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불암이 야구 시구할 때 손목에 ‘초록손수건’ 묶은 이유 재조명…그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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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이 29일 밤 10시쯤 서울 강서구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유족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졌고, 재활 치료를 이어왔으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불암이 배우로서 쌓은 67년 연기 인생만큼이나 그가 평생 매달린 일이 있다. 바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보낸 41년이다.

야구 시구하러 오며 '초록 손수건' 착용한 최불암. / 뉴스1
야구 시구하러 오며 '초록 손수건' 착용한 최불암. / 뉴스1

1981년 '전원일기' 아역 배우와의 인연에서 시작

30일 초록우산에 따르면 고인은 1985년 전국후원회장으로 위촉된 이후 41년간 국내외 아동복지 현장을 누볐다.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를 지원하고 나눔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었다.

인연의 출발은 1981년 MBC 드라마 '전원일기' 촬영 당시 만난 아역 배우다. 극 중 막내아들 금동이를 입양하는 이야기를 연기한 것이 재단과 맺은 첫 접점이 됐다. 이후 '전원일기', '보통사람들' 출연진과 함께 단체 결연 후원을 시작했고, 연예계에 아동 후원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재단 측은 최불암이 50만여 명의 후원자를 이끄는 전국후원회장으로서 어려운 아이들의 현실을 알리고, 어린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함께 비를 맞는 것"…41년을 관통한 나눔 철학

최불암의 활동 방향은 그가 남긴 말에 드러난다. 2015년 전국후원회장 위촉 30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나 혼자만 행복해지는 건 결코 상상할 수 없고, 어린이들을 또 하나의 '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전원일기 촬영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최불암과 다른 배우들. / 초록우산 제공
전원일기 촬영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최불암과 다른 배우들. / 초록우산 제공

재단 이름이 '초록우산'인 점을 떠올리면 이 발언의 무게가 달라진다. 우산을 건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비를 맞겠다는 태도가 41년 활동의 기준이었다는 뜻이다. 실제 행보도 이 말과 맞닿아 있다.

고인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아동 지원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2007년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2014년 우간다, 2015년 케냐 등 아프리카 오지를 직접 찾았다. 당시 이미 70대 중후반의 나이였다. 그는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해외 아동 지원의 필요성을 알렸다.

국내에 아동복지 자원이 부족하던 1990년대에는 미주와 유럽 지역을 방문해 현지 해외후원회 구성에 힘썼다. 초록우산은 고인의 열정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8개국에 25개 해외후원회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발품이 국경을 넘는 후원 네트워크로 이어진 사례다.

소년 수형자와 뮤지컬 무대…’제로캠프' 설립

위기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활동도 이어졌다. 최불암은 2012년 이들의 자존감 회복과 건강한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사단법인 '제로캠프'를 설립했다. 소년 수형자들과 함께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 무대에 올렸고, 처벌보다 공감과 지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제로캠프 이사장을 지냈다.

아프리카를 찾은 최불암. / 초록우산 제공
아프리카를 찾은 최불암. / 초록우산 제공

이 밖에 미아 찾기와 희소병·난치병 어린이 돕기 특별 생방송에도 출연했다. 2017년 12월에는 서울시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 광장에서 연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식'에 참석해 어린이 산타와 함께 선물을 포장했다. 2018년에는 재단의 '제1회 후원의 밤' 행사에서 인사말을 했다.

13년 전 잠실야구장 시구, 손목의 초록 손수건 다시 화제

별세 소식과 함께 재단과의 인연이 재조명되면서 13년 전 야구 시구 장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불암은 2013년 7월 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KBO 정규리그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섰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 아동들을 위한 행사의 일환이었다.

당시 그는 오른 손목에 재단 이름이 적힌 초록색 손수건을 묶고 마운드에 올랐다. 시구 자체보다 손목의 손수건이 후원 아동을 향한 응원의 표시였다는 점이 뒤늦게 알려지며 온라인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시구 당시 LG 감독은 김기태였다.

LG 트윈스 시구장에 등장한 초록손수건을 멘 최불암. / 뉴스1
LG 트윈스 시구장에 등장한 초록손수건을 멘 최불암. / 뉴스1
최불암 시구 모습. / 뉴스1
최불암 시구 모습. / 뉴스1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추모의 말을 남겼다. 그는 "고인은 '국민 아버지'로 연기를 통해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비추며 따뜻한 마음으로 소외된 이들을 먼저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또 "평소 방송에서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는 말을 해오셨고, 마지막까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평생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서 우리 사회가 아동의 삶과 행복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장서며 헌신해오신 고인의 의지와 활동을 깊이 애도하며 그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발인 뒤 재단 본부 먼저 들른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평생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례위원회가 구성된다. 황영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위원 명단과 역할은 최종 확정 후 발표된다.

빈소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서울 중구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빌딩 1층에도 빈소가 마련된다. 발인 이후에는 장지로 향하기 전 초록우산 재단 본부를 방문할 예정이다. 고인이 생전 사후에 재단에 들러달라는 뜻을 주변에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아동 후원 활동 시작했던 최불암. / 초록우산 제공
아동 후원 활동 시작했던 최불암. / 초록우산 제공

최불암 측은 장례에 대해 대한민국 방송과 공연예술에 큰 발자취를 남긴 국민배우를 추모하는 자리이자, 오랜 세월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익을 위해 헌신한 사회공헌가의 삶을 기리는 자리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인천 출신 연출가 지망생, '햄릿'으로 데뷔해 국민 배우로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은 호적상 1940년생이다. 연출가를 꿈꿨던 그는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했고,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에 들어갔다.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혀 TV 드라마에 진출했다.

이후 MBC '수사반장'(1971∼1989)의 박영한 반장, 국내 최장수 드라마 MBC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 MBC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의 캡틴 박으로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서른 살에 MBC 개국 드라마 '역풍'(1969)에서 노인 역을 소화했고, 40대부터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 80대의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스크린에서는 '영자의 전성시대'(1975), '바람불어 좋은날'(1980),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에 출연했다.

2018년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고, 2024년에는 ‘MBC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했다. 올해 5월 공개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에는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싶다는 가족의 요청으로 출연하지 않았다.

최불암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했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간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추억을 진솔하게 전해 사랑받았고, 지난해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자 많은 시청자가 아쉬워했다. 고개를 젖히고 '파하~' 하고 웃는 모습은 트레이드마크였다.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생전 최불암 사진. / 뉴스1
생전 최불암 사진.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