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방화범, 집 벽에 걸어둘 '종이 등록증'에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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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방화범, 종이 특허등록증에 집착…4년 전에도 같은 법인 찾아가 협박
건물 두 곳에 연쇄 방화해 19명 부상…경찰, 구속영장 신청 방침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물 두 곳에 잇따라 불을 질러 19명을 다치게 한 70대 남성이 종이로 된 특허등록증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특허법인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남성은 4년 전에도 같은 특허법인들을 찾아가 휘발유를 뿌리며 협박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 발생한 역삼동 연쇄 방화 사건의 피의자 A 씨는 2022년에도 특허 등록 문제로 갈등을 빚던 특허법인 두 곳을 찾아가 직원들을 위협하다 구속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A 씨는 특허 등록과 관련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특허법인 소속 변리사 B 씨는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 씨가 4년 전에도 특허 등록 문제로 사무실을 찾아와 불만을 제기했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B 씨는 "4년 전에도 찾아와서 불만을 얘기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이해시켜서 잘 해결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방화 시도와 관련해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상황도 언급했다. B 씨는 경찰로부터 A 씨와 정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질문을 해도 엉뚱한 답변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종이 등록증 없다는 이유로 사기 주장…변리사도 답답함 토로

A 씨가 특허법인에 불만을 품은 배경에는 유럽에 등록한 디자인 관련 권리의 증명서 발급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 씨의 설명에 따르면 A 씨는 특허법인을 통해 유럽에서 디자인 등록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환경 보호 등의 이유로 종이 등록증을 발급하지 않았고 A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허법인은 유럽에서 발급된 등록 결정서를 출력해 증명 자료로 사용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A 씨는 별도의 종이 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는 A 씨가 특허등록증을 집 안 벽에 걸어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 씨가 종이로 된 등록증을 갖는 데 집착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B 씨는 "유럽에서 안 해주는 걸 내가 만들어줄 수도 없지 않으냐"며 없는 종이 등록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특허법인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취지로 토로했다.

실제 A 씨는 지난 20일 경찰에 붙잡혀 서울 수서경찰서로 압송되는 과정에서도 특허법인을 향한 불만을 드러냈다. 취재진 앞에서 "특허 법인에서 사기를 쳤다"고 주장하며 문자메시지 내용을 인쇄한 종이를 펼쳐 보였다.
해당 출력물에는 '이 서류 보내드렸을 텐데, 이게 등록증으로 보시면 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특허법인 측이 A 씨에게 종이 등록증 대신 기존 서류를 증빙 자료로 활용하라고 안내한 내용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A 씨가 주장하는 사기 피해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허법인 측은 정상적인 등록 절차를 거쳤으며 현지에서 별도의 종이 등록증을 발급하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4년 전에도 휘발유 뿌리며 협박…이웃들은 별다른 문제 없었다고 진술

A 씨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특허 등록 문제를 이유로 같은 건물들을 찾아간 적이 있다. 2022년에는 특허법인 직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며 협박하다 방화예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에는 실제 대형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4년 뒤 같은 특허법인들이 입주한 건물에서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과거 사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면 A 씨가 거주했던 동네 주민들은 평소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이웃은 연합뉴스에 약 2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 A 씨의 얼굴을 몇 차례 본 정도라며, 시끄럽게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A 씨가 살던 집도 현재는 비어 있고 이사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6년 전부터 인근에 거주했지만 A 씨가 이웃들과 다툼을 벌이거나 시비를 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엘리베이터 앞부터 불 질러…7분 간격 방화로 19명 부상

A 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 54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명빌딩 3층에 불을 지른 뒤 낮 12시 1분께 약 200m 떨어진 한양빌딩 4층에서도 방화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두 건물에는 모두 A씨와 갈등을 빚었던 특허법인이 입주해 있었다.
앞서 KBS는 A씨가 신명빌딩 3층 엘리베이터 앞에 불을 놓은 정황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엘리베이터 부근에는 특허법인 대표실과 상담실 등이 있었으며 불이 출입 동선에서 시작되면서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이후 공개된 건물 내부 영상에는 사무실과 복도가 검게 그을리고 천장 구조물과 사무용 집기들이 불에 타 훼손된 모습이 담겼다. 일부 사람들은 출입구 쪽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창문을 깨고 탈출해야 했다.
A 씨가 범행을 사전에 준비한 정황도 나왔다. 그는 경찰서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범행을 언제부터 준비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한 3일 됐다"고 답했다.

KBS가 공개한 영상에는 A 씨가 인화물질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통 두 개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번 화재로 모두 19명이 다쳤다. 중상자는 5명, 경상자는 14명이다. 신명빌딩에서 근무하던 변리사 1명은 복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다른 부상자들 역시 화상과 연기 흡입에 따른 호흡곤란 등의 증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소방과 경찰은 인력 291명과 장비 56대를 동원해 화재를 진압했다.
범행 후 지하철 타고 도주…경찰, 구속영장 신청 방침
A 씨는 두 건물에서 불이 난 직후 현장을 벗어나 서울 동대문구 일대 등을 거쳐 지하철로 이동했다. 경찰은 추적 끝에 같은 날 오후 4시 16분께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 인근에서 A 씨를 긴급체포했다. 첫 화재가 발생한 지 약 4시간 만이었다.
경찰은 A 씨에게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를 적용해 조사하고 있다. 범행을 사전에 준비한 경위와 4년 전 동일한 특허법인을 상대로 방화를 시도했던 사건 사이의 연관성도 살펴볼 예정이다.
경찰은 21일 중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범행 동기와 구체적인 수법, 사전 계획 여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