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설 휩싸였던 북한 김정은, 파격적인 행보로 건재 과시
작성일
신압록강대교 건너 당일치기 중국 방문
해외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사망설에 휩싸였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예고 없이 국경을 넘어 중국을 찾는 방식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최근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직접 건너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하루 일정으로 다녀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당일치기로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오전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전용열차로 이동했다. 이어 전용차를 타고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단둥에 들어섰다. 통일부는 전날 오후 김 위원장이 신압록강대교를 거쳐 단둥에 도착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북한과 중국 어느 쪽도 사전에 방문 일정을 알리지 않았다.
신압록강대교는 평안북도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길이 3026m, 왕복 4차로 다리다. 중국이 건설비를 전액 부담해 2014년 완공했다. 북한 측 연결도로와 통관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12년 동안 쓰이지 못하다가 지난 15일에야 정식 개통했다. 김 위원장이 이 다리를 직접 건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사망설은 최근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가 퍼뜨리면서 시작됐다. 이 주장이 국내외 매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김 위원장의 신변을 둘러싼 억측이 꼬리를 물었다.
북한은 이미 관영매체를 통해 반박에 나섰다. 북한은 지난 20일 김 위원장이 경공업 부문 전시회장을 찾은 모습을 공개했다. 전날에는 김 위원장이 22~23일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제3차 중대장대회를 주재하고 연설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국가정보원도 2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보고했다. 국정원은 같은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도 함께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사진 공개에 그치지 않고 직접 국경을 넘었다. 그것도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 외국 땅에서 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사망설을 정면으로 일축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단둥에 들어선 장면은 중국 매체 화면으로도 공개됐다. 중국중앙TV(CCTV)는 김 위원장이 대교 위에서 환영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내보냈다. 김 위원장이 왕후닝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과 함께 대교 위를 걷는 장면도 담겼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주석은 전날 오전 단둥 항미원조기념관 광장에서 김 위원장을 맞았다. 왕 주석은 중국 권력 서열 4위다. 왕 주석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사와 축원을 김 위원장에게 전했다.
김 위원장은 왕 주석과 함께 항미원조기념탑에 헌화했다. 김 위원장은 화환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문구를 직접 매만졌다. 화환에는 '중국인민지원군 렬사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는 북중 양국 국가가 연주됐다. 참석자들은 중국군 전사자들을 기리며 묵념했다.
김 위원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목숨과 피로 조선을 도운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을 추모하고 항미원조 영웅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영원한 경의를 표하려고 특별히 단둥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념관 전시실도 둘러봤다. 중국군의 전투와 북중 공동작전에 관한 유물과 사료를 관람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등의 사진과 친필 메시지를 담은 기념패도 선물했다.
이번 방문 시점은 중국의 6·25전쟁 참전 기념일인 25일 '항미원조 기념일'을 하루 앞둔 때였다. 중국군은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참전했다. 중국은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올해는 76주년이다.
김 위원장은 왕 주석과 회담에서 중국의 오랜 지원에 감사를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사회주의 사업을 지지하고 도와준 데 감사한다"며 "양국 협력의 전망은 매우 넓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적 우의를 이어가고 실무 협력을 넓혀 두 나라 인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고 싶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가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 체결 65주년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다음 주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20기 5중전회)의 성공도 기원했다.
왕 주석은 김 위원장의 방문이 피로 맺어진 북중 우의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왕 주석은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방중과 올해 6월 시 주석의 방북으로 양국 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왕 주석은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인적 왕래와 경제·무역 협력을 넓혀 양국 인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후 단둥의 자동차 공장을 함께 찾았다. 김 위원장은 버스 조립 등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었다. 김 위원장은 해 질 무렵 다시 신압록강대교에 올라 귀국길에 나섰다. 왕 주석은 대교까지 나와 김 위원장을 배웅했다.
이번 방중에는 북한 핵심 인사들이 대거 따라나섰다. 조용원 노동당 비서와 최선희 외무상, 김성남 당 국제부장, 김덕훈 내각 제1부총리, 김여정 당 총무부장이 동행했다. 중국에서는 왕이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류하이싱 당 대외연락부장,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이 함께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 참석 이후 1년 1개월 만이다. 집권 이후 6번째 방중이다. 앞선 다섯 차례 방중 때는 모두 시 주석과 회담했다. 시 주석을 만나지 않고 귀국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김 위원장을 맞을 중국 측 인사는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리 총리가 단둥을 찾는 것으로 계획됐다가 바뀌었다는 국정원의 추가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26~2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20기 5중전회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왕 주석에게 시 주석에 대한 인사를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격적인 방중 소식에 외신들도 긴급 타전에 나섰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AP통신은 한국 정부 발표를 인용해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신속히 보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신문도 온라인 속보를 잇달아 내보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중 양측에서 공식 발표가 없는 현 단계에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관영매체는 전날 저녁까지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가 먼저 회담 내용과 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