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까지 황당한 실수... '성범죄자'가 무죄로 풀려나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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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도 놓쳤다... 성범죄자, 무죄로 풀려나
1·2·3심 모두 놓친 판결문 오류, 징계는 0건?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차고 무단 외출한 성범죄자가 판사의 실수 탓에 무죄를 받고 풀려난 사실이 드러났다. 판결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문구 하나가 빠졌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무죄가 나온 사건은 확인된 것만 14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한 판사가 징계를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 뉴스1 자료사진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 뉴스1 자료사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기간 중'이라는 13글자가 판결문에서 빠지면서 전자발찌 착용자의 준수사항 위반을 처벌할 수 없게 된 사례들을 JTBC가 19일 단독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60대 A씨는 준강제추행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복역했다. 법원은 A씨에게 전자발찌 5년 부착명령도 함께 내렸다. 판결문 별지에는 야간 외출 금지와 유흥업소 출입 금지 등 6가지 준수사항이 담겼다.

A씨는 출소한 지 보름 만에 무단 외출을 했다. 그는 이 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면서 석방됐다.

무죄의 이유는 A씨가 앞서 받은 판결문에 있었다. 정상적인 판결문이라면 준수사항과 함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기간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야 한다. 하지만 A씨 판결문에는 이 13글자가 빠져 있었다. 이 때문에 6가지 준수사항 모두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는 흔히 전자발찌로 불린다. 성범죄자 등의 발목에 채워 위치를 24시간 확인하는 장치다. 국내에는 2008년 9월 성폭력 범죄자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미성년자 유괴, 살인, 강도 범죄자 등으로 대상이 넓어졌다.

법원은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선고하면서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전자장치부착법)에 따라 준수사항을 함께 부과할 수 있다. 특정 시간대 외출 제한, 특정 지역·장소 출입 금지, 피해자 등 특정인 접근 금지, 범죄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위치만 추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범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 자체를 막으려는 장치다.

무단 외출은 이 가운데 외출 제한 준수사항을 어긴 행위를 말한다. 법원은 주로 재범 위험이 큰 밤 시간대에 주거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외출 제한 명령을 내린다. 매일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주거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식이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이 시간대에 허락 없이 집을 나서면 위치 정보를 통해 곧바로 드러난다. 대법원은 외출 제한 시각을 10분 넘겨 귀가한 경우도 준수사항 위반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전자장치부착법은 외출 제한 등 준수사항을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준수사항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전자장치부착법 제9조의2 제1항은 법원이 '부착기간의 범위에서 준수기간을 정하여' 준수사항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준수사항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지켜야 하는지 판결문에 분명히 적으라는 뜻이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기간 중'이라는 13글자가 바로 이 준수기간을 정하는 문구다.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 뉴스1 자료사진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 뉴스1 자료사진

대법원도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준수사항을 추가하면서 준수기간을 정하지 않은 사건에서 해당 준수사항이 위법하다고 지난해 8월 판결했다. 위법한 준수사항을 어겼더라도 이를 근거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기간이 빠진 준수사항은 애초에 지킬 의무가 없는 명령이 되는 셈이다.

JTBC에 따르면 A씨 사건의 실수는 1심 판결문에서 시작됐다. 1심 재판부가 준수사항을 정하면서 이 문구를 빠뜨렸다. 이후 사건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 모두 이 누락을 바로잡지 못했다. 결국 문구가 빠진 판결문이 그대로 확정됐다.

형사재판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그 내용은 원칙적으로 다시 바꿀 수 없다. 세 차례 재판을 거치는 동안 13글자의 빈자리를 알아챈 사람이 없었다. A씨에게 부과된 준수사항은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상태로 남았다. A씨가 출소 뒤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도 처벌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무단 외출 사건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원래 판결문의 흠결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JTBC 취재진이 확인한 이 같은 사례는 14건이다. 인천과 의정부에서 각각 징역 7년과 3년을 복역한 성범죄자 2명의 판결문에도 같은 문구가 빠져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출소 뒤 무단 외출을 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혀 풀려났다.

광주의 한 아동 성추행범은 출소 뒤 미성년자 접근 금지 명령을 어겼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역시 같은 이유로 2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JTBC에 "법원마저 판결문에 이 글자를 누락해서, 불량 판결문을 작성해서 전자장치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한 판사들 가운데 징계를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한 네티즌은 "이게 말이 되는가. 자신의 판단으로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데 그걸 실수하는 판사나, 그걸 또 징계하지 않는 자들이나 어떻게 저들이 이 나라 법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건지 분노마저 치민다"고 했다.

다른 네티즌들은 "사법부는 법으로부터도 독립한 건가?", "책임 없는 권력은 오만과 독선이다", "막강한 권력 뒤에는 감사가 꼭 필요하다", "범죄 일으키라고 손에 칼을 쥐여 준 격", "해당 판사들 징계해야지" 등의 댓글을 남겼다.

"근데 이렇게 되면 일사부재리는 어떻게 돼?"라며 이미 무죄가 확정된 사건의 처리를 궁금해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이미 무죄가 확정된 사람을 같은 무단 외출로 다시 처벌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