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초'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립스틱을 예쁘게 바를 수 있지만 전체 메이크업을 하기에는 너무 짧고,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세 숟가락 이상 뜨기 어렵다.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그냥 다녀만 올 수 있을 거 같다.
1분이 조금 넘지만 그렇다고 많이 넘지는 않는 '72초' 그 시간 동안 누군가의 일상을 깊숙이 파고드는 이들이 있다. 72초 짜리 영상에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 제작사 '72초 TV'다.
"질질 끄는 거 이제 그만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72초뿐이야"
'72초 TV'는 '흔남(흔한 남자)' 도루묵을 주인공으로 하는 '72초 드라마' 시즌 1, 2를 제작했다. 지난 5일에는 모든 일에 구실을 찾는 30대 '흔녀(흔한 여자)' 오구실을 내세운 초압축 감성드라마를 공개했다.
네이버 TV캐스트, 72초TV '72초드라마 시즌1 예고편'
'72초 드라마' 시즌 2는 페이스북에서 회당 1백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2백만 건을 넘긴 에피소드도 있다. 72초 짜리 짧은 영상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19일 서울 삼성동 '72초 TV' 사무실에서 성지환 대표(38·오른쪽)를 만났다.
성 대표는 5년 간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공연업체 '인더비'를 설립했다.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으면서도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해 인더비를 접고 올해 2월 '72초 TV'를 만들었다.
'72초 드라마' 주인공 도루묵 역의 진경환 씨와 '72초 TV' 성지환 대표
'72초 TV'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72초 TV는 프랑스 '브레프(bref)'라는 시트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짧은 영상이라 모바일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참고해 2년 전 처음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작년 여름에는 '시즌0'을 찍었다. 지금같이 우리만의 형식으로 만드는 데 2년이 걸렸다.
왜 하필 '72초'인가?
60초, 70초, 80초 다 입에 착착 감기지 않더라. 그러다 72초를 발음했는데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회사명을 '72초'로 정하게 됐다.
기존에 짧은 영상들과 어떻게 다른가?
'바인'처럼 6초 짜리 영상도 있지만 그건 순간에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거다. 1~ 2분이 넘어가는 영상은 잘 만들려고 하면 또 긴 시간이다. 기존 짧은 영상과 비교해 완결성과 완성도가 있고 미술에도 신경을 쓴다. 짧지만 퀄리티있고 기승전결이 담긴 콘텐츠를 목표로 한다.
"콘텐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상'과 '공감'이다"
인기가 있는 건 '72초'라는 형식 때문인건가.
화제가 된 이유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분분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감'과 '일상' 이야기라는게 제일 크다. 그 다음이 형식인 거 같다. 앞으로 만들 콘텐츠도 형식은 다르지만 공감되는 내용을 다루는 건 같다.
72초 TV 콘텐츠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일상'인건가.
일상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생긴 건 공연제작사를 할 때 부터다. 공연제작사 ‘인더비’를 할 때 뭐가 재밌는지 서로 토론하고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 찾은 게 '일상이 제일 재밌다'였다.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일상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일상이 재밌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멤버들 끼리는 그런 공감대가 생겼다.
성 대표가 추천한 '72초 드라마' 시즌2 2회다.
네이버 TV캐스트, 72초TV '72초드라마 시즌2'
'72초 드라마'는 짧은 시간 안에 속도감 있는 음악, 랩같은 내레이션, 빠른 편집 기법을 사용한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호평을 받는다.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 해 본 상황, 엘리베이터 안에 모르는 남녀 둘만 탄 상황 등. 누구나 겪어 봤을 법한 익숙한 순간을 잡아 뇌리에 스치는 많은 생각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72초 드라마' 시즌 1,2 도루묵 역의 진경환(34) 감독은 각본, 연출, 연기, 영상 편집까지 1인 다역을 맡고 있다. 첫 영상 제작 당시 도루묵 캐릭터 역시 진 감독의 평소 모습에서 착안했다. 현재 외부에서도 섭외 요청이 올 정도로 인기다.
도루묵 여자친구 역의 신인 배우 장희령 씨는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존예 보스 갓희령'이라는 별명이 지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매번 다른 플랫폼 시도를 하고 있다"
삼성과 한 콜라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브랜드와 콜라버레이션 할 때는 우리 콘텐츠와 연계성이 있는 경우에만 하고 있다. 우리 콘텐츠 특별편으로 나가기 때문에 상관없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
'대놓고 광고'라고 보여주는 거 같았다.
