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정년연장 결사반대” vs 한국인 “정년연장 대환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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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연령 두고 프랑스-한국이 보이는 모습 정반대인 이유
더 오래 일하라는 정부에 맞서 온 나라가 있다. 반대로 더 오래 일하게 해달라고 정부를 재촉하는 나라도 있다. 은퇴 나이를 두고 프랑스와 한국이 보이는 모습은 정반대다.
프랑스 하원은 22일(현지시각) 42년 동안 보험료를 낸 근로자가 62세부터 일을 그만둘 수 있게 하는 수정안을 가결했다. 법정 은퇴 연령을 64세로 올린 2023년 개혁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성격의 조치다. 이에 앞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년연장 법안은 연내에 꼭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노동계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일이다.

최근 프랑스 거리를 뒤덮은 연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년이 아니라 생활비였다.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시위는 연료비와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집회로 시작했다. 고교생들이 불씨를 키웠다. 교사 부족, 낡은 학교 건물, 과밀 학급, 대입 지원 시스템 '파르쿠르쉽' 운영 방식에 반발한 것이다. 노란조끼 운동 참가자들은 텔레그램으로 집회 장소를 공유했다. 노동총동맹(CGT)과 연대노조(Solidaires), 농민연맹(Confédération paysanne)도 합류했다.
로랑 뉘네즈 프랑스 내무장관은 전국 110개 행진에 55만명이 참가했다고 집계했다. 파리에서만 11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주최 측은 참가자를 80만명으로 추산했다.
시위는 곳곳에서 폭력 사태로 번졌다. 중서부 도시 리모주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1883년 문을 연 시청 건물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불을 질렀다. 지붕과 종탑이 무너졌다. 모리스 바라트 오트비엔 도지사는 이 화재를 "문화유산의 재앙"이라고 불렀다. 마르세유와 리옹, 릴, 렌에서도 쓰레기통 방화와 상점 파손이 이어졌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17일 밤 파리 도심에서 경찰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1200명이 체포되고 경찰과 헌병 15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르코르뉘 총리는 강경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를 향해 "이제는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할 때"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 구호에서 은퇴 연령은 전면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연금은 여전히 프랑스 정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3년 전 프랑스 거리를 가득 메운 구호가 바로 ‘64세 반대'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3년 법정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연금 개혁을 밀어붙였다. 반대 시위가 정점에 이른 그해 3월 7일 내무부 집계 참가자는 128만명이었다. 정부는 같은 달 16일 하원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헌법 49조3항을 발동했다.
이 개혁은 2년여 만에 멈췄다. 르코르뉘 총리는 2025년 10월 14일 하원 시정연설에서 연금 개혁 중단을 발표했다. 하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가 사회당의 불신임 표결 동참을 막으려고 내놓은 카드였다. 이 조치는 지난해 12월 의회를 통과한 2026년 사회보장재정법에 담겼다. 1964년생의 은퇴 연령은 63세로 오르지 않고 62세 9개월로 묶였다. 연금을 전액 받는 데 필요한 납입 기간도 171분기가 아니라 170분기로 고정됐다. 2027년 대선 일정을 감안해 중단 기간은 2028년 1월까지로 정했다. 64세 은퇴는 1969년생부터 적용되도록 늦춰졌다.
의회에서는 은퇴 연령을 아예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원은 22일 2027년 사회보장재정법안을 심의하면서 생태사회그룹이 낸 수정안을 찬성 45표, 반대 36표로 가결했다. 168분기, 즉 42년 동안 보험료를 낸 근로자는 62세부터 법정 은퇴 연령에 이를 때까지 휴가 형태로 일을 쉴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이 비용은 기업이 부담하고, 대신 기업은 사회보험료를 감면받는다. 본회의에서 수정안 취지를 설명한 상드린 루소 의원은 이 제도를 "법정 은퇴 연령까지의 휴가"라고 표현했다.
