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참사 겪은 부모의 자녀 뇌 검사했더니…뜻밖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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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오송 참사 생존자 가족의 삶 추적…부모의 트라우마가 자녀에게 남긴 흔적
국내 첫 재난 경험자 자녀 뇌 MRI 비교 분석…두 부위에서 높은 활성도 확인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고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됐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내와 두 딸의 일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선택한 두 딸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어린 딸은 혼자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악몽을 꾸면서도 아버지에게 위로의 편지를 썼다. 재난을 직접 겪지 않은 가족에게도 참사의 영향은 이어지고 있었다.
27일 오후 10시 방송되는 KBS1 ‘시사기획 창’ 568회에서는 ‘재난 상속’ 편을 선보인다. 제작진은 세월호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을 만나 참사 이후 가족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한다. 특히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연구진과 함께 재난 경험자 자녀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비교 분석하며 부모가 경험한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살펴본다.
세월호서 학생 구하고 돌아온 아빠…두 딸이 겪은 12년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대형 해상 사고였다. 당시 침몰하는 배에서 학생들을 구하고 살아 돌아온 한 아버지도 있었다. 하지만 구조에 나섰던 아버지에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동까지 이어졌다. 참사 이전과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내와 두 딸은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고 곁을 지키며 일상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가 겪은 고통은 두 딸의 삶에도 흔적을 남겼다. 두 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참사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했던 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제작진은 현재 암 투병 중인 첫째 딸을 만나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 동안 두 자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 딸의 질병과 아버지의 트라우마 사이에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방송은 참사 이후 가족들이 겪어온 변화와 고통을 살펴본다.
재난 이후 생존자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생존자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나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족들도 이전과 달라진 생존자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생활 방식과 관계에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번 방송에서는 세월호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두 딸이 지난 12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아버지의 고통이 가족의 일상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오송 참사 생존자 아빠 몰래 울던 딸…편지에 담긴 마음

2023년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또 다른 아버지도 있다. 당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이후에도 트라우마를 겪었다. 하지만 어린 딸에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생활하려고 노력했고, 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딸이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참사 이후 초등학생이던 딸은 이전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걱정하며 편지를 썼고, 혼자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악몽을 꾸는 날도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사고의 기억과 두려움을 딸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딸은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며 마음을 쓰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가족 안에서는 평소와 다른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그동안 자신에게 써준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뒀다. 그리고 이 편지들을 들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딸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은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부모가 트라우마를 숨기려 해도 자녀가 이를 느낄 수 있는지, 재난 이후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특히 참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녀가 부모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짚는다.
뱃속에서 겪은 동일본대지진…219명 추적 연구 결과는?
제작진은 재난이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 도호쿠 지역도 찾았다. 이곳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당시 규모 9.0의 강진과 대형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해안 지역을 덮쳤고, 수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재난을 경험한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남아 있다.
제작진이 만난 사람은 당시 쓰나미로 일본인 남편을 잃은 한국인 여성이다. 남편이 목숨을 잃었을 때 여성의 뱃속에는 막내딸이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가족이 겪은 대형 재난과 상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제작진은 어머니와 막내딸을 만나 참사 이후 가족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어린 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 직후 1년 동안 태어난 자녀 219명을 대상으로 장기 추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0년 넘게 이어진 연구에서는 대지진 당시 어린 태아였거나 재난 이후 태어난 아이들에게서도 재난과 관련된 흔적이 관찰됐다. 제작진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부모가 경험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실이 자녀의 발달 및 건강과 어떤 관련성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다만 재난 이후 자녀에게 나타난 변화가 모두 부모의 트라우마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방송에서는 연구진의 분석을 통해 부모의 경험과 자녀의 변화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확인됐는지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국내 첫 재난 경험자 자녀 뇌 분석…두 부위에서 높은 활성도

이번 방송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국내 연구진과 함께 진행한 뇌 MRI 비교 분석이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과 합동 연구팀을 구성해 재난 경험자 부모를 둔 자녀들의 뇌를 살펴봤다. KBS는 재난 경험자 자녀의 뇌를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최초의 분석 시도라고 설명했다.
분석 대상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자녀들이 포함됐다. 또 일상적으로 참혹한 사고 현장을 마주하는 소방대원의 자녀들도 연구에 참여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로,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남겼다. 세월호 참사 역시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오랜 상처를 남겼다. 소방대원들은 직업 특성상 각종 재난과 사고 현장에 반복적으로 출동하면서 충격적인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이 자녀들의 뇌 MRI를 비교 분석한 결과, 뇌의 두 부위에서 유독 높은 활성도가 확인됐다. 제작진은 이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모가 겪은 트라우마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했다. 다만 특정 뇌 부위에서 활성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부모의 트라우마가 자녀에게 직접 전달됐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뇌의 반응에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송에서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트라우마가 가족 안에서 전이될 가능성과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를 살펴본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족도 겪었다…제주 4·3의 다음 세대는?

재난과 국가 폭력의 영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는 해외에서도 연구돼 왔다. 대표적인 연구자가 미국의 정신의학·신경과학 연구자인 레이첼 예후다 박사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반응의 세대 간 연관성을 연구해 왔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 등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대규모 박해와 생존의 경험이 당사자뿐 아니라 자녀 세대의 심리적·생물학적 특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오랫동안 연구 대상이 돼 왔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예후다 박사를 만나 트라우마 대물림에 관한 연구 결과와 그 의미를 살펴본다. 부모가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가족 관계와 양육 환경, 자녀의 스트레스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다. 이러한 연구는 가족 내 트라우마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특정한 심리적 상처가 모든 자녀에게 동일하게 전달되거나 반드시 다음 세대의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경험한 가족들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제주 4·3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오랜 세월 사건에 대해 말하기 어려웠던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국가 폭력의 기억과 상실을 안고 살아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직접 사건을 경험한 세대는 고령이 됐지만, 그 자녀인 2세대는 이제 3세대에게까지 영향이 이어질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제작진은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그 자녀들을 위한 지원 체계에도 주목한다. 국내에는 재난 피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심리 회복을 지원하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실제 지원 과정에서는 피해 당사자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재난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의 심리적 어려움이 충분히 확인되지 못할 가능성도 살펴본다. 방송은 부모의 트라우마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그 영향을 줄이고 다음 세대의 회복을 돕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짚을 예정이다.

재난은 수습되고 관련 뉴스도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지만 생존자와 유가족의 일상은 사고 이전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구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두 딸, 오송 지하차도 참사 생존자의 어린 딸, 동일본대지진 당시 뱃속에 있었던 아이와 제주 4·3 유가족의 다음 세대까지. 이번 방송은 참사 이후 가족들이 겪어온 변화를 따라가며 재난의 영향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KBS1 ‘시사기획 창’ 568회 ‘재난 상속’ 편은 10월 27일 화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