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열리기도 전에 '패배 대비 소송'까지… 트럼프 분위기 심상찮다

작성일

[미국 중간선거 D-7] 트럼프 남은 2년, 상원 4석에 달렸다

투표함이 열리기도 전에 소송이 제기됐다. 미국 법무부가 22일(현지시각) 알래스카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현역인 댄 설리번 의원이 근소한 차이로 지면 결과 인증을 멈춰 달라는 내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나다"라고 말했다.

알래스카는 1968년 이후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고르지 않은 공화당 텃밭이다. 그런 곳에서 정부가 개표 결과를 묶어둘 법적 장치부터 마련하고 나섰다.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의 다급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법무부가 문제 삼은 사람은 같은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공화당 후보 대니얼 J. 설리번이다. 은퇴한 교사인 그는 알래스카독립당 당원이었다가 출마 직전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법무부는 이름이 같은 후보 탓에 설리번 의원을 찍으려던 유권자들이 헷갈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위선택투표를 하는 알래스카에서 대니얼 설리번에게 간 표가 설리번 의원에게 갔다면 승부가 달라질 수 있으니 이를 조사할 때까지 인증을 미루라는 논리다. 알래스카 선거당국은 지난 6월 대니얼 설리번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하지만 알래스카주 대법원이 이 결정을 뒤집었다. 선거 전에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었던 사안을 투표 직전에야 소송으로 끌고 온 데다 후보 출마를 막으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법조계에선 소송이 곧 기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설리번 의원은 메리 펠톨라 민주당 후보와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다. 펠톨라 후보가 이기면 알래스카는 18년 만에 민주당 상원의원을 배출한다. 1순위 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하위 후보를 차례로 떨어뜨리는 순위선택 집계가 11월 18일 진행된다.

알래스카 한 석에 행정부가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화당에 상원 다수당 지위는 이번 선거의 마지막 보루다. 하원은 이미 민주당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선거 예측 매체 쿡 폴리티컬 리포트는 23일 민주당이 '확실', '우세', '경합우세'로 분류된 선거구만으로 220석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반 기준인 218석을 넘는 숫자다. 공화당이 경합 선거구 17곳을 모두 이겨도 다수당을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여론조사와 예측시장 자료를 종합하는 디시전 데스크 HQ는 22일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할 확률을 78%로 봤다. 예상 의석은 민주당 236석, 공화당 199석이었다. 상원은 민주당 승리 확률이 57%, 예상 의석은 민주당 51석, 공화당 49석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전국 여론조사 흐름도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가 12∼19일 미국 유권자 349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오차범위 ±1.9%포인트)에서 투표 가능성이 높은 응답자의 52%는 민주당 후보를, 41%는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 CNN이 여론조사기관 SSRS를 통해 15∼18일 미국 성인 1701명에게 물은 조사(오차범위 ±2.9%포인트)에선 민주당 49%, 공화당 39%였다. 같은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2%로 이 조사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원 판도는 더 아슬아슬하다. 현재 의석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7석이다. 민주당이 4석을 더 얻어 51석이 되면 다수당이 바뀐다. 공화당은 3석을 잃어 50 대 50 동수가 되더라도 상원의장을 겸하는 JD 밴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로 주도권을 지킬 수 있다. 쿡 폴리티컬 리포트가 경합지로 분류한 곳은 알래스카, 아이오와, 캔자스, 메인, 미시간, 오하이오, 텍사스 7곳이다. 메인을 뺀 6곳은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긴 지역이다.

텍사스에선 공화당이 스스로 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4선의 존 코닌 의원은 지난 5월 공화당 경선 결선투표에서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에게 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선 일주일 전 팩스턴 장관 지지를 선언했다. 텍사스 현역 상원의원이 당 공천에서 떨어진 건 1970년 이후 처음이다. 각종 논란을 안고 본선에 오른 팩스턴 장관은 제임스 탈라리코 민주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텍사스에서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선된 건 1988년이 마지막이다.

