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 같은 존재였는데…김혜수, 故최불암 떠나 보낸 뒤 SNS에 ‘이 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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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하나까지 보관한 제자, '부모님 같은' 스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다
“최불암 선생님 떠나시는 길. 배웅해 주신 분들, 추모해 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배우 김혜수가 자신에게 ‘부모님’ 같은 존재였던 고(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을 나흘 내내 지킨 뒤 SNS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혜수는 지난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인의 사진과 함께 “최불암 선생님 떠나시는 길 배웅해 주신 분들, 추모해 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별다른 설명은 붙이지 않았다. 고인을 함께 배웅하고 추모한 이들에게 건넨 인사 한 줄이 전부였다.
빈소 첫날 이른 아침부터 발인·장례 미사까지, 나흘 연속 자리를 지켰다
김혜수의 이 글 뒤에는 나흘간의 행적이 있다. 김혜수는 지난달 30일 서울아산병원에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첫날 이른 아침부터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달 1일 입관식, 2일 발인과 여의도성당 장례 미사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을 지켰다.
현장에서 김혜수의 역할은 조문객 맞이에 그치지 않았다. 조문객들이 벗어둔 신발을 직접 정리했고, 찾아온 이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빈소 안팎을 챙겼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핀 사람은 남편을 잃은 아내이자 선배 배우인 김민자였다. 김민자가 이동할 때마다 부축했고 목도리를 둘러줬다. 장례 미사 중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김민자를 안아 위로하기도 했다.

조문을 온 선배 배우들도 김혜수의 손길을 거쳤다. 윤여정과 고두심을 챙겼고, 입관식에 찾아온 강부자는 직접 부축해 배웅했다. 상주가 아닌 후배 배우가 장례 전 과정에서 유족과 조문객 사이를 오간 셈이 아니라, 실제로 빈소 동선 전체를 맡아 움직였다.
1987년 ‘사모곡’에서 모녀로 만나 40년 가까이 이어진 인연
김혜수가 이렇게까지 나선 이유는 두 사람의 인연에서 찾을 수 있다. 김혜수에게 최불암·김민자 부부는 연예계 선배 이상의 가족이었다.
시작은 1987년 KBS 드라마 ‘사모곡’이다. 김혜수는 이 작품에서 김민자와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당시 김혜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987년부터 올해까지 계산하면 39년이다. 김혜수는 그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을 친부모처럼 여기며 각별한 관계를 이어왔다.
애정의 크기는 김혜수가 직접 밝힌 적이 있다. 2021년 방송된 KBS1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특집에 출연한 김혜수는 “나도 대가족에서 잘 자랐지만, 마음의 빈 구석이 크게 생겼을 때 정말 따뜻하게 자식처럼 품어주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불암, 김민자 두 분은 내게 엄마, 아빠 같다”고 했다.

당시 방송에서는 최불암이 김혜수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도 공개됐다. 뉴욕 촬영을 앞둔 김혜수에게 최불암은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 포도가 익는 계절. 비행기 안은 꿈의 계절이 되어야 해. 그럼 다녀와, 혜수가 꾼 꿈 얘기 듣자고”라는 문자를 보냈다.
김혜수는 이 문자를 두고 “선생님의 문자는 한 편의 시와 같다”고 말했다. 장문의 글을 써서 보내주시는데 그동안 다 모아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자 하나까지 보관해 온 사람이 장례 나흘을 곁에서 지킨 것이다.
별세부터 발인까지, 장례 일정 정리
최불암은 건강 악화로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지난달 29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이튿날인 30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1일 입관식을 거쳐 2일 발인이 진행됐고,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 미사가 엄수되며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유족은 아내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다. 최불암과 김민자는 4년간의 교제 끝에 1970년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최불암이 KBS 드라마 ‘정동마님’에 출연하던 김민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고, 이를 계기로 KBS로 이적해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두 사람은 연극 ‘환절기’(1968) 등을 함께하며 사랑을 키웠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졌다. 최불암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과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을 지내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활동에 힘쓴 이력에 따른 것이다. 장례위원회는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하는 구성이었다. 구체적인 위원 명단과 역할은 최종 확정 후 발표될 예정이었다. 최불암 측은 장례가 방송과 공연예술에 큰 발자취를 남긴 국민배우를 추모하는 자리이자, 오랜 세월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익을 위해 헌신한 사회공헌가의 삶을 기리는 자리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최불암은 미아 찾기와 희소병·난치병 어린이 돕기 특별 생방송에도 출연했다.
인천 출생 연출가 지망생에서 ‘국민 아버지’로
1939년생(호적상 1940년생)인 최불암은 인천 제물포구(당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거쳤다. 처음 꿈은 배우가 아니라 연출가였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데뷔했고,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혀 브라운관에 진출했다.
이름을 전국에 알린 작품은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로 꼽히는 MBC ‘수사반장’이다. 1971년부터 1984년,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총 18년간 방송된 이 드라마에서 박영한 반장을 연기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방영돼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기록된 MBC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시청자와 만났다. ‘전원일기’에서 22년간 부부 연기를 펼친 상대는 김혜자였다. 두 사람은 1969년 ‘개구리 남편’을 시작으로 2006년 ‘궁’까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고, 실제 부부로 착각하는 시청자가 많을 정도였다. 2024년에는 ‘수사반장’의 프리퀄인 MBC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했다.

노역 연기도 이력의 특징이다. 20대에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했고, 40대에는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 80대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맡았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했다. 고개를 젖히고 “파하~” 하며 웃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고,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1992년에는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진출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가 계기였다. 1996년 ‘전원일기’를 통해 본업으로 돌아왔다.
수상 기록도 길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74·1978)과 연극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69·1971),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1978)과 남우주연상(1979)을 받았다. 1998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 ‘수사반장’으로 경찰 이미지를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처음 명예 경찰에 위촉됐고, 2024년에는 민간인 최초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