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각해지는 프랑스 시위... 팔 잘리고 눈 잃은 청소년, 경찰·헌병 1000여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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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결원, 낡은 건물서 시작해 약탈·방화로 번져
낡은 교실과 모자란 교사에 항의하던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외침이 한 달 만에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생활고 시위로 번졌다. 140여년 동안 도시를 지켜온 시청사가 불길 속에 무너져 내렸다. 하루 동안 경찰에 붙잡힌 사람만 2400명에 가까웠다.

18일(현지시각)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날 전국 시위 과정에서 2400명 가까이 체포됐다. 다친 경찰관과 헌병은 1000명에 육박했다. 이 가운데 7명은 중상을 입었다. 2018년 12월 '노란 조끼' 시위 당시 하루 체포 인원(약 2000명)을 웃도는 규모다.
17일은 프랑스 학교들의 가을방학이 시작되는 토요일이었다. 로랑 뉘네즈 내무장관은 이날 전국에서 55만명이 거리로 나왔다고 집계했다. 파리에서만 11만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노동총동맹(CGT)과 학생 단체 등 주최 측은 참가 인원을 80만명으로 추산했다. 대부분의 행진은 평화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행렬 주변에서 터진 폭력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고교 교실에서 시작된 분노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학교였다. 프랑스 고교생 시위는 지난달 21일 일부 고교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첫 전국 행동이 열렸다. 지난 1일에는 대학생들이 합류하면서 판이 커졌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이달 초 내무부에 위기대응반을 소집했다. 총리실은 시위가 '도시 폭력'으로 번졌다고 판단했다. 에두아르 제프레 교육장관은 학생들과의 협의 창구를 열겠다고 밝혔다.
Incendie de la mairie de Limoges. Le feu continue à gagner. La salle des mariages et le service de l’état civil sont partis en fumée. https://t.co/nQfICNOtZR
— Denis Carreaux (@DenisCarreaux) October 17, 2026
학생들은 교원과 예산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파리 외곽 등 대도시 주변 지역 고교에 대한 지원을 늘려달라고 촉구했다. 결원이 생겨도 채워지지 않는 교사 자리, 낡고 망가진 학교 건물, 과중한 수업 시간표, 대학 입학 지원 플랫폼 '파르쿠르쉽'이 주는 압박감도 문제로 꼽혔다. 프랑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4~2025학년도에 예정된 수업 시간의 10%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학교 건물 단열 개보수 사업 예산을 4000만유로 깎았다. 2027년 교육 예산은 12억유로 늘린 약 640억유로로 편성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조합과 '노란 조끼' 운동 세력이 가세하면서 시위의 성격이 바뀌었다. 구호는 교육 문제를 넘어 치솟는 생활비와 연료비, 임금과 연금, 공공서비스 악화,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넓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차기 권력을 둘러싼 정치권의 셈법도 시위 현장에 겹쳐 있다.
방화로 140년 시청 종탑 무너져
가장 큰 피해는 프랑스 중서부 도시 리모주에서 나왔다. 복면을 쓴 무리가 1883년 완공된 리모주 시청사에 침입해 불을 질렀다. 불길에 지붕과 도시의 상징인 종탑이 무너졌다. 모리스 바라트 오트비엔 도지사는 고의적인 방화라고 밝혔다. 불은 이날 오전에야 잡혔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가 시청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 로비를 점거했다. 이들은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인 마리안 흉상을 쓰러뜨리고 집기를 부쉈다. 경찰이 투입돼 건물 안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앞서 복면을 쓴 시위대는 시 경찰서 정면을 공격하고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다. 건물 안으로 연막탄을 던지기도 했다. 마르세유 시내 롤렉스 매장도 약탈당했다.
리옹에서는 벨쿠르 광장의 관광안내소가 불탔다. 보르도에서는 번화가인 생트카트린 거리의 상점들이 털렸다. 도지사 관저까지 공격받았다. 릴에서는 시위대가 시청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다. 니스, 낭트, 툴루즈, 스트라스부르, 렌 등에서도 약탈과 충돌이 잇따랐다.
