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뽑더니 국화꽃을…' 현직 소방관이 올린 1분 영상, 모두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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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 빼고 국화꽃 꽂다…소방관의 침묵의 추모
순직 소방관 애도하는 1분 영상, 20만 조회수 돌파

유리컵에 꽂힌 빨대 하나를 조용히 뽑아낸다. 그 자리에 놓인 것은 하얀 국화꽃 한 송이. 아무런 말도 없이 이어지는 짧은 장면이 온라인에서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현직 소방관이 직접 공개한 이 영상에는 특별한 대사도, 긴 설명도 없지만 이를 본 누리꾼들의 추모와 감사가 이어지고 있다.

현직 소방관이 올린 추모 영상 / 유튜브 '소방관 삼촌'
현직 소방관이 올린 추모 영상 / 유튜브 '소방관 삼촌'

영상이 공개된 시점은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이른바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던 때다. 특히 경기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순직한 사건까지 겹치면서 영상에 담긴 상징적 의미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빨대 뽑고 국화꽃 한 송이…현직 소방관이 공개한 추모 영상

지난 20일 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에는 '빨대'라는 제목의 약 1분 분량 영상이 게시됐다. 영상은 유리컵에 빨대 하나가 꽂혀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근조 리본을 단 소방관이 국화꽃을 들고 등장한다.

소방관은 컵에 꽂혀 있던 빨대를 조용히 빼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꽂은 뒤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영상에는 별다른 대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고(故) 김진석 소방위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 문구가 나타난다.

영상 설명란에도 고인을 기리는 글이 담겼다. '소방관 삼촌'은 "경기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소임을 다하신 故 김진석 소방위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해당 화재 현장에서 활동하신 동료 선후배분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영상 속 빨대는 최근 논란이 된 추 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을 낳았다. 소방 재정을 둘러싼 논란을 연상시키는 빨대를 빼고, 순직 소방관을 추모하는 국화꽃을 꽂는 장면이 대비를 이룬 것이다.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퍼졌으며 공개 하루 만에 조회 수 20만회를 돌파했다.

"짧고 굵게 품격 있게 분노 표현"…댓글마다 이어진 추모

‘고(故) 김진석 소방위님의 명복을 빕니다’ / 유튜브 '소방관 삼촌'
‘고(故) 김진석 소방위님의 명복을 빕니다’ / 유튜브 '소방관 삼촌'

영상에는 순직한 소방관을 애도하고 현장에서 헌신하는 소방공무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그동안 국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짧고 굵게 품격있게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슬프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부디 좋은 곳 가셔서 그곳에서는 편안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그저 묵묵히 일하니 나조차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석 소방위님의 명복을 빕니다. 소방관 분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영상을 제작한 인물은 충북소방본부 진천소방서 소속 나경진 소방교다. 나 소방교는 시민들에게 소방 안전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2021년 11월부터 '소방관 삼촌'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왔다.

평소 재치 있는 패러디 영상 등을 선보이며 소방 안전 정보를 알렸던 그는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나 별다른 설명 없이 빨대와 국화꽃만으로 순직한 동료를 추모한 것이다.

짧은 영상이지만 최근 불거진 소방 재정 관련 발언 논란과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의 희생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논란…잇단 사과에도 파장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열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열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이번 영상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등 대상 국정감사에서 나온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발언이 있다.

당시 추 지사는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 관련 예산의 약 90%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재정 구조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자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했다. 소방관들의 헌신을 지방재정에 부담을 주는 존재처럼 표현했다는 비판이었다. 반면 경기도 측은 소방관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국가직 소방공무원 관련 예산을 지방정부가 대부분 부담하는 구조적 문제를 강조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이어지던 중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김진석 소방위가 순직하면서 발언을 둘러싼 비판도 거세졌다.

추 지사는 지난 17일 김 소방위의 빈소를 방문해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다만 당시 "사과를 바라시니 사과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사과의 진정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이후 추 지사는 지난 20일 권영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장 등 소방공무원들을 만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 역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소방 재정 부담을 언급하며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임에도 예산의 90% 정도를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니까 이게 재정을 진짜 쭉쭉 빨아먹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다.

부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전날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저의 발언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소방공무원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인으로서 신중한 언행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반성하며, 소방공무원들이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그 헌신이 정당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유튜브, 소방관 삼촌

퇴근 20분 앞두고 화재 현장 투입…김진석 소방위 마지막 길

영상에서 추모한 고 김진석 소방위는 지난 16일 오전 8시 38분께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금속부품 도장·인쇄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당시 김 소방위는 퇴근을 불과 20여 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화재가 발생하자 선착대로 현장에 투입됐고, 급격하게 번진 불길에 고립됐다. 이후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다음 날인 지난 17일 오전 0시 55분 끝내 숨졌다.

지난 19일 오전 경기 부천시 부천체육관에서 엄수된 고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운구행렬이 들어서고 있다 / 뉴스1
지난 19일 오전 경기 부천시 부천체육관에서 엄수된 고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운구행렬이 들어서고 있다 / 뉴스1

정부는 고인을 소방장에서 소방위로 1계급 특별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7일 빈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이 자리에서 훈장이 전달됐다.

김 소방위의 영결식은 지난 19일 오전 부천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엄수됐다. 유족과 동료 소방관 등 30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은 생전에 근무했던 오정119안전센터 등을 거쳐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현직 소방관이 공개한 1분 남짓한 영상은 순직한 동료를 향한 추모와 소방공무원들의 헌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있다. 빨대가 놓였던 자리에 남겨진 국화꽃 한 송이는 별다른 말없이도 긴 여운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