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남편은 유부남, 재혼은 건달…20억 건네고 겨우 이혼” 고백한 '국보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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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레나 “인생에서 정말 잘못한 두 번의 결혼 생활”

가수 김세레나(79·본명 김희숙)가 막대한 재산을 잃고 두 번 이혼한 사연을 털어놨다.

지난 5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데뷔 60주년을 맞은 김세레나의 근황과 굴곡진 인생사가 공개됐다. 1960년대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등을 히트시키며 큰 인기를 누렸던 김세레나는 18세에 방송사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방송에서 김세레나는 과거 결혼 생활을 떠올리며 "내 인생에서 정말 잘못한 두 번의 결혼 생활이다. 그런데 후회하면 뭐 하냐. 그것도 내 운명이고 내 팔자, 내 잘못"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첫 결혼, 알고 보니 가정 있던 남편

이하 김세레나. / 유튜브 채널 'MBN STORY'
이하 김세레나. / 유튜브 채널 'MBN STORY'

그는 전성기 시절 밴드 마스터로 활동하던 남자와 첫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이미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김세레나는 "아이를 낳고 우리 애를 호적에 입적할 때 알았다. 먼저 결혼한 부인과 딸이 둘 있더라. 나를 속인 거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혼을 결심했지만 남편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김세레나는 "이혼할 때는 전남편들이 쉽게 끝내주지 않더라. 내가 거꾸로 위자료를 주고 이혼했다"고 설명했다.

14년 만의 재혼, 두 번째 상처

김세레나 노래 CD 앨범. / 유튜브 채널 'MBN STORY'
김세레나 노래 CD 앨범. / 유튜브 채널 'MBN STORY'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4년 만에 재혼했다. 그러나 두 번째 남편 역시 큰 상처를 남겼다.

김세레나는 "아무것도 안 하더라. 건달이다"라고 돌이켰다.

그는 "나는 외국 공연, 지방 공연, 방송국, 밤업소까지 다니느라 밤늦게 들어오면 쓰러져 잤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다시 일을 나갔다"며 생계를 책임졌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돈은 있겠다, 노름하지, 술집에 가서 술 마시지, 또 여자들도 만났을 것"이라며 남편의 도박과 유흥 문제를 지적했다.

이혼 조건으로 아파트 요구

유튜브 채널 'MBN STORY'
유튜브 채널 'MBN STORY'

두 번째 이혼 과정에서는 재산까지 내줘야 했다. 김세레나는 "이혼을 안 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혼해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근데'라고 하더라"며, 남편이 조건으로 부산의 아파트를 요구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아파트를 한 번 사줬는데 노름으로 날려서 또 사줬다. 두 번이나 사준 거다. 자기 누나가 홍콩에서 식당을 한다고 해서 그것도 차려줬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도 거액을 건넸다. 김세레나는 "아이를 데려오는 날에도 돈을 줬다. 그때 돈으로 치면 꽤 많은 돈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둘째 남편에게 들어간 총액이) 20억원 가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번의 결혼으로 성이 다른 두 아들을 얻은 김세레나는 "자식이 나한테 최고다. 생명과도 같다. 주위에 지인들도 많지만 자식만큼 해줄 사람은 없지 않냐. 아들과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세레나의 둘째 아들 진의남은 1998년 가수로 데뷔해 현재 트로트 가수이자 어머니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보톡스도 없던 시절, 파라핀 시술 받았다가…"

유튜브 채널 'MBN STORY'
유튜브 채널 'MBN STORY'
유튜브 채널 'MBN STORY'
유튜브 채널 'MBN STORY'

김세레나는 방송에서 과거 성형 시술 부작용으로 달라진 외모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고백했다.

김세레나는 젊은 시절 사진을 공개하며 "젊었을 때는 그래도 예쁘다는 소리를 좀 들었는데 세월엔 장사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때는 보톡스, 필러 같은 게 없었다. 파라핀이라고 안 좋은 게 있었다"며 "꼬임에 빠져 가지고 맞았는데 그게 안 없어지더라"고 실토했다. 시술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늙으니까 안 늙으려고 발악한 거지"라고 했다.

변해 버린 얼굴보다 그를 더 괴롭힌 것은 대중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김세레나는 "매스컴이나 주간지, 신문사에서 얼굴 이야기가 자꾸 돌았다. 예쁜 얼굴 다 망가졌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되돌릴 수가 없잖아"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김세레나는 누구

김세레나 젊은 시절 모습. / 유튜브 채널 'MBN STORY'
김세레나 젊은 시절 모습. / 유튜브 채널 'MBN STORY'

김세레나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6·25 때 대전으로 피난갔다가 충남 논산에 정착했고, 중·고등학생 시절 논산에서 꽤 이름난 가수였다고 한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서울국악예술고에 입학했고, 2학년이던 1964년 동아방송 '가요백일장' 연말결선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데뷔했다.

'새타령'(1967), '갑돌이와 갑순이'(1968), '꽃타령', '까투리사냥', '성주풀이'(1969), '창부타령', '울릉도사랑'(1971) 등 신민요 히트곡을 냈다. 박초월 명창 등에게 창법을 배웠고,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에게 '국보 가수'라는 별칭을 붙여줬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앞에서도 노래했다. 박 전 대통령의 관심이 워낙 컸던 탓에 육영수 여사가 질투해 한때 방송 3사 출연 금지 위기에 놓였으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힘을 써 막아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국어순화운동이 한창이던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김세레나'라는 무대명을 '김세나'로 강제로 바꿔야 했다. 당시 쟈니 리, 위키 리, 트위스트 김, 후라이보이 등 외국식 예명을 쓰던 가수들도 한동안 본명으로 활동해야 했다. 김세레나는 본명을 이미 유명한 선배 가수가 쓰고 있어 한 글자를 뺀 이름을 썼다.

공연 영상에서는 마이크를 한 손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잡는 퍼포먼스를 종종 보여준다. 지루해하기 쉬운 민요 무대에서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허경영 지지자로도 알려져 있다.

유튜브 채널 'MBN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