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사장님들이 말한 '문래동이 재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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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골목길 담장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이하 위키트리 나즈막한 시멘트 공장이

나즈막한 시멘트 공장이 칸칸이 모였다. 벽을 맞댄 한 칸 짜리 공장은 주인 없는 빈 집이 태반이다. 열 발자국, 스무 발자국을 걸어야 꽃집, 빵집, 식당과 카페, 작은 작업실이 있다. 개성 강한 가게들이다. 빈 집 열에 개성 넘치는 집 하나. 서울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여백이다. 여백은 이곳에 재미있는 리듬을 만들었다.
이곳은 ‘문래 예술촌’이라 불리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이다.
지난 1일부터 3일 동안 매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을 찾았다. “문래동이 뜨고 있다”는 말은 3~4년 전부터 돌았다. 그러나 여전히 문래동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문래동을 안다는 사람 대다수는 “거기 핫하다 해서 가봤는데 뭐 없더라”는 반응이다.
문래동은 정말 ‘핫한’ 동네일까? 문래동이 정말 핫했던 건 백년 전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 초창기 산업을 이끌던 철공소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그후 이곳은 하향세였다. 고도로 산업화된 서울에서 철공업 기반 소상공인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문래동은 언제 다시 핫해졌을까? 소상공인이 떠난 빈 자리를 예술가들이 채우면서부터다. 홍대 지역 임대료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을 2000년 무렵, 가난한 예술가들이 먹고 살고 작업하기 위해 강을 건넜다. 이들은 똑같이 생긴 시멘트 공장 사이에 파란색, 노란색 페인트칠을 했다. 연극을 한 공장은 소극장이 됐다. 그림을 건 공장은 갤러리가 됐다.
그럼 앞으로 문래동은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문래동을 찾았다. 누군가에겐 핫하지만 누군가에겐 지루할 장소. 이 상태가 10년 넘게 이어져온 문래 예술촌. 무슨 멋이 있어 이곳에 모였고, 무슨 이유가 있어 이 상태를 길게 유지하고 있을까.
최근 5년 안에 문래동을 찾아온 사장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카레집 사장 박민영 씨는 두 달 전에 문래 사람이 된 ‘뉴페이스’다. 홍대 유명 클럽 ‘스컹크’는 임대료의 ‘고고행진’을 견디다 못해 반 년전 문래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전집 사장 김상동 씨는 이곳에 온 지 햇수로 5년이다. 문래예술촌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대안문화공간 ‘정다방프로젝트’ 매니저 김드림 씨도 만났다.
이들이 꼽은 문래동의 멋, 문래동의 특징은 이랬다.
1. “앞집도 옆집도, 뒷집도 작가다” 경성카레 사장 박민영 씨

“디자인 공부를 했고 지금도 디자인 일을 합니다. 전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식당은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삼아 요리를 하다 흥미를 붙여 열게 됐습니다. 50(살)쯤 되면 식당 차릴까 했는데, 그럴 거면 지금부터 하지 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성카레’ 박민영(29) 사장이 카레를 듬뿍 얹어 내며 말했다. ‘경성카레’는 문래동에 문을 연 지 두 달 된 ‘신참’이다. 원래는 이태원에 가게를 낼까 했는데 그쪽 임대료가 너무 비싸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는 “옆 집 철공소 사장님, 골목 저편 꽃집 부부, 우크렐레 교습소를 운영하는 선생님 등 주변이 다 작가다. 오가며 대화하는 게 재밌을 수밖에 없다. 아쉬운 게 있다면 소문보다는 재밌는 곳이 많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 걱정도 돼요. 사람이 많아지면 식당 일도 바빠질 거고, 그럼 디자인 작업하며 요리하는 게 벅찰 것 같아요. 모순적이죠”라고 덧붙였다.
2. “문래동은 가게들 사이에 벽이 없다” 정맥주 매니저 김드림 씨

