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연합뉴스) 최해민 최종호 기자 = 일부 공무원들이 도박에 빠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0일 경기 안성경찰서는 살인 등 혐의로 현직 소방관 최모(50) 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최 씨는 지난 1일 오전 3시께 안성시 A(46) 씨의 집에 침입, A 씨와 부인(57)을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최근 최씨가 도박 빚에 시달린 사실과 최씨가 연행 과정에서 "돈을 빼앗으러 A 씨 집에 침입했다가 싸움이 일어나 살해했다"고 자백한 점 등으로 미뤄,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살인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씨처럼 도박 빚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범행을 저지르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난해 1월 자신의 고향인 산청군의 한 마을 공터에 주차된 차 안에서 경남도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행정실장 B(3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도교육청은 학교 회계를 조사해 B씨가 이 학교에 발령 난 시점인 2013년 1월부터 숨지기 전까지 2년여간 학교 공금 1억8천만 원을 빼돌린 사실을 밝혀냈다.
B 씨는 인터넷으로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지자 학교 공금에 손을 댄 뒤 교육청 감사가 시작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 신안군청 공무원 장모(46) 씨는 2010년 12월께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읍면사무소 명의의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보조사업자의 문서를 위조해 보조사업비를 가로채는 수법으로 6차례에 걸쳐 8천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가로챈 보조사업비를 도박자금으로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 하동군청에 근무했던 C(52) 씨는 지난 2013년 도박 빚과 지병 등으로 명예퇴직하고 나서 다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같은 해 10월 도박 빚을 갚으려고 하동군청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을 터는 등 15차례에 걸쳐 295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해고됐다.
이처럼 제2의 범죄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공무원들이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사례는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40대 공무원은 마카오의 호텔 카지노에서 6년간 2억600만 원 상당의 자금으로 상습 도박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법원으로부터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제주도 소속 한 공무원은 2012년 10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자신의 집과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총 604회에 걸쳐 2억5천641만8천 원 상당의 스포츠토토 등 도박을 한 혐의로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공무원 D(54) 씨는 동네 후배에게 속아 사기 도박판에 발을 들였다가 2011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6억2천여만 원을 뜯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적 특성이 일부 공무원이 도박에 빠지거나 그로 인한 제2의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이창무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전 한국경찰연구학회장)는 "특히 소방공무원은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최 씨처럼 도박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시도가 다른 직업보다 잦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의 경우 업무 스트레스가 도박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며 "더욱이 공무원은 민간기업이나 자영업자에 비해 경제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쉽게 느낄 수 있어 어떻게 보면 도박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부적으로 도박에 연루된 공무원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과 더불어 재무 문제가 있는 공무원을 조기에 찾아 처음부터 도박에 손을 대지 않도록 막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고 공직자로서의 직업윤리 의식에 대한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