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평론의 대가’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별세… 향년 6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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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 대중음악평론가 별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아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라는 말의 주인공 강헌 대중음악평론가가 별세했다. 향년 64세.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생전 모습. / 뉴스1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생전 모습. / 뉴스1

20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 이날 별세했다. 구체적인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빈소는 오는 21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현식 평론 한 편이 연 평론가의 길

고인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음악 평론이었다. 1990년대 초반 그는 후배의 부탁을 받고, 가수 김현식에 관한 글을 썼다. 당시 쓴 평론의 제목은 '김현식론: 통기타에서 블루노트까지'였다. 이 글을 계기로 그는 대중음악평론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음악을 사회와 역사의 맥락 속에서 읽어냈다. 그리고 수려한 문체로 평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여러 매체에 왕성하게 글을 기고하며 가요 평론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고인과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한 동료다. 임 평론가는 연합뉴스에 "강헌은 1990년대 초반 평론을 시작하면서 수려한 글로 이 분야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어 “1990년대에 나와 오랫동안 콤비로 활동했고 당시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고인은 평론 외에도 동료들과 문화계간지 '예감', '상상', '리뷰'를 만들었다. 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도 지냈다. 또한 홍익대와 성공회대, 단국대, 성균관대 등에서 20년간 대중음악사를 가르쳤다.

가수 신해철과의 인연도 깊었다. 두 사람은 1994년 인터뷰를 계기로 처음 만났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신해철을 "친동생보다 가까운 동생"이라고 표현했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뒤 고인은 그의 삶과 음악을 담은 책 '신해철: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를 펴냈다.

소설가 꿈꾸던 청년, 영화계에 먼저 뛰어들어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원래 소설가를 꿈꿨다. 그래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음악학을 공부했다.

그가 처음 발을 들인 곳은 영화계였다. 고인은 1980년대 독립영화 제작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했다. 이곳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상업영화 '아담이 눈을 뜰 때'와 '정글스토리'의 시나리오를 썼다. TV 드라마 '제3극장'의 극본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생전 모습.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생전 모습.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무대 작업도 이어갔다. 고인은 콘서트 '자유'와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만들었다. 또한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의 음악극도 제작했다.

이처럼 여러 분야를 넘나든 고인은 스스로 자(字)를 '산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입담이 좋아 '구라'의 대가로도 불렸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명리학 책까지 펴내

고인의 삶에는 죽을 고비도 있었다. 그는 42세 때 대동맥이 찢어져 2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후 기적처럼 깨어났고, 이 일을 겪은 뒤 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2015년 펴낸 '명리: 운명을 읽다'다. 이어 '명리, 운명을 조율하다'도 출간했다. 이후 관련 강연을 꾸준히 이어갔다.

음악 저술도 같은 해부터 나왔다. 고인은 수십 년 동안 글과 강의로 활동했지만, 단독 저서는 2015년에 처음 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돌베개, 2015)에서는 일제강점기 가요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음악사의 결정적인 장면을 당시 사회상과 엮어 풀어냈다.

이듬해에는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이봄, 2016)를 펴냈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대중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짚었다. 그는 저서를 통해 재즈와 로큰롤부터 모차르트와 베토벤까지 다양한 음악을 역사와 사회의 맥락에서 해석했다.

문화행정 분야에서도 일했다. 고인은 2018년 12월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고,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제5대 회장도 지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