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타고 시청률 터진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이거 쓴 작가, '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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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 소녀, 총독부 심장부에 심어진 독립군 밀정이 되다
말 한마디가 무기가 되는 통역, 100일간의 첩보 로맨스
tvN 20주년 특별기획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이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 반등을 이끌면서 이 작품을 쓴 작가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역이라는 설정을 서스펜스 장치로 쓴 구조와 대사마다 복선과 심리전이 숨어 있다는 반응이 이어지자, 대본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시청자도 함께 늘고 있다.

이 작품을 집필한 주인공은 2018년 SBS 극본공모 단막극 부문에서 '외출'로 최우수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뒤 ‘17세의 조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트롤리'를 차례로 집필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단막극 최우수상으로 시작한 드라마 작가, 류보리다.
류 작가는 2018년 SBS 극본공모 단막극 부문에서 '외출'로 최우수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단독 집필한 작품은 SBS 단막극 ‘17세의 조건', tvN '외출',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SBS '트롤리', 그리고 tvN ‘100일의 거짓말'까지 다섯 편이다. 단막극으로 출발해 미니시리즈를 거쳐 20주년 특별기획의 극본을 맡기까지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방송사와 장르를 바꿔가며 이어 온 이력이다.
작가의 전작을 따라가 보면 같은 배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서정연은 ‘17세의 조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트롤리', ‘100일의 거짓말'까지 네 작품 전부에 이름을 올렸다. 백지원은 ‘17세의 조건'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출연한 데 이어 '트롤리'에는 특별출연으로 합류했다. 최대훈은 ‘17세의 조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이어 ‘100일의 거짓말'에 특별출연했다. 길해연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트롤리', 김미경은 '외출'과 '트롤리'에서 작가와 호흡을 맞췄다. 박시은과 윤찬영은 ‘17세의 조건'에 출연했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특별출연으로 참여했다.
주연급 배우 중에서는 김현주가 '트롤리'와 ‘100일의 거짓말' 두 작품에서 연속으로 류 작가의 대본을 연기했다. 작가가 김현주의 배역을 두고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없었다"고 말한 배경에 전작에서 쌓은 협업 경험이 있다.


밀정이 된 소매치기, 100일간의 첩보 로맨스
‘100일의 거짓말' 줄거리는 밀정이 된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와 조선총독부의 엘리트 통역관이 적의 심장부에서 마주하며 벌어지는 100일간의 첩보 로맨스다. 김유정, 김현주, 이무생, 진선규 등이 출연하고, 박진영이 태웅 역을 맡았다.
극중 주인공 이가경은 김유정이 연기한다. 총독부에 통역생으로 위장 잠입한 소매치기라는 설정이다. 박진영이 연기하는 태웅은 총독부 소속 통역관으로, 일본인 고위층의 양아들로 살아가며 안온한 엘리트의 삶과 내면의 죄책감, 민족적 정체성 사이에서 갈라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두 사람 사이의 신경전이 총격전 못지않은 긴장감을 만든다는 평가가 나온다.
류 작가는 100일의 거짓말'의 집필 의도와 차별점, 배우별 캐스팅 이유에 대해 직접 밝힌 적 있다.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가 조선총독부 심장부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는지도 작가의 설명에 담겼다.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가 조선총독부의 심장부로 들어간다는 설정, 통역이라는 직업을 서스펜스의 장치로 삼은 구조, 김유정·김현주·이무생·진선규·박진영으로 이어지는 배역 선택의 이유까지 작가의 설명에 담겼다.
작가가 꼽은 첫 번째 차별점, 독립군이 심은 '밀정'
류 작가는 집필에 앞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희생을 돌아봤다고 밝혔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에 내 삶을 기꺼이 바칠 수 있을까", "독립이 된다 해도 내가 죽은 후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독립운동에 내 생을 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거듭 던졌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던 시기에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믿음으로 그 길을 걸었는지 묻는 과정이었다.

