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 언제부터 ‘너구리’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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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출시된 ‘솔’과 올림픽을 기념해 1987년에 출시된 ‘88’담배. 이 두 담

“흡연자들 언제부터 ‘너구리’가 됐을까?”
[1980년에 출시된 ‘솔’과 올림픽을 기념해 1987년에 출시된 ‘88’담배. 이 두 담배가 인기를 끌던 당시 우리 사회에 ‘담배는 나쁜 것’이란 인식이 급속하게 확산됐다 / 이하 KT&G]


[경제산업팀 이동훈-이아리따-김나경] = 한국에서 담배가 천대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사회인식 변화에 정확한 터닝포인트를 찍을 순 없다. 하지만 담배상품 기준으로 보면 '88'이 출시된 전후 쯤으로 보인다.

70년대에 걸쳐 '환희', '한산도', '거북선', '남대문' 등이 유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흡연자가 '너구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술집, 식당은 물론이고 역, 터미널,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도 흡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열차 좌석에도 붙박이 재떨이가 붙어 있던 당시로선 사회 전체가 거대한 너구리굴 같았다. 너구리를 잡기 위해 연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너구리가 피워낸 연기에 비흡연자들이 도망 다녀야할 판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금연의식은 싹트고 있었다.

"순한 '솔'과 독한 '88', 담배 운명을 바꾸다"

1987년에 나온 담배 '88'. 이 담배는 몇 가지 점에서 우리 담배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당시로서도 유난이 독한 담배였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 88올림픽을 기념해 나온 이 담배는 국제적인 금연운동 바람을 정면으로 맞게 된다.

당시 '88'은 이보다 7년 먼저 출시된 담배인 '솔'과도 정면으로 맞섰다. 순한 솔과 독한 88은 당시 흡연자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흡연층 안에서도 88은 거북한 담배로 자리 잡았던 셈이다.

이 두 담배의 인기는 대단했다. 1980년 발매한 '솔'은 2005년까지 누적 판매량 171억 7705만 갑을 기록했다. 광복 이후 담배 최대 판매 기록이다. 88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며 1987년 출시된 '88' 담배 역시 오랜 시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울올림픽, 금연운동에 불 지펴

88서울올림픽을 두 해 앞둔 1986년, 담배는 처음으로 금연운동의 저항 앞에 서게 된다. 이 때 담배사업법이 제정되면서 담뱃갑 경고문구가 처음 표기되기 시작했다. 담배 광고 역시 제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공장소 흡연이나 흡연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없었다.

마치 부정적 인식에 맞서기라도 하듯 담배들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담배는 순해지고, 또 상품명에 외래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91년에 등장한 '엑스포'와 1994년의 '디스'는 이 두 가지 변화를 보여준 선두주자였다. 이어 1996년에는 국산 최초 슬림 담배인 '에쎄'가 출시돼 큰 주목을 끌었다. 담배의 날씬한 유혹이 시작됐다고 할까. 이는 이미 1988년에 담배시장 개방이 시작된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담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보려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흡연자들 언제부터 ‘너구리’가 됐을까?”
[1990년대에 발매된 ‘디스’와 ‘에쎄’. 모두 영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디스' 출시 직후인 1995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금연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민건강법 제정과 함께 '금연 구역'을 지정하면서 처음 '흡연 규제'가 시작됐다. 이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보편적 기호식품이었던 담배는 '백해무익'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됐다.


정부 '금연 정책' 연대기


1986년 '담배사업법' 시행. 담뱃갑 경고문구가 처음 표기. 담배광고 제한.


1995년 '국민건강법' 제정. 금연구역 설정 등 흡연 규제. 본격적 금연정책 추진. 연간 120회 담배 잡지광고 허용에서 연간 60회 제한.


1996년 대형 음식점 등 공공 이용시설에 '흡연구역' 지정.


2005년 금연 교육과 홍보 중심 금연 정책에서 '금연 지원' 사업으로 확대. 금연클리닉, 금연 상담전화, 군·전의경 금연 지원 시작.


2007년 버스 정류장 시범 금연구역 지정. '금연구역' 실외 확대.


2011년 놀이터 및 공원, 학교 주변 '절대 금연구역' 지정. 청계천, 광화문 광장 등 인파 많은 실외 시설에서 별도 흡연구역 외 금연 추진. PC방 및 만화방 흡연 전면 금지.


2013년 150제곱미터 이상 음식점 및 호프집이 금연구역 지정.


2015년 '150제곱미터 이상' 등 면적 제한했던 현행 규정 폐지. 면적 상관없이 모든 음식점 금연구역 지정.




강도높은 금연정책… 벼랑 끝에 몰린 흡연자들

2000년대에 들어 2~4년 간격으로 점점 더 강력한 금연규제가 시행됐다.

1980년 성인 남성 흡연율은 79.3%에 달했다. 여성 흡연율 역시 12.6%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1995년 금연 정책 시행을 계기로 꾸준히 떨어져 2012년에는 남성 흡연율 43.7%, 여성 흡연율 7.9%를 기록했다. 2013년에도 남성 흡연율 42.1%, 여성 흡연율 6.2%로 하락세를 유지했다.

“흡연자들 언제부터 ‘너구리’가 됐을까?”
[보건복지부 국민건강통계에 기반한 흡연율 변화 그래프 / 통계청 e-나라지표 캡처]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흡연 및 금연 규제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참가자 대부분은 담배를 '건강 위협하는 존재', '언젠가 끊어야 할 대상', '남에게 불편 주는 기호식품' 등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이런 부정적 이미지에 87%~92%의 높은 동의율을 보였다.

반면 '친구나 동료와 함께하게 해주는 매개체', '국가와 타인이 침해해서는 안 되는 개인의 권리이자 기호', '남성스러움의 표현 대상'이라는 이미지는 13%~31%의 낮은 동의율을 보였다.

본격적으로 금연 캠페인이 시작된 지 20년, 한 때 공공장소에서, 대중교통에서,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흡연자들의 모습은 이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