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가 단수형? 미국 방언학회 '올해의 단어'

2016-01-13 11:33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미국 방언학회(ADS)가 단수(單數)형 중성 명사로서의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미국 방언학회(ADS)가 단수(單數)형 중성 명사로서의 '데이'(they)를 '201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they는 '그들'을 뜻하는 복수형 대명사이며 소유격은 '데어'(their)라고 외운다.

물론 14세기 바이킹족 등 침략자들을 가리킬 때 they를 단수형으로 쓴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 삼위일체의 신이자 유일무이의 절대자를 믿는 기독교문화에서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 유일한 존재를 지칭할 때엔 예외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설명도 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불분명한 상황이거나 성별을 언급하고 싶지 않을 때 '누구(든지)'라는 뜻으로 he나 she 대신에 they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이하 연합뉴스

하지만, 엄연히 기존 주류 문법에서 they는 '그들'을 뜻하는 복수형 3인칭으로 사용돼 왔다.

그럼에도, 지난 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ADS 연례총회에서 200여 명의 언어학자들은 "성(性) 중립 명사로 사용할 때는 단수형으로 쓰이는 the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는 예컨대 "Everyone wants their cat to succeed."에서 '누구나'라는 뜻의 every는 단수임에도 그 소유격을 their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 문법대로라면 "Everyone wants his(or her) cat to succeed."로 써야 맞다.

그러나 ADS가 '엄격한 문법 고수주의자'들이 경악할 만한 일을 결정한 것은 남성(he)·여성(she) 대명사나 소유격 대신 성(性)중립적 언어를 쓰려는 새로운 추세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화장실의 남녀 구분을 표시한 구글의 이미지 검색 사례들. 전통 영어문법에선 명사나 대명사 등의 남녀 성별 구분이 뚜렷했으나 제3의 성이나 성별의 구별이 필요 없는 경우를 지칭하는 단어 및 용법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ADS 투표를 주관한 언어학자 벤 짐머는 "사실 단수형 they는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번 기회에 성 정체성이나 중립 등과 관련한 생각들이 확산하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WP도 자사의 2015년판 스타일북(표기원칙규정집)에 단수형 they를 공식 채택하면서 "이는 일상 용어가 된 점을 반영하는 것이자 영어에 성 중립적 3인칭 단수 대명사가 없음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치 남성에 대한 존칭 미스터(Mr)와 여성에 대한 존칭 미세스(Mrs)나 미스(Ms) 대신 믹스(Mx)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ADS의 언어학자들도 '올해의 단어'로 "고마워, 오바마"(thanks, Obama)나 '온 플리크'(on fleek) 등 여타 후보 단어 대신에 압도적 찬성률로 they를 채택했다고 짐머는 밝혔다.

'고마워, 오바마'는 미국 보수파들이 허리케인이든 에볼라 환자 발생이든 경찰관 피살이든 툭하면 모든 걸 오바마 탓으로만 돌릴 때 쓰는 반어법적 유행어다.

'온 플리크'는 '눈썹이나 머리칼을 매끈하게 다듬은'이라는 원뜻에서 '결점 없이 훌륭한'이나 '스타일 살아 있네' 등으로 의미가 확장된 유행어다.

미국 대선 공화당의 선두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후보가 2015년 12월 2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서남부 그랜드 래피즈 선거유세 중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그는 이날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한 사실을 거론하며 "클린턴이 이길 판이었는데, 오바마에 의해 'X됐다'(got schlonged)". 클린턴은 졌다"며 상소리를 해대 빈축을 샀다.(AP=연합뉴스 사진DB)

◇ '올해의 단어'엔 사회상 녹아 있어 = 1889년 창설된 ADS가 1990년부터 발표해온 '올해의 단어'에는 당시의 정치·사회상이 반영돼 있다.

지난해 경우 경찰이 비무장 흑인 10대 소년을 사살한 사건과 관련해 마국 사법제도의 인종주의적 차별에 항의하는 운동으로 사회적관계망(SNS)에 해시태그를 달며 시작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blacklivesmatter')가 선정됐다.

2011년엔 빈부격차와 사회모순에 항의하며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스트리트를 점거한 시위에서 비롯된 '점령하라'(occupy)가 선정됐다.

올해의 또 다른 후보 단어로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뜻하는 'CRISPR'이나, 아주 좋은 기분이나 강한 긍정을 표현하는 네티즌들의 감탄사 '야~~~~스!'(YAAASSSSS!)도 후보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며 사용한 '슐랑'(schlong),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얼굴표정을 지칭하는 '피시 게이프'(fish gape)도 후보에 올랐다.

'슐랑'은 남성 성기 또는 'X됐다, X나게 깨졌다'는 뜻의 속어로 트럼프는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에 패배한 것을 두고 이런 표현을 써 여성비하 상소리를 한다고 비판받았다.

구글 이미지 검색이 제시하는 유명인들의 '물고기 하품'(fish gape ) 표정들.

gape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다' 듯의 동사다. '물고기 하품'이라고도 하는 '피시 게이프'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시상식 등에 등장할 때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리는 것처럼 뺨을 약간 쏙 들어가게 하고 입술을 살짝 벌린 표정을 짓는 일이 많자 여성들이 이른바 셀카를 찍을 때 이를 흉내 내는 일이 유행하며 퍼졌다.

이밖에 공유경제를 빙자한 일종의 사기성 마케팅을 돈세탁에 비유해 비판하는 '셰어워싱(sharewashing 공유세탁), 보통 아버지들처럼 축 늘어진 몸매를 빗대는 말 '대드바드'(dadbod 아빠체형), 형용사 뒤에 'af'를 습관처럼 붙여 뜻을 강조하는 유행어 등도 후보에 올랐다.

구글 이미지 검색이 제시하는 숫자 '100 이모티콘'의 여러 사례.

디지털 시대 젊은이들의 데이트 풍경과 관련한 단어들도 대거 후보로 등장했다.

WP에 따르면, 오늘 날 미국 젊은 남녀의 본격적 관계는 '넷플릭스 & 칠'(Netflix and chill)이라는 말로 초대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영화 등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넷플릭스를 함께 보면서 '칠 아웃'(chill out 긴장을 풀고 쉬자) 하자며 성적 유혹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한국의 '라면 먹고 갈래?'와 유사하다.

사귀다 맘에 안 들면 이들은 '고스츠'(ghosts)한다. 마치 유령처럼 일체의 디지털 연락을 갑자기 끊고 관계를 끝낸다는 뜻의 동사이다. '잠수탄다'는 말과 같지는 않지만 유사하다.

때로는 '가지 모양의 이모티콘(그림문자)'(eggplant emoji)을 보내면서 다시 정열을 불태우기도 한다. 이 이모티콘은 남성의 고환, 즉 성적인 상징이다.

ADS는 이것 외에도 올해 처음으로 숫자 100 이모티콘(100% 지켜라, 진짜 지켜라는 뜻) 등 몇 가지 이모티콘을 후보군으로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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