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5000건 조제했는데 무려 91%가... 황당한 '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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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박이' 한방 첩약... 교통사고 환자 91%에 같은 약재·같은 용량
환자마다 약재와 용량을 달리해 지어야 하는 한방 첩약이 교통사고 환자들에게는 사실상 같은 처방으로 대량 조제된 정황이 드러났다. 자동차보험 청구액이 많은 한방병원들의 조제 내역을 보면 가장 많이 나간 첩약 10건 가운데 9건은 약재별 용량까지 똑같았다.

KBS가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자동차보험 첩약료 청구액이 많은 한방병원 10곳의 1년 치 처방·조제 내역서 20만 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3일 보도했다.
KBS가 보도에서 소개한 일반적인 첩약 조제 과정은 이렇다. 약재마다 무게를 따로 재 약포에 담은 뒤 탕전기에 넣어 두 시간가량 달인다. 이렇게 하면 환자마다 서로 다른 첩약이 나온다. KBS와 인터뷰한 한약사는 "환자의 상태나 체질, 질병 증상 등에 따라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흔히 한약이라고 부르는 첩약은 여러 약재를 섞어 달인 탕약이다. 환자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약재와 용량을 다르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처럼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맞춰 조제한다는 이유로 자동차보험의 첩약료 수가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돼 있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에서 한의원과 한방병원에 지급한 첩약료는 2200억원에 이른다.
KBS 분석 결과 이들 병원이 가장 많이 처방한 첩약은 감초 등 12가지 약재가 들어간 '천수당귀지통탕 교통사고신방1호'였다. 이 첩약은 5만5000건이 조제됐다. 이 가운데 91%는 약재별 용량이 모두 같았다.
이 첩약은 200개가 넘는 질병에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방2호'와 '신방3호' 등 다른 첩약들도 10건 중 9건은 약재별 용량에 차이가 없었다.
법원 판례에 따르면 첩약으로 인정받으려면 환자의 병세와 체질, 연령, 성별 등을 고려해 조제해야 한다. 그런데도 판박이 처방이 이어진 것이다. 올해 초에는 환자 600명분의 탕약을 한꺼번에 조제해 놓고 첩약료를 청구한 한방병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수가만 비싸게 받아 자동차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한 의원은 KBS에 "사실상 찍어내기식 처방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보험료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처방과 조제 과정에 대한 심사를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의사협회 측은 대량 일괄 조제를 옹호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교통사고 환자의 특성상 비슷한 처방이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을 KBS에 밝혔다.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은 대체로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돈은 돈대로 받아 가면서 공장식으로 찍어내서 팔았다"며 "양의나 한의나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놀랍지도 않다" 같은 반응도 이어졌다. 다른 네티즌은 "교통사고에 무슨 한약을 먹느냐"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가 이제야 불거졌다며 뒤늦은 문제 제기를 지적하는 반응도 있었다.
한의원 업계 내부 사정을 안다고 밝힌 네티즌들의 글도 있었다. 자신을 한의원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교통사고 환자가 오면 탕약도 다 똑같이 나가고 가끔은 아픈 상태와 상관없이 보약으로 처방하기도 한다"며 "모든 한의원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요즘 한의원에서는 약탕기를 잘 안 쓴다. 업체에서 다 달여 오는데, 약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원장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침을 놓고 부항을 뜨는 건 어느 정도 괜찮은 고령층 복지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자동차보험으로 첩약을 처방하는 걸 보면 정말 가관이다.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비용만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차원의 전수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정부는 교통사고 환자에게 처방된 한방 첩약의 적정성과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 실태를 전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네티즌은 "환자의 증상과 진료 기록이 서로 다른데도 같은 약재와 용량으로 반복 처방한 사례에 대해 처방 근거와 의학적 필요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며 "부당 청구가 확인되면 진료비를 환수하고 행정 처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보도 내용에 반론을 펴는 네티즌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공장에서 만든 약이 아니고 개인별로 지어 처방했으면 맞는 것 아니냐. 별걸로 다 시비를 건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은 "보험회사에서 한의원으로 들어가는 돈이 아까웠나 보다"라며 보험업계 의도를 의심했다. 교통사고 대인 보상 처리에 대한 불만 때문에 환자들이 한방병원을 찾는 것이라며 보험사 쪽 책임을 거론하는 반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