정부는 반대했다. 장피에르 파랑두 노동장관은 의원들에게 "기업들이 여러분에게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었다. 파랑두 장관은 기업들이 "직원들이 그 기준에 이르기 전에 내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티보 바쟁 하원 사회보장예산 총괄보고관은 이 수정안이 상징적일 뿐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수정안은 하루 만에 효력을 잃었다. 하원은 23일 오전 법안의 세입 부분을 사실상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프랑스 사회보장법전은 세입 부분이 부결되면 법안 전체를 부결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수정안도 함께 폐기됐다. 법안은 정부 원안 상태로 상원으로 넘어갔다.
정부 원안에도 은퇴자들이 반발할 대목이 들어 있다. 일정 금액 이하 연금만 물가에 맞춰 올리는 내용이다. 그보다 많은 연금은 인상 폭을 물가상승률의 절반으로 줄이거나 동결한다. 연금 소득에 적용하는 10% 소득공제 한도도 가구당 약 4500유로에서 3000유로로 낮춘다.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과 CGT, 노동자의힘(FO), 전국자율노조연맹(UNSA), 단일노조연맹(FSU)은 11월 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은 요구 사항에 기본연금과 보충연금 인상을 넣었다.
프랑스인이 은퇴 연령과 연금액에 이토록 민감한 것은 연금만으로도 일하던 시절과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1월 낸 '한눈에 보는 연금 2025'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 평균 소득 근로자의 세후 연금 소득대체율은 70.0%다. 세전 기준으로는 56.6%다.
프랑스 보건부 산하 통계국(DREES)에 따르면 2022년 은퇴자의 중위 생활수준은 월 2030유로로 전체 인구와 같았다. 은퇴자 빈곤율은 10.0%로 전체 인구 빈곤율 14.4%보다 낮았다. 프랑스에서는 은퇴가 소득 절벽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은퇴 연령은 프랑스 사회가 싸워서 얻어낸 권리라는 의미도 갖는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 정부는 1982년 법정 은퇴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낮췄다.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가 2010년 이를 62세로 올리자 대규모 반대 시위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문제는 재정이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14% 안팎을 연금에 쓴다. 프랑스 감사원은 2025년 2월 20일 낸 보고서에서 연금 재정 적자가 2025년 66억유로에서 2035년 약 150억유로, 2045년 약 300억유로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감사원장은 적자가 2030년 이후 "뚜렷하고 빠르게, 갈수록 커지는 방식으로"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상황은 정반대다.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1969년생부터 65세다. 정년퇴직 뒤 최대 5년 동안 월급도 연금도 없는 '소득 크레바스'가 생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5월 27~28일 전국 만 20~69세 1000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리는 방안에 88.3%가 찬성했다. 찬성률은 40대가 90.6%, 50대가 89.3%였다. 찬성 이유(복수응답)는 국민연금 수급 공백에 따른 경제적 불안이 69.0%, 수명이 늘어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50.7%, 인구 감소에 따른 숙련 인력 부족이 39.8%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연금만으로 노후를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은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OECD '한눈에 보는 연금 2025'를 분석했다. 한국 평균 소득자의 세전 연금 소득대체율은 33.4%로 같은 보고서의 프랑스 수치 56.6%에 크게 못 미쳤다.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39.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은 14.8%다. 국가데이터처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으로 2024년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처분가능소득 기준)은 35.9%였다.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지만 여전히 노인 3명 중 1명꼴이다.
국회는 지난해 3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3%로 높이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소득대체율 43%는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 명목 수치다. 가입 기간이 짧은 지금의 중고령층이 실제로 받는 연금과는 거리가 멀다.
정년연장 입법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정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법안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올해 1월 입법 시점을 6·3 지방선거 이후로 미뤘다. 노동계는 회의장에서 퇴장하며 반발했다.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과 청년 채용 위축을 이유로 든다. 법정 정년을 늘리는 대신 퇴직자를 다시 고용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13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오늘 논의해도 늦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국회 논의가 충분히 이뤄진 만큼 정부안을 조속히 내놓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