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하면 500원, 싸우면 2000원" 학교들 벌금제 운영

2016-01-16 16:05

#고등학교 2학년인 A양의 학급에선 교칙을 어기거나 지각하면 벌금을 걷는다. 뉴스1 (서울

#고등학교 2학년인 A양의 학급에선 교칙을 어기거나 지각하면 벌금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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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최은지 기자 = #고등학교 2학년인 A양의 학급에선 교칙을 어기거나 지각하면 벌금을 걷는다. A양은 어딘지 꺼림칙했지만 담임선생님이 액수를 정할 때 친구들의 의견도 들어주었고 걷은 돈으로는 '피자 파티'를 열겠다고 하니 별다른 불만 없이 벌금제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학교 3학년인 B군은 2만원이 넘게 쌓인 벌금 때문에 학교 가는 길이 두렵다. 몇번 늦잠으로 지각하고,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잡담한 것이 들켰다는 이유로 벌금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용돈으로 메우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 됐다. '잘못해서 내는 돈'이라는 생각에 벌금을 위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도 무섭다.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지각이나 학습태도 불량 등 교칙이나 자체적으로 정한 학급 규칙을 어길 때 돈을 내도록 하는 '벌금제'를 운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은 걷은 벌금을 '학급비'로 지출하거나 학기 말에 친구들과 함께 피자를 먹어 공적인 일에 쓴다는 생각에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중학교에 재학 중인 임모(15)군은 "학급마다 돈 걷는 경우는 다르지만 벌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지각할 때마다 500원에서 1000원씩 걷는다"고 말했다.

임군은 "돈 관리는 주로 담임선생님이 하고 학기 말에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피자나 치킨을 사주는데, 학기당 30만원 정도가 모이는 것으로 안다"며 "선생님 스스로도 돈을 걷거나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 무조건 벌금을 걷지 않고 봐주는 경우도 봤다"고 설명했다.

고3 같은 반 친구사이인 이모(19·여)양과 조모(19·여)양은 "우리 학교는 염색, 파마, 귀걸이 착용 등은 괜찮은데 교복을 입지 않으면 벌점을 매기고 지각하면 벌금을 내게 했다"며 "벌금 액수는 반 친구들 투표로 1000원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학교 때는 1분당 100원씩이어서 어쩌다 보면 1만원 넘게 내는 친구도 있었다"며 "나중에 지각비로 음식을 사먹곤 했지만 친구들이 낸 돈으로 그러는 게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을 앞둔 조모(19)군은 "보통은 벌금 액수를 애들끼리 정하도록 하거나 선생님이 금액을 정하기도 했다"며 "아이들은 '내가 지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교생 이모(18)군은 "다른 방법으로 벌을 줄 수도 있는데 돈을 걷는 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잘못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벌을 주는 방식도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벌금제 운영이 올바른 교육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문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교 교사인 손모(45)씨는 "다른 반에서 지각비를 운영하는 사례를 본 적은 있다"며 "아무리 적은 액수라고는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1000원마저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학생도 있다. 그래서 벌금제도를 운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벌금이 많이 쌓이면 아이들이 자포자기하고 돈을 내지 않기도 하는데 그때 별다른 조치방법도 없다"며 "규율이 무너지게 되면 더 큰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각비 운영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 역시 교사가 학생들에게 벌금을 걷을 권한도 없고 교육적으로도 옳지 못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느 누구도 교사나 학교에게 학생에 대한 형사적 처벌권한을 부여한 적 없다"며 벌금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 교수는 "학교에서 교장이나 선생님이 학생에게 벌금을 걷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며 "학생들이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동의가 아니라 집단적 강제가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동의여서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교육의 목적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것인데, 벌금을 걷는다면 잘못을 돈으로 갚을 수 있다는 '배금사상'을 심어줄 수 있다"며 "규칙 위반에 자주 걸리는 아이들이 주로 따돌림당하거나 소외당하는 아이들인 경우가 많아 벌금제가 소외나 따돌림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할 우려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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