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위해?"
친구의 '돌직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1살 이맘 때였던 것 같다. 여자친구들과 나누는 수다에 '자위'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소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섹스'는 터놓고 말하기 쉽다. '자위'는 쑥스럽다 못해 어쩐지 수치스럽다. '너무 밝히는 애'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러면 안될 것 같다.
"나 자위해". 굳이 동네방네 소문낼 일은 아닐 수 있다. 다만 궁금한 것들은 편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건강과 관련된 질문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지 궁금했다.
또래 여성 의사 한 분이 기꺼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산부인과 윤정원 의사다.
"자위는 몸을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예요. 내 몸을 보고 만지면서 거부감을 없애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내 몸과 관계맺는 걸 시작으로 파트너와, (건강 관련해선) 의사와 관계가 확장될 수 있고요"
비가 세차게 내리던 오후 녹색병원 진료실에서 윤정원 의사와 만났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성들의 질문, 주변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것, 내가 묻고 싶은 질문 등을 추리니 10가지였다.
Q1. 대체 '자위'가 뭐죠? 여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요.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습니다. 자위란 성감대를 스스로 자극해서 쾌감을 얻는 행위를 말합니다. 내 몸을 만지며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남자는 성감대가 페니스에 집중돼 있는 반면 여자는 몸 구석구석에 성감대가 많이 있습니다. 가슴, 유두부터 시작해 팔꿈치, 귀, 목 등을 만지면서 몸 어디에 쾌감을 주는 곳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자위를 파트너와 함께 즐길 수도 있죠. 서로 자위하는 모습을 본다거나 도와주는 건 대표적인 전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Q2. 성기를 아무데나 만져도 괜찮은가요?
손을 깨끗이 씻었다면 상관 없습니다. 질 안에 손가락 등을 넣을 때는 윤활제나 콘돔을 이용하면 더 좋습니다. 클리토리스(음핵)는 외부에 노출돼 있어서 오르가즘을 느끼기 더 쉬운 편입니다. 자위가 처음이라면 클리토리스부터 자극해보시길 추천합니다.
Q3. 연필, 오이, 펜 등등을 질 안에 넣어도 괜찮은가요?
안전한 섹스토이를 쓰세요. 질 안에 무언가를 넣을 때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시고요. 콘돔을 찢는 뾰족한 물건은 절대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연필, 펜 안 된다는 거죠.
환자 중에 오이로 자위를 하다 장까지 파열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너무 크고 두꺼운 물건을 질 안에 넣는 건 위험합니다. 삽입하는 물건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질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케겔운동만으로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케겔운동(Kegel exercise)
치골에서 꼬리뼈에 이르는 치골미골근을 수축, 이완하는 운동. 요도와 항문, 괄약근은 물론 성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Q4. 욕조 안에서 자위를 하면 건강에 안 좋다던데...?
비눗물이 질 안에 들어가면 몸을 보호하는 세균이 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냥 물은 괜찮아요. 수압이 클리토리스(음핵)를 자극하는 정도라면 샤워기를 사용하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질 안에는 유산균이 있습니다. 치즈, 요구르트를 만드는 그 유산균입니다.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는 흰색 질 분비물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유산균 때문에 질 안은 산성 상태로 유지됩니다. 그런데 비눗물은 알칼리성이죠. 비눗물이 질 안에 들어오면 질 내 균형이 깨지면서 다른 세균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씻을 때도 비누보다는 여성용 청결제나 세정제를 사용하길 권합니다. 쉽게 말해 산성비누죠.
Q5. 자위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는 게 있나요?
딱히 자위 시작하기 좋은 나이란 없습니다. 말했던 것처럼 자위는 몸을 알아가는 자연스런 과정이기 때문이죠. '내 몸'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5~6세 유아기부터 2차 성징이 이루어지는 10대 초반에 처음 자위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Q6. 자위를 하면 성병에 걸리기 쉬운가요?
자위와 성병은 전혀 상관 없습니다. 성병은 말 그대로 성관계로 전염되는 질병이거든요. 더러운 손으로 성기를 만진다면 본인 세균에 감염될 수는 있습니다. 위생과 청결은 기본입니다.
Q7. 자위하면 파트너와 섹스할 때 안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뭐라 답할지 짐작이 되죠? 자위를 하며 나의 성감대, 좋아하는 자세, 좋아하는 부위 등을 알게 되면 파트너와 섹스할 때도 더 도움이 됩니다. 섹스는 단순 성적 쾌락만이 아니라 관계적인 부분도 중요하죠. '나는 이렇게 해주면 좋아', '나는 여기가 성감대야'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 섹스 만족도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Q8. 적당한 자위 빈도가 있나요?
정해진 적당한 빈도라는 건 딱히 없습니다.
Q9. 자위 해봤는데 아무 것도 못 느꼈어요. 문제있는 건가요?
성감대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길 권합니다. 방법이 잘못됐을 수도 있어요. 자극 부위, 강도, 방법을 달리 해서 시도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갑자기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합니다.
Q10. 자위를 하다보니 성기가 간지러워졌어요. 어떻게 해야해요?
질염이거나 너무 자주 씻어서 간지러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저는 생활습관부터 돌아보라고 조언하는 편입니다. 비누로 너무 자주 씻으면 아까 말했듯 질 안 산성 환경이 깨질 수 있어요. 젖산이 있는 세정제를 쓰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세정제도 화학약품인 경우가 많으니 하루 1~2회만 쓰시고, 물로 씻는 게 가장 좋습니다.
어렸을 때 배변 훈련이 잘못 돼 항문에서 질 방향으로 닦는 분들도 교정이 필요합니다. 오물이 질 안에 들어와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렵거나 질 분비물이 이상하면 산부인과에 내원하시길 바랍니다. 질 분비물이 노랗거나 콩비지처럼 하얗게 뚝뚝 떨어지고 생선 비린내 같은 악취가 난다면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산부인과를 찾으면서 쭈뼛쭈뼛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내진이나 질초음파 같은 불편한 검사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이경을 넣어 귀를 보는것도, 마우스피스로 입을 벌리는것도 불편하긴 매한가진데 유독 성을 금기시한다거나 터부시 하는 게 여성들의 산부인과 문턱을 높이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좀 더 자신 몸의 신호에 예민해지고, 아프거나 이상할 때 병원에 오고, 건강하고 즐거운 성관계를 하고, 적극적으로 언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지 주체적으로 결정하면 좋겠어요. 자위도 그런 맥락에서 내 몸을 알아가고 소통하는 과정이라 저는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