민심이 돌아선 가장 큰 원인은 물가다. 전방위 관세로 수입품 가격이 오른 데 이어 2월 말 시작된 이란 전쟁이 8개월째 이어지면서 기름값이 치솟았다. 전쟁 직전 갤런당 3달러를 밑돌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4.3달러 안팎까지 올랐다. 경유 가격은 6달러를 넘었다. 농기계와 화물차에 경유를 많이 쓰는 아이오와 같은 농업 주가 경합지로 바뀐 배경이다. 2024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 쪽으로 돌아섰던 젊은 남성과 히스패닉 유권자 일부가 다시 등을 돌렸다는 조사도 잇따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유세 전면에 나섰다. 그는 이달 3일 오하이오주 반달리아 유세에서 "이 가짜 여론조사들은 한 가지를 반영하지 못한다. 트럼프가 직접 선거운동에 나섰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지자들에게는 자신이 출마한 선거라고 여기고 투표해 달라고 당부했다.

악재를 덜어내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8일 소셜미디어에 “11월 3일 미국에서 치러지는 중간선거 전까지는 어느 시점에도 이란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미군은 세 번째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중동으로 보내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대규모 공습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알래스카에선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5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설리번 의원에게 힘을 실었다.

그렇다면 선거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2년을 어떻게 바꿀까.

민주당이 하원을 가져가면 의회 조사권부터 넘어간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모두 차지하면 증인 소환장 발부 권한도 민주당 손에 들어간다. 민주당은 트럼프 일가의 사업과 재산 증식, 이란 전쟁과 베네수엘라 군사작전 결정 과정,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강경 단속,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 처리, 백악관 동관을 헐고 짓는 연회장 사업 등을 조사 대상으로 꼽아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 카드도 공식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이런 시나리오를 예견했다. 그는 올해 1월 공화당 하원의원 연찬회에서 "중간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들은 나를 탄핵할 구실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탄핵 방어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을 영입하며 민주당의 공세에 대비해왔다.

다만 대통령 파면까지 가는 길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두 차례 하원에서 탄핵소추됐지만 상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탄핵소추는 하원 과반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파면하려면 상원 100석 가운데 67표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상원까지 이겨도 닿기 어려운 숫자다. 민주당 안에서 대통령보다 각료 탄핵에 무게를 두는 기류가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1순위로 거론되는 인물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다. 헤그세스 장관을 상대로는 이미 공화당 소속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이 이란 전쟁 수행 등을 문제 삼아 탄핵소추안을 낸 상태다.

상원까지 민주당에 넘어가면 타격은 인사로 번진다. 장관과 연방판사, 대법관 인준은 모두 상원 권한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마가 판사'가 대법원과 하급법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게 상원을 되찾으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슈머 원내대표는 "주마다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질렸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의회 권력을 잃은 트럼프 대통령이 독주를 멈출지는 미지수다. 그는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지난 2년 동안에도 의회를 우회했다. 전방위 관세는 입법 없이 대통령 권한으로 밀어붙였다. 의회가 배정한 예산을 다른 곳에 돌려 쓰기도 했다. 남은 임기에는 예산 집행 보류와 비상사태 선포 같은 행정 수단, 그리고 대통령 재량이 넓은 외교·안보 분야에 더 기댈 것이라는 전망이 워싱턴에서 나온다. 선거 뒤 이란 대규모 공습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같은 '한방'을 노릴 수 있다는 관측도 같은 맥락이다.

백악관 안에선 패배를 전제로 한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선거 뒤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리 젤딘 환경보호청장 등이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백악관은 익명 소식통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며 일축했다. 공화당 일부 의원은 이민과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놓고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반대로 공화당이 상원을 지키면 그림이 달라진다. 하원을 내주더라도 인준권을 쥔 상원이 버티면 내각 인사와 사법부 구성은 트럼프 대통령 뜻대로 할 수 있다. 공화당은 2016년과 2020년 대선 때 여론조사가 트럼프 지지층을 과소평가했던 전례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 관심이 대선보다 낮은 중간선거에선 여론조사 오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018년 1기 중간선거 당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하원에서 40석 넘게 잃었다.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하원 의석을 늘린 사례는 1934년, 1998년, 2002년 세 차례뿐이다.

이번 선거는 2028년 대선 레이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내년 1월 제120대 의회가 문을 열면 양당은 곧바로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3선에 도전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차기 주자들 사이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에서 참패하면 그 영향력에도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선거 관리를 둘러싼 불안도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투표소에 연방 요원을 보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법무부는 알래스카에 앞서 지난주 캘리포니아주를 상대로 비시민권자 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소송도 냈다.

알래스카에서 1순위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당선자는 순위선택 집계가 진행되는 11월 18일에야 가려진다. 법무부 소송이 기각되지 않으면 결과 인증은 그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