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누웠다. 관은 팔을 제대로 뻗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고 바닥은 딱딱했다. 그대로 눕자니 뒤통수가 아파 옆으로 누워야 했다. 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쾅쾅쾅'하는 소리와 함께 관 뚜껑이 연이어 닫혔다. 곧 내가 누워 있는 관까지 '쾅'하고 닫혔고, 그 이후엔 눈을 떠도 암흑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좁고 딱딱한 관속에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임종 체험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연말을 맞아 지금까지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불평만 많아지고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무료로 임종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알게 됐다.
지난 19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이날 임종 체험은 나를 포함해 모두 49명이 참여했다. 참여한 연령층과 참여 이유도 다양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부터, 앳된 얼굴로 친구들과 함께 찾은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송예슬(29) 씨는 "서른이 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였다. 모든 것을 리셋하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마음에 임종 체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인수(59) 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나이도 그렇고, 죽음을 차차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험하러 왔다"고 했다.
임종 체험은 영정사진 촬영을 시작으로 이루어졌다. 일렬로 줄을 선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영정사진을 찍는 태도도 저마다 달랐다.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소 어색한 웃음을 짓거나 긴장한 표정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 촬영 이후 50여 분 정도 이어진 강의는 곧 맞게 될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의를 맡은 효원힐링센터 정용문(53) 센터장은 앞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사건 등을 들면서 삶의 유한성을 언급했다.
그는 "(그럼에도) 하루에 평균 39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며 "학생부터 노인까지 고민이 없는 시기는 없다. 이들은 학교 성적 비관, 남편의 바람 등 다양한 이유로 생을 마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살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 죽어야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죽음을 앞두고서야 삶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임종체험도 그러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의가 끝나니 강의실 밖에 놓인 탁자 위에 영정 사진이 나와 있었다. 양쪽 대각선 아래로 검은 띠가 둘러진 영정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기 사진을 찾았다. 항상 보던 자신의 얼굴이지만 이상하게 다소 낯설게 보인다는 점이 주된 반응이었다.
사진을 받아들고 자리로 다시 왔다. 이후 직원 안내 하에 임종체험관으로 이동했다. 임종체험관에 가기 위해선 어두컴컴한 '저승계단'을 거쳐 가야 했다. 정말 이름처럼 저승으로 가는 곳 같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컴컴해 혼자 가기엔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안내하는 직원과 앞사람들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선 저승사자 복장을 한 직원들이 참여자들을 체험실로 안내했다. 널찍한 방에는 딱딱한 나무로 된 관 수십 구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엔 죽은 사람들이 입는 수의가 있었다.
체험실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죽음을 앞둔 환자가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내용이 담긴 영상을 봤다. 영상이 끝난 후 정 센터장은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가족에게 나는 어떤 존재고, 나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이후 수의를 차려입었다.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을 직접 입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얀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수의는 155cm인 기자에겐 다소 컸다. 일반 성인 남성들 경우에도 무릎을 덮는 길이였다.
관이 놓인 곳에서 수의까지 입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니 정말 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욱 임종체험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유언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하는 편지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한 다양한 문제들도 머리를 스쳐갔다. 유언서를 작성하면서 훌쩍이는 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유언서를 작성한 후 참여자 대여섯명의 낭독이 이어졌다.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이들이 유언서에 적은 내용은 비슷했다.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고, 지난 삶을 반성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낭독하면서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기도 해 애잔한 마음을 줬다.
40대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은 "엄마가 이렇게 먼저 하늘나라로 가게 돼서 미안해. 더 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열심히 살기로 했는데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 더 많이 못 챙겨준 거 너무 미안해"라고 했다. 이어 지난 인연에 대한 그리움과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향한 애틋함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옛날 친구들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먼저 가신 어머니, 아버지 이제 다시 만나요"라는 말을 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로 보였던 젊은 남성은 가족들보단 친구들을 우선시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는 "항상 말도 잘 안 듣고 애정 표현도 안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너무 후회되고 죄송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항상 저를 사랑으로 보살펴줬던 어머니, 아버지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는 말을 남겼다.
낭독이 끝난 후 관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이후 조심스럽게 관 안에 누웠다. 관은 비좁고 딱딱했다. 팔을 벌릴 공간도 없었다. 몸을 움추리고 팔을 모아 배 위에 올려뒀다. 저승사자 복장 차림을 한 관계자들이 차례로 관뚜껑을 닫았다. '쾅쾅쾅' 닫히는 소리가 무섭게도 느껴졌다. 이윽고 내가 누워있던 관뚜껑도 닫혔다. 짧지만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깜깜했다. 평소같으면 금방 지나갔을 10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관에 들어가 누우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삶을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욕심을 부려도 어차피 마지막엔 다들 이렇게 딱딱하고 비좁은,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관에 들어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함께 지난 삶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 갔다.
이후 "저승에서 우리를 힘들게 한 나쁜 것들은 모두 두고 오시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둡기만 했던 체험실은 불이 켜졌고, 그 불빛은 관 속에도 전해졌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셨다"는 말이 들리면서 차례로 관 뚜껑이 열렸다. 관이 열린 후, 힘차게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이어 함께 임종 체험을 했던 주변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새로 태어났다는 기분 때문일까.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끝난 후 수의를 입은 상태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의를 벗은 후, 겉옷을 챙겨 입고 있었던 김지원(45) 씨는 "관에 있으면서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자한 표정이 눈길을 끌었던 정대상(52) 씨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효원힐링센터 정용문 센터장은 임종 체험이 종료된 후 내게 "2012년 12월부터 임종 체험 행사를 시작하게 됐다. '효원상조'라는 장례전문회사에서 기업봉사 차원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자살률도 높고 생명경시 풍조가 점차 심화되는 가운데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일깨우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10대 학생부터 80대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찾는다. 이곳을 찾고 기존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이혼을 결심하고 온 부부라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그 경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