작가가 이 질문 끝에 도달한 답은 사랑이었다. 류 작가는 "비록 나는 죽더라도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찬란한 빛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그 마음이 암흑의 시기에 독립운동가들에게 횃불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쓰는 내내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고도 했다. 작품이 첩보물이면서 로맨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가 첫 번째 차별점으로 꼽은 것은 독립군이 조선총독부에 심은 밀정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류 작가는 일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낸 밀정들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은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반대로 독립군이 일제의 심장부에 밀정을 보냈다면 어땠을지, 그것도 당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어린 소녀를 보냈다면 어땠을지를 물었다고 했다. 세상이 보잘것없다고 여긴 소매치기 소녀가 세상의 꼭대기에 있는 조선총독부를 뒤흔드는 이야기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류 작가는 ‘IF(만약)’라는 상상이 시청자에게 통쾌함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청자가 이 드라마에서 얻게 되는 감정을 작가가 설계 단계부터 정해 두었다는 뜻이다.
작가가 꼽은 두 번째 차별점, 말 한마디가 무기가 되는 '통역'
류 작가가 꼽은 두 번째 차별점은 통역이다. 작가는 통역이 말하는 이의 진실과 비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이면서, 마음만 먹으면 그 진실을 거짓으로 가공해 반대편에 전할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같은 문장이 통역을 거치며 다른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극의 핵심 장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각자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종류가 다르다. 류 작가는 이런 언어 능력의 불균형과 비대칭이 극에 서스펜스를 만들고 첩보와 로맨스에도 아슬아슬함을 더한다고 밝혔다. 누가 어떤 언어를 알아듣는지가 곧 누가 속고 누가 속이는지를 가르는 구조다. 시청자 반응에서도 이 부분이 먼저 거론된다. 배우들의 다국어 연기가 단순한 배경 설정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의중을 떠보고 거짓을 숨기는 무기로 작동한다는 평가다. 대사 하나하나에 복선과 심리전이 숨어 있다는 반응도 이어진다.

이 구조는 인물이 쓰는 언어의 범위가 달라질 때마다 판이 바뀐다는 특징이 있다. 작품이 100일이라는 시한을 두고 진행되는 만큼, 새로운 언어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 곧 정체가 노출될 위험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선악 이분법을 피한 류보리 작가만의 '인물 설계'
작품은 식민지 역사를 단순한 선악 이분법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생존을 위해 소매치기로 살다가 얼떨결에 거대한 거짓말 속으로 뛰어든 주인공이 있고, 일본인 고위층의 양아들로 살면서 엘리트의 삶과 죄책감 사이에서 분열하는 청년이 있다. 여기에 조선사 편찬 사업 등 일제의 역사 왜곡과, 체제 유지 뒤에 숨은 치밀한 폭력이 함께 조명된다. 시대의 폭력 앞에서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을 깊이 있게 담아 극의 설득력을 높였다는 것이 호평의 요지다.
류 작가는 이 같은 인물 구성을 작품의 존재 이유와도 연결했다. 사극이나 시대극, SF에는 지금의 우리가 이 이야기를 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집필하는 동안 늘 그 이유를 고민했다고 한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각자의 것이지만 사회와 공동체, 시대와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을 떠날 생각만 하던 가경이 격랑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이야기도 이 생각에서 시작됐다.
'100일의 거짓말', 배우별 캐스팅 이유
류 작가는 배우마다 캐스팅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김유정은 가경 역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춘 배우로 꼽혔다. 가경은 연기력과 거짓말 실력이 곧 극의 개연성이어서 극중 인물과 시청자를 모두 홀릴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일본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성실함, 진폭이 큰 캐릭터의 변화를 설득할 폭발적인 힘이 요구됐고, 그 답이 김유정이었다는 설명이다.

박진영에 대해서는 연기자로 데뷔한 초기부터 거의 모든 작품을 보고 응원해 온 배우라고 했다. 그런데도 ‘100일의 거짓말'에서 태웅을 연기한 박진영의 눈빛, 얼굴, 목소리에 몇 번이나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고였다고 했다. 작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나타난다면 박진영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현주는 소란 역으로 낙점됐다. 소란은 비극적인 사연, 애달픈 멜로, 저격수로서의 액션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인물이다. 복수를 위해 총을 잡았지만 단순히 강인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고, 가경과의 로맨스와 필립과의 멜로, 한 인간으로서의 여러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류 작가는 김현주가 그 여러 얼굴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시청자가 직접 확인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무생은 감독과 함께 희망한 필립 역 1순위였다. 냉정한 사람의 얼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그 결을 조심스럽게 쌓아갈 수 있는 배우라고 믿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촬영하는 내내 이무생이 필립의 고뇌를 온전히 담았다고도 했다.
진선규는 평상시 모습과 카메라 앞의 모습이 180도 달라지는 배우로 소개됐다. 류 작가는 화면 속 사토를 보다가 진선규를 직접 만나면 잠시 낯을 가리게 될 정도라고 표현했다. 진선규는 처음부터 작품에 큰 의욕을 보였고, 일본어 연기를 위해 일본에서 두 달간 생활했다. 작가는 그 노력이 사토의 일본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 드러난다고 밝혔다. 다국어 연기가 극의 핵심 장치인 만큼, 현지 체류까지 감행한 준비가 대사의 설득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