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방화범' 사람들 탈출 막으려고 일부러 엘리베이터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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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시너 준비하며 치밀 계획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특허법인 건물 두 곳에 잇따라 불을 지른 70대 남성이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탈출로를 막으려고 엘리베이터 앞부터 불을 낸 정황이 드러났다.

방화 혐의로 체포된 70대 남성 이모씨는 범행 당시 건물 3층 엘리베이터 앞에 불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KBS가 이날 보도했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는 특허법인 대표실과 상담실 등이 있다. KBS는 이씨가 사무실 안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출입 동선에 불을 놓은 것으로 추정했다.
KBS가 입수한 건물 내부 영상에서 사무실 안은 온통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천장 구조물은 뼈대만 남은 채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유대규 화재 조사 업체 대표는 KBS에 "시너를 뿌리면 밑에는 타지 않는다. 불꽃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밑에는 하얗게 변한다"고 말했다.
대피 길이 막히자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창문을 깨고 밖으로 탈출했다.
YTN도 같은 날 불이 난 특허법인 사무실 내부 영상을 확보해 보도했다. 영상을 보면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 복도부터 화재 흔적이 뚜렷하다. 엘리베이터와 주변 바닥은 검게 그을렸다. 바닥에는 진화에 쓰인 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다. 전기가 끊긴 듯 사무실 안은 캄캄했다. 책과 사무용 집기는 모두 타버렸다. 천장 마감재도 불에 타 뜯겨 나가면서 안에 깔린 전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창문은 깨지고 철골 구조만 앙상하게 남아 내부가 바깥에 그대로 노출됐다.
유 대표는 YTN에 "전체적으로 전소로 보인다. 입구부터 엘리베이터 입구에 시너를 뿌린 자국이 있고 폭발 자국도 있는 것 같다. 방화 자국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범행에 쓸 인화물질을 집에서부터 챙겨 나왔다. KBS가 공개한 영상에는 이씨가 시너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통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주택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담겼다. 이씨는 낮 12시쯤 역삼동의 첫 번째 빌딩에 불을 낸 뒤 200m가량 떨어진 두 번째 빌딩으로 옮겨가 다시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 직후 현장을 빠져나간 이씨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달아났다가 경찰 추적 끝에 붙잡혔다.
이씨는 저녁 6시 30분쯤 서울 수서경찰서로 압송되면서 범행을 미리 준비했다고 인정했다. 이씨는 범행을 언제부터 준비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한 3일 됐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이씨는 "앞으로는 사기 치지 말라고 해달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오전 11시 54분께 역삼동 신명빌딩 3층, 낮 12시 1분께 한양빌딩 4층에 잇따라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두 건물에는 모두 특허법인이 입주해 있다. 두 건물은 직선거리로 약 200m 떨어져 있다.
이 불로 19명이 다쳤다. 중상자는 5명, 경상자는 14명이다. 신명빌딩에서는 특허법인 사무실에서 일하던 변리사 1명이 복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변리사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진 뒤 호흡을 되찾았다. 함께 일하던 변리사의 남편도 현장에서 다쳤다. 다른 1명은 심한 화상을 입어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 신명빌딩에서는 9명이 경상을 입었고 60여명은 스스로 대피했다.
한양빌딩에서는 3명이 연기 흡입에 따른 심한 호흡곤란과 피부 열상 등으로 중상을 입었다. 5명은 경상을 입었다. 부상자들은 한양대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중앙대병원 등으로 나뉘어 이송됐다.
소방과 경찰은 인력 291명과 장비 56대를 투입했다. 한양빌딩 화재는 낮 12시 35분께, 신명빌딩 화재는 오후 2시 20분께 완전히 꺼졌다.

이씨는 해외에 상표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특허법인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불을 지른 특허법인에 상표 등록을 맡겼다. 특허법인은 이씨가 상표 등록을 의뢰한 나라의 특성상 등록증이 온라인으로만 발급된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이씨는 종이 등록증을 요구하며 변리사가 자신의 상표를 훔쳐간다고 의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수서경찰서에 들어서면서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에게 "특허 법무법인에서 사기 쳐서"라고 소리쳤다. 특허법인에 악감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2000년도에 내가 특허를 냈는데 (특허법인에서) 사기를 쳤다”고 답했다. 이씨는 문자메시지 내용을 출력한 종이를 펼쳐 보이며 취재진에게 촬영을 권하기도 했다. 출력물에는 '이 서류 보내드렸을 텐데, 이게 등록증으로 보시면 됩니다'라는 문자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씨는 범행 뒤 택시를 타거나 걸어서 서울 동대문구 쪽으로 이동한 뒤 지하철을 타고 동묘앞역으로 달아났다. 수서경찰서의 공조 요청을 받은 혜화경찰서는 오후 4시 16분께 동묘앞역 인근에서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불이 난 지 약 4시간 만이다.
이씨는 2022년에도 이번에 불을 지른 두 건물을 찾아가 방화를 시도한 혐의(방화예비)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수서경찰서는 이씨를 상대로 심야 조사를 벌였다. 이씨는 조사에서도 특허법인이 사기를 쳤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48시간인 체포 시한을 고려해 21일 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씨가 같은 특허법인을 상대로 4년 만에 다시 범행했고 사흘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고 밝힌 만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찰은 "범행 동기와 수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