맞다. 대놓고 '이건 광고에요'라고 만들었다. 제목부터 ‘광고'를 지향했다. 광고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콘텐츠인 것과 콘텐츠라고 하지만 광고인 것은 다른거 같다. 우리는 전자 쪽이다. 콜라보레이션 할 때 어설프게 콘텐츠라고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나?
유통 수익은 굉장히 작다. 100만뷰로 대박이 나도 100만 원이다. 국내 시장은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적다. 그래서 중국 시장도 찾고 있다.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으로 기반을 가져가고, 모바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중이다.
72초TV는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을 경험하는 거 같다.
플랫폼을 고정해놓지는 않았다. 콘텐츠마다 성격이 달라 여러 플랫폼을 경험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채널도 이제야 준비중이다. 슬슬 유튜브를 기반으로 우리 콘텐츠를 한 채널로 몰 생각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콘텐츠를 다양한 채널에 실을 예정이다. 어느 한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으려고 한다.
72초 TV 자체가 플랫폼화 될 가능성은?
우리는 아직 플랫폼은 아니다. 콘텐츠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외부에서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팀이 있으면 도와주고 할 예정이 있다.
"제작진이 모두 여성인 19금 콘텐츠를 만들 예정이다"
앞으로 나올 콘텐츠는 기존 72초 드라마와 유사한가? 예를 들면 속도감있는 음악과 내레이션 같은...
길이는 72초와 유사할 거 같다. 하지만 속도감은 우리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 나온 오구실도 그렇고. 하지만 콘텐츠마다 리듬감은 있다.
새로운 콘텐츠는 어떤 게 있나?
다음 주쯤 뉴스 콘텐츠를 오픈할 예정이다. 뉴스 포맷을 갖추고 있는 콘텐츠라고 보면 된다. 내용은 정말 사소한 일을 뉴스처럼 다루거나 있음 직한 일을 다룰거다. 뉴스 외에 음악 콘텐츠, VR 콘텐츠, 19금 콘텐츠도 제작 중에 있다.
19금 콘텐츠?
우리나라 성인 콘텐츠 시장이 있지만 대부분 안 좋은 콘텐츠가 꽤 많다. '19금 콘텐츠도 잘 만들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전 제작진이 여성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기획을 여성 멤버가 했고 더 편하고 자유롭게 제작하기 위해 여성 멤버로만 제작진을 꾸렸다.
회사 분위기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시는지?
거의 '일단 해봐'라는 식이다. 아이디어는 비판하지 않는다. 발전시키면 되니깐. 금요일에는 맥주 페스티벌을 열고 회사에 맥주를 직접 뽑아마시는 기계도 있다.
맥주 페스티벌 때는 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구체적인 프로젝트 상황을 공유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 달에 한 번 씩은 한 명을 지정해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걸 모두 같이 한다. 2주 전 같은 경우는 한강에 나가서 백일장을 열었다. 다들 열심히 쓰고 낭독회도 했다. 그 전엔 에버랜드도 갔다.
공연 기획 할 때도 대표님이셨다. 멤버 꾸리는 것 자체가 승패를 좌우할텐데.. 사람을 뽑는 기준은?
새로운 걸 좋아하고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토론하는 것 좋아하고 자기 이야기 못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
토론이라는 게 사실 아이디어가 있어도 분위기가 더 중요한데?
사실 어렵다. 원래 하던 친구들은 익숙한 데 사람이 많아지니깐 더 어렵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회의 진행을 안하고 막내에게 시키기도 한다. 어려운 건 맞는 거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 자체를 형성하는 데 어떤 투자를 하나?
디자인 경영을 하는 친구가 와 있다. 그 친구가 세 달 동안 회사에 머물면서 구체적인 업무 환경이나 조직 구성, 사무실 구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회사 성격이 특이하다보니 우리만의 조직 문화나 조직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2초 TV'가 앞으로 가장 보완되야 할 점은?
회사 전체적으로는 마케팅과 홍보를 강화해야 할 것 같다.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콘텐츠의 힘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전 회사(공연업체)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또 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시도를 강화할 것 같다. 콘텐츠 면에서 자신있다. 내년 초까지 라인업이 이미 있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우선시하는 가치는?
사람들이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재미는 '펀(Fun)'이 아니라 '감동'이 될 수도 '소통'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걸 통틀어 재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