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촛불 대신 '랜턴'을 켜세요, 정전된 아파트의 밤이 더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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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배낭 72시간 준비물 열두 가지와 날짜 표기·점검 요령을 정리했다.
신발·외투 보관 위치와 가족 대피 역할 연습법도 담았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정전과 한파, 화재 소식이 부쩍 늘지만, 우리 집 비상용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바로 답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베란다에 생수 몇 병, 서랍에 손전등 하나, 안방 장롱 위에 구급상자가 흩어져 있다면 한밤중에는 물건을 모으는 데만 시간이 간다. 비상용품은 얼마나 사 뒀느냐보다 한 번에 들고 나갈 수 있게 묶여 있느냐가 쓸모를 가른다.
물건을 사 모았다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생수와 즉석식품, 구급상자를 집 안 여러 곳에 나눠 둔 집이 흔하다. 하지만 불이 꺼진 밤에 방마다 서랍을 열어 가며 물건을 모으는 사이 대피할 시간은 줄어든다. 비상용품은 한 상자나 한 가방에서 전부 꺼낼 수 있어야 제 구실을 한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은 재난에 대비해 비상용품과 식수·식량을 준비하고 가족 연락 방법을 정해 두라고 안내한다. 준비 규모도 둘로 나뉜다. 긴급 대피용 생존배낭은 2~3일분, 장기 비상대비는 30일분 비축이다. 72시간은 사흘이므로 생존배낭 기준에 들어맞고, 좁은 아파트에서는 30일분 창고를 만들려 애쓰기보다 들고 나갈 수 있는 사흘치 가방 하나를 먼저 완성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식수·식량에서 호루라기까지 열두 가지를 한 가방에 담는다
가방에 넣을 기본 품목은 마실 물,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 필요한 약, 손전등, 여분의 건전지,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작은 구급함, 마스크, 물티슈, 현금, 중요 연락처 사본, 호루라기다. 모두 열두 가지이고, 하나같이 전기와 수도, 가스가 끊겨도 쓸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과 음식은 가족 수와 준비하려는 일수를 곱해 양을 잡되, 개봉 없이 바로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으로 고른다. 조리에 불이나 물이 필요한 식품은 비상 상황에서 오히려 짐이 된다.
현금과 연락처 사본은 휴대전화가 꺼졌을 때를 위한 물건이다. 전기가 나가면 카드 단말기가 멈출 수 있어 소액권을 섞어 넣어 두면 쓰임새가 넓고, 가족과 직장, 학교 번호를 종이에 적어 두면 배터리가 바닥나도 연락을 이어 갈 수 있다. 호루라기는 무너진 구조물 사이나 연기 속에서 목소리가 닿지 않을 때 위치를 알리는 도구다. 가방 겉주머니처럼 손이 바로 닿는 자리에 달아 두면 급할 때 찾지 않아도 된다.
조명은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볼 만하다. 정전이 나면 촛불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종이나 천 곁에 불꽃을 두면 불씨가 옮겨붙을 수 있다. 커튼과 이불, 책이 가까운 아파트 거실에서는 건전지로 켜는 랜턴이 대체로 안전하다. 촛불을 꼭 써야 한다면 불붙은 채로 자리를 비우지 말고, 종이·천에서 떨어진 단단한 받침 위에 두어야 한다.

구입일과 유효기간을 겉면에 적어야 가방이 살아 있다
가방을 한 번 싸 놓고 몇 해를 방치하면 가장 먼저 탈이 나는 것이 음식과 약이다. 포장 식품과 약 겉면에 구입한 날과 유효기간을 매직으로 크게 적어 두면 가방을 펼치자마자 갈아야 할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라벨을 붙여도 되고, 가방 안쪽에 교체 예정일을 적은 메모를 넣어 두는 방법도 있다.
점검은 최소 1년에 두 번, 계절이 바뀔 때에 맞춰 하면 기억하기 쉽다. 입동을 앞둔 지금과 날이 풀리는 봄을 점검일로 삼는 식이다. 건전지를 확인하고 보조배터리를 충전하며, 유효기간이 가까워진 음식은 평소 식사로 먼저 먹고 새것을 채워 넣는다. 이렇게 돌려 쓰면 버리는 음식이 줄고, 가방에는 늘 기한이 넉넉한 물건만 남는다.
필요한 약은 특히 기한과 용량을 함께 본다. 복용 중인 처방약은 임의로 양을 정해 쌓아 두지 말고 병원이나 약국에서 어떻게 비축할지 상담하는 것이 안전하다. 약 봉투에 담긴 복용법 안내를 사진으로 찍어 두거나 사본을 가방에 넣어 두면 비상시 다른 가족이 대신 챙겨 줄 때도 도움이 된다.
가족 구성에 따라 더할 물건이 달라진다
기본 열두 가지는 출발점일 뿐이고, 집마다 가방에 더할 물건이 다르다. 영유아가 있다면 분유와 기저귀, 노약자가 있다면 상용하는 약과 안경처럼 없으면 곧바로 곤란해지는 물건을 보탠다. 반려동물이 함께 사는 집은 사료와 이동장까지 대피 목록에 올려야 한다. 사람 가방에 반려동물 사료를 섞어 넣기보다 작은 주머니로 나눠 담으면 급할 때 꺼내기 쉽다.
미국 적십자도 비슷한 취지로 가족 재난 계획을 세워 연습해 두고, 가구원 가운데 최소 한 명은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 교육을 받아 두라는 점검 항목을 제시한다. 가방 안의 구급함은 이 교육과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쓸모가 커진다. 반창고와 소독약이 있어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줄기 때문이다.

현관 가까이 두되 대피로는 막지 않고, 신발과 외투를 곁에 둔다
가방은 현관 가까운 곳에 두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신발장 앞이나 복도 한가운데처럼 문을 여닫거나 지나다니는 길을 막는 자리는 피한다. 현관 옆 벽면이나 신발장 위, 붙박이장 하단처럼 평소에 걸리적거리지 않으면서 손이 바로 닿는 곳이 알맞다. 좁은 집이라면 가방을 작게 쪼개지 말고, 높이가 낮은 선반 한 칸을 비상용으로 정해 두는 방식이 낫다.
가방 곁에는 신발과 외투도 함께 둔다. 정전이나 화재 상황에서는 깨진 유리와 연기, 차가운 바닥 때문에 맨발로 움직이기 어렵다. 한겨울이라면 얇은 실내복 차림으로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로 신을 수 있는 운동화나 튼튼한 신발 한 켤레와 두툼한 외투를 가방 옆에 두면 문을 나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누가 가방을 메고 어디서 모일지까지 정해야 완성이다
가방이 완벽해도 가족이 서로 다른 행동을 하면 대피는 흐트러진다. 누가 가방을 들고, 누가 어린이와 노약자를 챙기며, 집을 나선 뒤 어디에서 모일지를 미리 정해 둔다. 모일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공터나 학교 운동장처럼 가족 모두가 아는 곳이어야 하고, 연락이 닿지 않을 때를 대비해 두 번째 후보도 하나 정해 두면 좋다.
이 약속은 말로만 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으므로 점검일에 가방을 펼치면서 한 번씩 실제로 해 본다. 어두운 방에서 가방이 있는 자리까지 걸어가 보고, 문을 열고 신발을 신는 순서를 아이와 함께 몸으로 익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장기 비상대비용 30일분 비축은 국민재난안전포털의 별도 기준이므로, 사흘치 가방이 갖춰진 뒤에 집 사정에 맞춰 천천히 늘려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