“한창 원두 볶고 있다가 옆집 일을 도와줘야 할 때도 있고, 우리도 옆집의 도움을 받을 때도 많아요. 가게 장소를 열어 주민들과 작가들을 초대해 행사도 하죠. 문래동은 가게들 간에 경계가 약해요. 그게 재미도 있지만 때로 힘들기도 하죠”
‘정맥주’ 매니저인 바리스타 김드림(30) 씨 이야기다. 정맥주는 지난 5월 문 열었다. 하지만 정맥주가 속한 ‘정다방 프로젝트’는 2011년 문래에 자리잡았다. 당시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찻집 정다방을 지금 정다방 프로젝트 사장 한경훈 씨가 중심이 돼 갤러리로 재탄생시킨 게 시작이었다.
이제 정다방 프로젝트는 커피와 맥주를 판매하는 ‘정맥주’와 디자인 사무실, 갤러리를 운영한다. 김드림 씨는 “정다방 프로젝트는 완성되지 않은 공간 느낌을 좋아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편히 들러 쉬며 놀며 일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게 정다방 프로젝트가 가고 싶은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3. “주민과 작가가 함께 즐긴다” 클럽 스컹크(SKUNK) 사장 조천호·원종희 씨

“문래는 건물이 다 낮다. 사람도 많지 않다. 덕분에 얼굴 보고 대화 나눌 일이 많다. 문래 주민들과 작가들, 예술가들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철공소 일을 돕기도 하고, 철공소 아저씨들이 우리 공연을 즐기러 오는 게 너무 재밌다” (원종희 씨·35)
스컹크 헬(SKUNK HELL)은 1997년부터 홍대에 있던 유명 펑크락 클럽이다. 이곳은 한국 펑크락의 대표 밴드 가운데 하나인 ‘럭스(RUX)’, ‘투데이X스팟(Today X Spot)’ 등 7개 펑크락 밴드가 속한 유니온웨이(UNIONWAY)가 운영한다.
2000년 무렵 시나브로 복잡복잡해지던 홍대가 정점을 찍었다. 1996년 보증금 500에 월세 50만원이었던 임대료가 보증금 2000에 월세 250만원으로 뛴 것이다. 이들은 “2008~2009년 쯤 소떼들이 몰려나듯 홍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성수동에 갔다. 단 한 번 공연했을 뿐이었는데 임대료가 훌쩍 올랐다. 금세 성수동에 돈 벌겠다는 사람이 몰렸다. 제발, 임대료 안 오를 만한 곳에 가고 싶었다. 지난 3월 이들은 문래에 클럽과 타투 작업실을 냈다.
‘럭스’ 보컬이자 스컹크 공동대표 원종희 씨는 “문래만큼 긴 시간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이 없다. 긴 시간 동안 작가와 주민이 함께 지내며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폭이 커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용접하던 아저씨가 펑크락을 즐기고, 공연하던 우리가 공사일을 도우며 함께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든다”고 했다.
물론 이곳도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유니온웨이 최고경영자 조천호(37) 씨는 “이 곳도 언제 임대료가 오를지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문래동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노는 걸 즐길 계획”이라고 했다.
4. “밥집에서 시낭송회가 열리는 동네” 바로바로 전집 김상동 사장

“우리가 왔을 때만 해도 외지인이 차린 가게가 적었다. 거의 개척했다고 보면 된다. 작가들이 우리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내 작업 회의를 하곤 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문인들이 모여 시낭송회를 연다. 문래니까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바로 전집’(이하 전집)에서는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음악이 있는 시 낭송회’가 열린다. 삼삼오오 모인 문인들은 일반 손님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집 사장 김상동(54) 씨는 시 낭송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저녁 거리와 술을 적당히 내준다.
그는 “문래에 미술가, 음악가, 연극인은 있는데 문인들은 하는 게 없더라며 이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시 낭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1인당 만원 회비를 낸다. 그럼 이 가격에 맞춰 우리가 저녁 거리와 술을 낸다. 조금 더 서비스를 하기도 하고”라고 설명했다.
전집은 2011년 문래 공장촌 한 가운데에 문을 열었다. 특별히 문래예술촌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친척 가운데 한 명이 문래에 살고 있어 인연이 닿았다. 사모님 혼자 운영하다 2013년 사장님까지 합류했다.
점심 백반 5000원, 모듬전 15000원 등 전반적으로 저렴했다. “주변에 작가들, 공장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건강한 밥상을 제공하고 싶다. 식당일도 일종의 봉사라 생각한다”며 “최근 카페들이 많이 생겨 문래동에 갈 곳도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