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이 한국기업에 취직해 근무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작성일
국내 기업 위장 취업한 북한 IT 인력
한국에 오지 않고 해외에서 원격근무
국내 민간 기업에 위장 취업한 북한 IT(정보기술) 인력이 한국 땅을 밟지 않고 해외에서 원격으로 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인력이 회사가 지급한 업무용 노트북을 제3의 장소에 모아 두고 원격으로 접속하는 이른바 '노트북 농장(Laptop Farm)' 수법을 썼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조선일보가 24일 단독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 IT 기업에 위장 취업한 북한 IT 인력 A씨는 국내에 입국하지 않은 채 해외에 머물며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다만 A씨가 북한 안에서 일했는지, 제3국에 머물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 IT 인력이 국내 기업에 채용돼 실제 업무를 맡은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은 경찰청 안보수사국이 22일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실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공개됐다.
경찰은 지난해 이 위장 취업 의혹 1건을 자체적으로 인지해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국내 민간 업체 개발팀에서 핵심 개발 업무까지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 이름과 근무 기간, 급여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경찰에 북한 조직의 개입 여부를 철저히 밝혀내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관계 기관에는 국내 기업의 보안 체계와 채용 검증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는 지난해 2월 A씨가 한국 IT 기업에 위장 취업해 근무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해 왔다. 경찰은 북한 IT 인력이 미국 기업 등에 위장 취업할 때 써 온 수법에 비춰 A씨가 한국인 신분을 도용했을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A씨에게 지급된 급여의 규모와 전달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취업 과정에 북한 조직이나 다른 조력자가 개입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경찰이 의심하는 노트북 농장은 북한 IT 인력이 위장 취업한 회사에서 받은 업무용 노트북 여러 대를 한곳에 모아 인터넷에 연결해 두고 해외에서 원격으로 접속해 일할 수 있게 만든 거점이다. 업무용 노트북을 제3의 장소에서 받아 둔 뒤 VPN(가상 사설망) 등을 이용해 북한 등 다른 나라에서 접속하는 방식이다.
이 수법은 미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적발됐다. 미국 법무부는 13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등에서 노트북 농장 40여 곳을 적발해 노트북 등 장비 187대를 압수하고 관련자 14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수색은 지난달 21~25일 진행됐다. 이들의 위장 취업으로 미국 기업 70곳 이상이 피해를 봤다. 북한 IT 인력이 벌어들인 돈은 300만달러(약 40억원)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소된 이들 가운데는 미국인 2명과 중국 국적자 10명이 포함됐다.
라이언 레이볼드 텍사스 북부연방지검장은 "이번 작전은 미국의 적들이 미국 기업을 악용하거나 국가 안보를 위협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앞서 2023년에는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주택에서 업무용 노트북 90여 대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북한 IT 인력들이 이 집을 위장 거점으로 삼아 3년 동안 미국 기업 309곳에 위장 취업해 1700만달러(약 225억원)를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이 집에서 노트북 농장을 운영한 미국인 크리스티나 채프먼은 지난해 7월 징역 102개월을 선고받았다.
FBI에 따르면 북한 IT 인력들은 최근 노트북 농장을 작게 쪼개 여러 곳에 분산하고 있다. 위장 취업 사례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북한 IT 인력이 이런 방식으로 위장 취업을 시도한 나라는 100여 개국, 운용한 노트북은 3만대에 가깝다. 일본 사법 당국도 최근 자국 내 노트북 농장을 적발해 해체했다.
FBI는 북한 IT 인력의 위장 취업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IT 기업들 사이에 비대면 채용과 원격 근무가 퍼지면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가상 인물의 얼굴을 화상 면접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수법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은 화상 면접에서 "김정은을 욕해 보라"고 요구하는 등 검증을 강화했다. 그러자 신분을 숨기는 수법도 한층 교묘해졌다. 최근에는 취업하려는 기업이 있는 나라의 합법 거주자에게 돈을 주고 면접을 대신 보게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생활고를 겪는 현지인에게 화상 면접과 소변 검사, 지문 제출을 대신 맡긴 사례도 드러났다.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 IT 인력이 위장 취업으로 번 돈의 상당액이 북한 정권으로 흘러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FBI는 13일 "북한 핵심 정보기관인 정찰총국과 무기 개발·연구·생산을 총괄하는 군수공업부가 대규모 ‘IT 노동자 부대'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IT 인력이 벌어들이는 수익 가운데 85~90%가 북한 정부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원격 근무를 하던 북한 IT 인력이 기업 내부의 민감한 자료를 빼낸 뒤 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거액을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해고되자 직장 상사와 그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며 돈을 뜯어낸 사례도 있었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에는 위장 취업 표적이 방산 업체와 정부 관련 업체로까지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