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46세… ‘영원한 마왕’ 故 신해철 12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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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홀연히 떠난 故 신해철
한국 대중음악사에 커다란 기록을 남긴 ‘마왕’ 고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철학적인 가사와 선구적인 사운드로 청춘의 가슴을 울렸던 고인은 2014년 가을 우리 곁을 떠났으나 그가 남긴 음악과 시대적 메시지는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갑작스러운 비보와 46세의 영면, 법정 공방으로 번진 의료사고 논란
고 신해철은 2014년 10월 17일 서울 소재 S병원에서 강모 원장의 집도로 장 협착증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직후부터 고열과 극심한 가슴 및 복부 통증을 지속적으로 호소했고 결국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졌다. 쓰러진 즉시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고인은 곧바로 A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는 등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신해철은 같은 달 27일 오후 8시 19분, 향년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숨을 거뒀다.

대중음악계의 중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던 그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팬들과 대중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건강했던 뮤지션의 비보 뒤에는 수술 과정에서의 의료 과실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고 신해철의 부인 윤원희 씨는 병원 측의 업무상 과실치사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사를 의뢰하는 고소장을 제출했고 기나긴 법적 공방의 시작이 됐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고인의 수술을 집도했던 강모 씨는 2016년 1심 재판부로부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돼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한 유족과 검찰 측이 즉각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강 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이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고 2심의 판결을 그대로 확정함에 따라 강 씨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사건이 마무리됐다.
'그대에게'의 전설적인 등장부터 N.EX.T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밴드 ‘무한궤도’의 리드보컬이자 프런트맨으로 출전한 그는 자작곡 '그대에게'로 대상을 거머쥐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인트로의 웅장한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에너지 넘치는 보컬로 무장한 '그대에게'는 발표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최고의 응원가이자 청춘의 송가로 널리 불리고 있다.

이후 신해철은 솔로 가수로 전향해 '0세대 아이돌'로 불릴 만큼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안주하지 않고 록 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하며 한국 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넥스트를 통해 선보인 독창적이면서도 웅장한 사운드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음악적 스펙트럼과 미디 음악 개척자
뮤지션 신해철의 음악 세계는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테크노·신스팝 등 일렉트로니카 음악, 재즈, 심지어 전통 국악과의 크로스오버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이고 다채로운 장르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철학 전공자다운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기존 대중가요의 통념을 깨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노랫말을 선보였다. 삶과 죽음, 문명 비판, 자아 성찰을 다룬 그의 음악은 평단의 극찬과 대중적 흥행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는 작사, 작곡, 편곡, 보컬과 악기 연주는 물론이고 음반 전체의 프로듀싱과 사운드 엔지니어링까지 도맡아 처리한 올라운드 뮤지션이었다. 나아가 자신의 음악 작업을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할 정도로 테크놀로지에 능통했으며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컴퓨터 음악(미디·MIDI)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정착시킨 독보적인 선구자이자 개척자였다.
2014년 10월 고인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전해지자 정치권 인사부터 전 넥스트 멤버들을 포함한 선후배 및 동료 음악인, 방송계와 문학계 인사 등 각계각층의 추모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특히 1988년 대학가요제 당시 심사위원으로 신해철을 발굴했던 가요계의 거장 조용필은 직접 빈소를 찾아 "한국 음악계의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며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
고인을 사랑했던 일반 팬들을 위한 조문 역시 서울아산병원 빈소에서 오후 1~9시 진행됐다. 조문 마지막 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추모객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지자 병원 측은 시간 제한을 없애고 자정 넘어서까지 조문을 허용했다.
당시 소속사 집계에 따르면 빈소를 찾은 총 조문객 수는 무려 1만 5000여 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