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산은 공정하게 채무는 근거대로" 제물포구·영종구 갈등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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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재정 갈등 중재 나서야

인천 제물포구(구청장 김찬진)와 영종구(구청장 손화정)의 재정 승계 갈등이 자산과 채무, 장학재단 재산 배분, 과거 보상 책임을 둘러싼 복합적인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행정체제 개편으로 새로운 자치구가 출범했다면 그에 따른 재산과 의무도 명확한 기준에 따라 정리돼야 한다.

이상열 경인취재본부장
이상열 경인취재본부장

그러나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합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와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책임을 가리고 갈등을 풀어낼 해법을 찾는 일이다.

핵심 쟁점은 종전 중구에서 발생한 181억 원 규모의 일시차입금이다. 제물포구는 차입금 발생 경위와 법적 승계 근거를 확인해야 하며, 기존 자금승계 합의에 비춰 재정 부담이 적정하게 배분됐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영종구는 해당 차입금이 종전 중구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발생한 공적 채무인 만큼, 행정의 연속성에 따라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은 모두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설명만으로 채무의 법적 책임이나 부담 비율을 확정할 수는 없다. 차입금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발생했는지, 실제 사용처는 어디인지, 관련 합의문과 법령은 채무 승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법적 책임과 별개로 재정 부담을 조정할 여지가 있는지도 구분해 논의해야 한다. 채무는 감정이나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근거와 절차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제물포구가 제기한 예산 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같은 원칙으로 살펴봐야 한다.

제물포구는 종전 중구가 행정체제 개편을 앞둔 시기에 영종지역에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을 집행했다고 주장한다. 영종구는 원도심의 행정복지센터와 주차장 조성 등을 추진하고 기존 원도심 자산을 승계하는 등 상생을 위해 재정적 부담을 감수했다고 반박한다.

이처럼 양측이 서로 다른 지출과 양보를 내세우는 상황에서는 특정 사업의 금액만 비교해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사업의 필요성과 실제 집행액, 자산의 가치, 지역별 공공서비스 수요를 함께 검증해야 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경험은 이 과정에서 참고할 만하다. 2010년 출범한 통합 창원시는 옛 창원·마산·진해 지역의 예산 배분 비율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통합 당시 마련한 지역별 배분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낙후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행정구역을 하나로 묶더라도 지역 간 형평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주·청원 통합 사례에서는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양측은 통합 과정에서 상생발전방안을 마련했고, 통합 이후에도 세부 과제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며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해 왔다. 합의는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과제와 점검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물포구와 영종구 역시 기존 합의의 문구를 서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합의의 취지와 구체적인 이행 내용, 법적 효력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제물포구는 영종구가 과거 중구에서 발행한 일시차입금 181억원을 우선 상환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행정체제 개편 과정에서 발생한 재정 문제를 정상화하는 절차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년 3월 제물포구 출범 공동실무협의회에서 의결한 인천시·중구·동구 간 자금승계 합의에서는 ‘행정체제 개편에 따른 신설 자치구의 재정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 일시차입금 발생을 지양하고, 승계자금이 부족하더라도 신설 자치구 간 추가적인 자금 조정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일시차입금 181억원은 대승적 결단으로 상환한 것이 아닌 원인자부담원칙에 따라 '당연히 갚아야할 채무'라고 판단해서다.

제물포구는 자금승계 합의에 따라 국가와 인천시에 돌려줘야 할 보조금 잔액 등 약 123억 원을 넘겨받지 못했는데, 일시차입금 181억 원까지 부담하라는 것은 기존 합의와 맞지 않고 제물포구에 부담을 두 번 지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제물포구는 인현동 화재 보상금과 각종 미처리 부담이 넘어왔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사안들은 각각 적용되는 합의와 법적 근거가 다를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책임 공방으로 묶기보다 장학기금의 안분 기준, 이사회 의결의 효력, 보상 의무의 발생 시점과 조례 승계 내용 등을 사안별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장학사업과 화재 피해 유가족에 대한 보상처럼 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양측의 다툼 때문에 지연돼서는 안 된다. 최종적인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절차는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법적으로 가능한 지원과 행정 절차를 먼저 진행해 주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행정기관 사이의 갈등이 주민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돌아가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천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천시는 제물포구 출범을 위한 공동합의 과정에서 지역 발전과 주민 편익, 화합을 강조해 왔다.

이제 그 원칙을 실질적인 갈등 조정으로 연결해야 한다. 양측의 주장만 전달하거나 자율적인 합의를 기다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공동실무협의회 합의문과 회계자료, 자산·채무 인계인수 자료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협의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양측이 동의한다면 회계·법률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동 검증 절차를 운영하고, 쟁점별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 근거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검증 결과를 토대로 법적 책임이 명확한 사안은 그에 따라 처리하고, 조정이 가능한 재정 문제는 지역 형평성과 주민 편익을 고려해 협의해야 한다.

사안별 처리 기한과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이는 어느 한쪽에 양보를 강요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불신을 줄이고 합의의 근거를 분명히 하기 위한 장치다.

제물포구와 영종구는 행정체제 개편의 당사자로서 서로 다른 지역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궁극적으로 주민의 삶을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의 책임만 강조하고 자신의 입장만 되풀이한다면 갈등은 장기화하고 행정에 대한 주민의 신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합의가 있다면 지키되 해석에 이견이 있을 때는 근거를 공개하고, 책임이 불분명하다면 공동으로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상생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거나 다른 쪽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산은 객관적인 가치와 승계 기준에 따라 정리하고, 채무는 법적 근거와 발생 경위에 따라 책임을 가리며, 주민에게 필요한 사업은 갈등 속에서도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천시의 적극적인 중재와 양측의 책임 있는 협의가 필요한 이유다.

행정체제 개편의 성공 여부는 새로운 구의 출범 자체가 아니라, 개편 이후 주민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고 지역 간 신뢰가 얼마나 회복되는지에 달려 있다. 제물포구와 영종구가 지금의 갈등을 투명한 검증과 합리적인 합의로 풀어낸다면, 이번 분쟁은 상생의 원칙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공방이 아니라 근거를 공개하고 책임을 다하는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