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빌딩 방화] 탈출 현장 끔찍... 곳곳에 탈출한 사람들 핏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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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긴박했던 탈출 순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딩 두 곳에서 7분 간격으로 잇달아 불이 난 현장에서 직장인들은 유리창을 깨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탈출 과정에서 깨진 유리에 베여 피를 흘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두 건물에 차례로 불을 지르고 달아난 70대 남성은 서울 동대문구 동묘앞역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연합뉴스가 2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역삼동 한양빌딩 4층에서 탈출한 A씨는 사무실 문 쪽에서 일하다 갑자기 불길과 마주쳤다. A씨는 "열기가 느껴지길래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화염이 확 덮쳤다. 유리를 깨고 바깥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유리창을 깨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는 미처 나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A씨는 "못 나온 분들이 있어 바깥에서 빈 화분으로 유리를 깼다"며 "복도 천장에 불꽃이 닿을 정도로 불이 크게 났었다"고 전했다.
급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다친 사람도 많았다. A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유리에 찢겨 피가 났다"며 "급하게 나오는 과정에서 긁히고 찍혀 많이 다쳤고, 유리에 심하게 다친 분도 있다"고 말했다. 한양빌딩 후문에서 큰길로 이어지는 길에는 탈출한 사람들이 흘린 핏자국이 남았다. 건물 근처에는 불이 꺼진 뒤에도 탄내가 가시지 않았다.
같은 건물 7층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구조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씨는 "한 중년 남성이 오른쪽 발등과 발목 쪽을 다쳐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7층에서만 13∼14명가량이 대피했다.
한양빌딩 안에 있던 B씨는 입구 쪽에서 "불이야"라는 외침을 듣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사무실을 채웠다. B씨는 "바로 옆 탕비실에서 배터리가 폭발하듯 연기가 확 올라왔다"며 "일어서서 대피하려는데 몇 초 안 돼 검은 연기가 퍼졌다"고 말했다. 입구로 향하던 B씨는 거센 연기에 막혀 결국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 B씨는 "대피한 뒤 사람이 다 나왔는지 확인하려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7층 근무자 김모씨는 "연기가 안으로 들어와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피하라는 말을 듣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한양빌딩 안 스타벅스에는 '건물 내 화재로 인한 시설 점검 및 복구 작업으로 휴점하게 됐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한양빌딩보다 7분 앞서 화재가 신고된 신명빌딩에서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민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이어졌다. 근처에서 통신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50대 C씨는 "연기와 그을음이 먼저 치솟았고, 오른쪽 창문에 있던 여성들이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쳐 불이 난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C씨는 여성 7명가량이 사다리로 구조되는 모습을 봤다.

C씨는 "반대편 창문에서는 한 남성이 살려달라고 외치다가 창문을 깨고 몸을 반쯤 밖으로 내밀었다"며 "뛰어내릴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근 직장인 D씨는 "불이 커서 길이 통제되고 버스 승객들도 내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긴급차량이 몰려 차량 통행이 어려워지자 인근 피자 가게 직원이 수신호로 교통 정리를 돕기도 했다. 불이 꺼진 뒤 신명빌딩 아래에는 유리 조각이 수북하게 흩어져 있었다. 건물 위쪽 외벽에도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았다.
경찰은 서울 동대문구 1호선 동묘앞역에서 70대 남성 용의자를 검거했다. JTBC에 따르면 두 번째 범행 뒤 제기동 방향으로 달아난 이 용의자는 청량리역에서 1호선을 타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CTV등을 바탕으로 A씨의 동선을 추적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수사를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는 동대문경찰서 등과 공조해 폐쇄회로(CC)TV와 인상착의를 토대로 동선을 추적해 왔다.

수서경찰서는 "역삼동 화재와 관련해 방화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두 화재의 연관성과 정확한 발화 원인,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불이 난 사무실 두 곳은 모두 특허법인 사무실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남성을 상대로 범행 동기와 두 특허법인과의 관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소방 당국의 초기 판단은 경찰과 결이 달랐다. 소방 관계자는 현장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두 화재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최종 화재 조사 결과는 경찰에서 조사한 뒤 발표할 예정"이라며 "건물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 사람이 두 건물에 잇달아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검거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진 환자는 호흡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명빌딩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이 30대 여성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진 뒤 자발순환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중상자 1명은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어 화상 전문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은 20일 오전 11시 54분쯤 신명빌딩 3층에서 처음 신고됐다. 7분 뒤인 낮 12시 1분쯤 직선거리로 약 200m 떨어진 한양빌딩 4층에서 두 번째 화재가 신고됐다. 점심시간을 앞둔 사무실 밀집 지역은 순식간에 대피 인파와 긴급차량으로 뒤엉켰다. 소방 당국은 "누가 불을 질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곳 모두 작은 불길과 연기가 순식간에 큰불로 번졌다. 신명빌딩 3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유리창을 깨고 위층으로 옮겨붙었다. 신명빌딩에 있던 60여명은 스스로 대피했다. 이 빌딩에서는 37명이 구조됐다. 일부는 3층 창문으로 나와 소방대원들이 설치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한 시민은 골프채로 유리창을 깨 밖을 살피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두 화재로 심정지 1명을 포함해 중상 5명, 경상 14명 등 모두 19명이 다쳤다. 신명빌딩에서 11명, 한양빌딩에서 8명이 다쳤다. 한양빌딩 부상자 가운데 3명은 심한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 부상자들은 한양대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중앙대병원 등으로 옮겨졌다. 소방 당국은 현장에 임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했다. 소방과 경찰은 인력 291명과 장비 56대를 투입했다. 한양빌딩 불은 신고 34분 만인 낮 12시 35분쯤 꺼졌다. 신명빌딩 불은 2시간 26분 만인 오후 2시 20분쯤 완전히 진화됐다. 경찰은 진화 작업 동안 역삼로 우성아파트 사거리부터 창업가거리 교차로까지 차량 통행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