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단 하나뿐인 '강아지 해수욕장'이 개장했다

2016-07-28 17:30

애견전용 해수욕장 '멍비치'에 다녀간 개들 / 이하 위키트리(멍비치 제공) 경기도 용인에

애견전용 해수욕장 '멍비치'에 다녀간 개들 / 이하 위키트리(멍비치 제공)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선주(31)씨는 지난 23일 반려견 '망고'와 함께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에 있는 한 바닷가를 찾았다. 국내 유일의 반려견 전용 해수욕장 '멍비치'가 지난 8일 개장했다는 소식을 SNS로 알게 돼서다.

오전에 도착한 이 씨는 망고와 일단 신나게 한바탕 뛰놀았다. 해수욕장에 울타리가 쳐 있어 강아지를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다. 오후가 되자 속속 다른 애견인과 개들이 놀러 왔다. 10여 가족, 20여 마리에 달했다. 이 씨는 유기견이었던 망고가 다른 개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망고는 더욱 신난 듯 개 친구들과 해변을 누볐다.

망고가 해변을 뛰놀 동안 이 씨는 다른 애견인들과 사료나 간식, 훈련 정보 등을 나눴다. 그는 "망고가 분리 불안증이 있어서 휴가를 꼭 같이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멍비치'는 강원도 양양 남애해변 내 모래사장 약 100m 구간에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들어갈 수 있는 바닷물도 얕다. 해변에서 약 40m 떨어진 곳에 부표로 울타리를 쳐놨는데, 깊이가 1m 20cm밖에 되지 않는다. 성인 남성 허리춤에 그치는 깊이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세운 조치다.

'강아지 해수욕장' 설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강원도 지자체가 사근진 해수욕장을 애견 전용으로 운영한 적 있지만 수개월 만에 폐장했다. 주민들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멍비치'를 설치한 이는 개 두 마리를 키우는 부부 천의철(51)·한 모(37)씨다. 한 씨는 "우리가 키우는 라라와 초코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해변 공간을 원하다가 직접 만들게 됐다"고 했다. 일반 해수욕장에는 개를 데리고 가지 못한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부부는 본업을 잠시 젖혀두고 여름 두 달 동안 애견전용 해수욕장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막상 절차와 요건을 알아보니 쉽지 않았다. 개장을 위해 6개월이나 노력해야 했다.

천 씨는 "수백, 수천 km 대한민국 해안선 중에 강아지가 들어갈 수 있는 해변 100m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했다.

가장 힘든 점은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한 씨는 "처음에 일부 주민들은 개털이 날리고 똥을 아무 데나 쌀까 봐 우려했다"고 말했다. 천 씨는 "계속 소통하고, 노력하고 성의도 보이면서 이장님과 합의했다"고 했다. 아직도 주민 일부는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한다.

천 씨 부부는 혹 주민들 항의가 들어올까 봐 철저히 관리한다고 했다. 부부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매일 2번씩 모래사장을 소독한다. 한 씨는 "파도에 씻겨 바닷물에 들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검사를 받은 제품만 쓴다"고 말했다. 수시로 털 뭉치도 주워 없앤다. 그는 "올해 영업이 끝나면 정식으로 수질 검사와 환경 평가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설물 치우는 방식도 남다르다. 방문객들이 개똥을 가져오면 천 씨 부부는 선물을 준다. 선물은 애견 간식이나 여행용 샴푸, 사료 등이다. 방문객에게 추억을 주고 배설물을 아무 데나 버리지 말자는 취지도 있다. 한 씨는 "다른 사람이 미처 치우지 못한 개똥까지 갖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며 "하루에 30L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개똥으로 꽉 찬다"고 말했다.

애견전용 해수욕장에 입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개를 동반하지 않은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개와 애견인을 보호하기 위해 천 씨 부부가 세운 원칙이다. 진돗개나 셰퍼드 같은 맹견류는 입장 금지다. 다른 관광객과 개들 안전을 위해서다. 키가 30cm 이상인 큰 개도 입장하기 어렵다. 위협적으로 느껴져 주민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전 사고에 대비해 수상안전요원은 필수다. 매일 해양경찰에게 점검받고 있다. 천 씨는 "안전 요원과 청소하는 아르바이트 생까지 쓰려면 입장료(사람 1명, 개 1마리당 4000원)을 받아도 적자"라고 설명했다. 개장 20여 일만에 천 씨 주머니에서 나간 돈만 800여 만원이라고 했다.

강아지 해수욕장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개장 20여 일 동안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개장 첫날 '웰시코기 동호회'를 초청한 이후 지금까지 평일 20여 가족, 주말 40~50가족이 애견전용 해수욕장을 찾았다. 주말에는 보통 60여 마리 개들이 북적인다.

벌써 2번째 이용했다는 한 관광객은 "한국 어디에서 우리 집 강아지와 함께 눈치 안 보고 해수욕을 즐길 수 있겠느냐"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바다에서 노는 개 / 위키트리(멍비치 제공)

운영자 천 씨 부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개 7마리를 데려온 '애견 부부'다. 그는 "원래는 3마리만 키우다가 이들이 낳은 새끼까지 거뒀다고 하시더라"며 "개들을 돌보느라 정작 부부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셨다"고 했다.

부부가 꼽은 '수영왕'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수영이 특기로 물놀이에 강한 견종이다. 천 씨는 "주인이 먼저 지쳐서 말릴 때까지 물놀이를 즐긴다"고 웃으며 말했다.

개에게도 바다는 즐거운 놀이터다. 23일부터 나흘간 애견전용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보낸 이선주 씨는 "강아지가 정말 신나게 노는 게 좋았다"며 "8월에도 다시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영왕' 래브라도 리트리버 / 위키트리(멍비치 제공)

해변에서 신난 망고 / 위키트리(이선주 씨 제공)

개가 바다 수영을 해도 건강에 무리가 없을까? 전문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앞선동물병원 홍진원 원장은 "바닷물 때문에 피부 문제가 생길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다. 대신 사람과 마찬가지로 바다 수영 후 소금기를 제대로 씻어내야 한다. 홍 원장은 "흐르는 물로 충분히 씻어 내면 샴푸는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개와 사람이 함께 바다 수영을 해도 인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한 가정의학 전문의는 "개와 사람이 함께 수영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공식적 발표는 현재까지 없다"며 "개 또는 사람이 심각한 피부 질환에 걸려 있지 않은 이상 문제 될 건 없다"고 말했다.

home 이정은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