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비'·'명성황후' 쓴 '사극 대가' 정하연 작가 별세…향년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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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5호실

'왕과 비', '명성황후' 등 한국 사극 드라마의 굵직한 작품들을 집필하며 '사극의 대가'로 불린 정하연 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82세.

정하연 작가 / 연합뉴스
정하연 작가 / 연합뉴스

한국방송작가협회와 유족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1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수십 년간 사극부터 현대극, 영화와 연극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치며 한국 방송·공연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왕과 비'·'명성황후'…한국 사극의 한 시대를 이끌다

정하연 작가는 1944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연희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68년 신춘문예 단막희곡 부문에 '산울림'이 당선되며 작가로 등단했다. 같은 해 '무지개 쓰러지다'가 잡지 '세대'와 실험극장의 신인희곡상 공모에서 당선됐고, 이듬해에는 '환상살인'이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의 장막희곡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되면서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영화 시나리오 집필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배우 신성일이 주연과 연출을 맡은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연애교실'(1971), '그건 너'(1974)를 비롯해 '목마와 숙녀'(1976), '영광의 9회말'(1977) 등 여러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 연극으로 출발한 그의 작품 세계는 영화를 거쳐 방송 드라마로까지 확장됐다.

정 작가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분야는 단연 사극이었다. 1995년 '장녹수'를 시작으로 '조광조'(1996), '왕과 비'(1998~2000), '명성황후'(2001~2002), '신돈'(2005~2006), '인수대비'(2011~2012) 등 규모가 큰 사극을 연이어 집필했다.

특히 '왕과 비'와 '명성황후'는 정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형 사극을 잇달아 흥행시키며 '사극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 사극 드라마의 흐름 속에서 정 작가가 남긴 작품들은 그의 오랜 집필 활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으로 남았다.

인간의 욕망과 삶을 그린 현대극…마지막 작품은 2018년 드라마

추모꽃 / AI로 제작된 사진
추모꽃 / AI로 제작된 사진

정하연 작가의 작품 세계는 사극에만 머물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 복잡한 감정선을 다룬 현대극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들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작품들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모래위의 욕망'(1992), '욕망의 바다'(1997), '욕망의 불꽃'(2010)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성공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 파멸을 소재로 삼았다.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던 사극과 달리 현대인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 통속극에서도 작가적 역량을 보여줬다.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를 담은 작품도 주목받았다. 2003년 방송된 '아내'는 기억상실로 두 아내를 갖게 된 남편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2008년 '달콤한 인생'은 위기에 놓인 중년 부부와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을 통해 삶의 가치를 전했다.

문화예술과 사회상을 조명한 작품도 집필했다. 2004~2005년에는 서울 명동을 사랑했던 문화예술가들과 1960년대 청년이었던 시인 김지하, 소설가 김승옥, 학생운동가 김중태를 중심으로 당시 사회와 대학가의 풍경을 풀어낸 EBS 문화사 시리즈에 참여했다. 1편 '명동백작'과 3편 '지금도 마로니에는'이 그의 작품이다.

정 작가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작품은 2018년 MBC 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다. 이 작품을 끝으로 고인의 오랜 드라마 집필 활동은 마무리됐다.

백상예술대상·KBS 연기대상 작가상 수상…4일 발인

정하연 작가는 오랜 집필 활동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1979년에는 '마로니에의 길'로 동아연극상 특별상과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받으며 희곡 작가로서의 성과를 남겼다.

방송 드라마 분야에서도 수상이 이어졌다. 대표작 '왕과 비'로 1999년 KBS 연기대상 작가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2000년에는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영화와 방송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그의 작품 활동이 수상 경력으로도 이어진 셈이다.

1968년 등단 이후 정 작가는 역사적 인물을 다룬 대형 사극부터 인간의 욕망을 그린 현대극, 사회와 문화예술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집필했다. '장녹수', '왕과 비', '명성황후', '신돈', '인수대비' 등 그가 남긴 사극들은 한국 드라마 역사 속 대표작으로 남게 됐다.

고인의 빈소는 2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된다. 발인은 오는 4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