라는 전공도 생겼다.
비욘세(Beyoncé)도 최근 앨범에 인종·성 차별에 대한 심도 깊은 가사로 화제에 올랐다. '페미니스트'임을 자랑스럽게 밝힌 미국 유명 록커 캐슬린 한나(Kathleen Hanna)도 있다.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영 페미니스트(Young Feminist)'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반면 한국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가수도, 여성의 경험을 담은 대중가요도 찾아보기 힘들다. 김대현 씨와 모란 씨가 만든 'I'm not OK'는 이런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위키트리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Q. '코리안 페미니즘 송'이라니. 이런 부제로 나온 음악은 국내 최초인 것 같다. 운동 차원의 시도인가.
모란(이하 모) : 운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런 문제가,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다.
김대현(이하 김) : 히트곡을 써야한다는 압박, 돈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다.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창작가로서 의미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구구절절 말하는 것보다, (기사에 실리는 사실보다) 때론 음악에 담아 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 믿는다.
Q.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성 차별이라는 주제 때문인가.
김 : 이 노래를 현역 가수에게도 제안하고, 큰 기획사에게도 제안했다. 데뷔 준비 중인 가수에게도 하고.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 다들 참여를 어려워 했다. 논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결국 혼자 녹음해서 소장하려고 생각했는데 모란이가 제안을 받아줬다.
모 : 저야 좋죠! 원래 성 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던 차에 제안을 받아 바로 승낙했다.

김 씨는 가수 린 '시간을 거슬러', 브라운아이드걸스 '한여름밤의 꿈', 백지영 '불꽃' 등을 작곡한 유명 작곡가다. '김박사'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남성이자 잘 나가는 작곡가인 그가 어떤 이유로 성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김대현 씨는 "태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영국 아이들이 많은 국제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인종차별을 겪었고, 자연스럽게 차별에 민감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국에 왔는데, 너무 놀라운 게 많았다. TV에서 여자 연예인이 '저는 연약한 여자니까'라고 말하면 패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든가. 여학생이 힘이 좋으면 '괴력녀'라고 놀린다든가. 컬처 쇼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모란 씨는 김대현 씨 곡을 가이드 녹음(가수에게 곡을 선보이기 위해 예시로 녹음하는 것)해온 대학생이다. 호원대에서 보컬을 전공하고 있다.
모란 씨는 "난 어렸을 때 '힘이 센 여자'였다. '여자 애가 그러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커서는 옷 입는 것 가지고 '여자 애가 그러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날 해코지할까봐 몸사리는 일도 잦아졌다. 왜 내가 무서움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지 답답했다"며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이런 경험이 쌓여 자연스럽게 성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Q. 가사는 어떻게 썼나.
김 : 모란이에게 경험을 바탕으로 편안하게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 글을 토대로 함께 수정했다.
모 : 전부 내 경험은 아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Q. 특별히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나.
모 : '옷을 야하게 입어서도 안 돼. 너를 함부로 평가할 테니까'라는 가사가 좋다. 내가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뿐인데 엄청 쳐다보고, 뭐라 하는 사람이 많다.
두 사람이 만든 노래 'I'm not OK' 가사다.
'I'm not OK' 가사
어렸을 땐 넌 날 괴롭혔지. 치마를 들추며 놀리곤 했어.
남자애들은 그럴 수 있지. I'm OK I'm OK I'm OK.
여잔 순수하고 예뻐야 해. 안 그럼 존중받지 못 할거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해. I'm OK I'm OK I'm OK.
억울해도 말해서는 안 돼. 아무도 듣지 않을 테니까.
창피당하지 말고 조용히 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렇게.
어른이 되면 다를 줄 알았지. 날 함부로 건드는 손이 싫어.
남자들은 그럴 수도 있지. I'm OK I'm OK I'm OK.
옷을 야하게 입어서도 안 돼. 너를 함부로 평가 할 테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I'm OK I'm OK I'm OK.
억울해도 말해서는 안 돼. 아무도 듣지 않을 테니까.
창피당하지 말고 조용히 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렇게.
사랑했던 그 남자만이라도 남들과 다르길 바랐었는데
심지어 넌 내 숨까지 조여오더라.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돼. 너무 기 세 보여서도 안 돼.
수많은 시선을 견뎌내야 해.
늘 그래 왔던 것 처럼 그렇게.
I'm not OK not OK I'm not OK.
I'm not OK not OK I'm not OK.
Q.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원테이크로 녹음했다던데. 노래에 실으려 했던 감정은 무엇인가.
김 : 자기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듯 노래하라고 했다.
모 : 원래는 피아노곡이었다. 너무 우울했다. 가사도 슬픈데, 곡까지 슬프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사람들한테 같이 우울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Q.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김 : 어떤 분이 유튜브 영상 아래 댓글로 "교육자인데 이 노래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적었다. 성 차별 문제는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댓글이 반가웠다.
모 : 성 차별 문화에 예민한 내가 잘못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며 공감 가는 노래 불러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있었다.
유튜브 조회수 50회를 예상했다는 'I'm not OK'. 하지만 17일 오후 5시 기준 10만 9000회 넘게 조회됐다. 이 노래에 공감한 배우 임지연, 오광록 씨가 재능 기부해 제작한 새 뮤직비디오도 막바지 작업만 남겨두고 있다.
노래 비용을 모두 부담해온 김대현 씨는 새 뮤직비디오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는 '행복한 고민' 끝에 뮤직비디오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열기로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크라우드 펀딩을 제안할 계획이다.
'I'm not OK'를 잇는 다음 곡 계획은 아직 없다. 다만 김대현 씨는 "아저씨들이 만든 곡을 그저 불러주는 것 말고, 여자들이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사진 = 전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