파리 도심 이틀째 최루탄
수도 파리도 무사하지 못했다. 레퓌블리크 광장과 마장타 대로 일대 상점이 약탈당했다. 차량들이 불탔다. 광장의 포석이 뜯겨 나갔다. 상점 유리창도 줄줄이 깨졌다. 광장 한가운데 선 마리안 동상의 받침대 일부도 떨어져 나갔다.
파리 수도권에서만 855명이 체포됐다. 파리경찰청은 사상 최다 기록이라고 밝혔다. 파리 검찰은 이 가운데 557명이 구금 상태라고 전했다. 리옹에서도 160명이 붙잡혔다. 파리에서는 1명이 심장마비로 숨졌다. 파리 검찰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미성년자들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생테티엔에서는 17세 청소년이 진압용 수류탄에 맞아 오른손을 잃었다. 뮐루즈에서는 17세 청소녀가 한쪽 눈을 잃었다.
혼란은 이날일에도 이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서 미신고 집회를 열자는 호소가 퍼지자 수백명이 다시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였다. 시위대가 병과 돌을 던지자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으로 맞섰다. 광장 주변 상점은 또다시 약탈당했다. 리옹에서도 명품 의류 매장 유리창을 깨려던 청년들이 경찰에 제지당했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시장은 공개서한에서 피해가 "막대하고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파리, 마르세유, 리옹 시장은 르코르뉘 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마크롱 "분노와 수치심"
마크롱 대통령은 18일 정부 고위 인사들과 긴급회의를 연 뒤 오후 8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오늘 밤 우리 모두는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며 "파괴한 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요구를 내건 시위 참가자들과 파괴·약탈을 저지른 이들을 구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피해 지원을 위한 위기대응반 구성과 치안 강화를 약속했다. 경찰 대응에 대해서는 "완전한 투명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뉘네즈 장관에게는 특히 정보 수집 분야에서 교훈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비상사태나 통행금지 선포는 내놓지 않았다. 야권 일각에서는 뉘네즈 장관 경질 요구도 나온다.
뉘네즈 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시위할 권리는 기본권이다. 폭력으로 고의적·집단적으로 무질서를 퍼뜨리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적었다. 그는 조직적 폭력의 상당 부분을 급진 극좌 단체 소행으로 보고 있다. 약탈만을 노리고 끼어든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장관은 경찰관과 소방관, 공공건물, 상점을 공격한 이들에 대해 구속 수사를 요청하는 등 "극도로 단호한" 사법 대응을 주문했다.
시위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대표는 17일 파리 행진에 직접 참여했다. 멜랑숑 대표는 르코르뉘 총리가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자신들의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약탈과 무관하다고도 했다. 대국민 연설 뒤에는 이번 파괴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극우 진영은 다른 방향에서 정부를 공격했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전 대표는 폭도들이 시위를 망쳤다고 비판했다. 르펜 전 대표는 정부를 두고 "기력이 다해 지치고 방향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을 "한심하다"고 깎아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프랑스가 불타고 있다!"고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이민 문제와 연결 지으며 국경 폐쇄를 촉구했다. 프랑스 당국과 경찰은 이번 폭력 사태를 이민자와 연관 짓지 않았다.
이탈리아·벨기에로 번져
생활고에 항의하는 시위는 프랑스 밖으로도 번졌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17일 전쟁 반대와 생활비 상승 항의를 내건 행진이 평화롭게 시작됐다. 그러나 복면을 쓴 시위대가 진압 경찰을 향해 돌과 보도블록을 던지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들은 술집 테이블로 쌓은 바리케이드에 불을 질렀다. 두오모 광장 주변 상점도 약탈당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쐈다. 경찰관 최소 2명이 다쳤다. 시위대 50여명이 연행됐다. 연행자 상당수는 미성년자였다. 볼로냐에서도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엑스에 "시위는 권리다. 우리 도시를 불태우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적었다. 멜로니 총리는 시위를 틈타 혼란을 퍼뜨리는 폭도들을 비난했다. 주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은 시위대의 이유는 이해하지만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벨기에에서는 대학 등록금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가 몇 주째 이어져 왔다. 17일 브뤼셀에서는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투척물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 리에주에서도 경찰이 물대포로 시위대를 해산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같은 날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생활비 상승과 저임금, 주거난에 항의했다. 포르투갈 집값은 2017년 이후 두 배 넘게 올랐다. 신규 임대 계약 월세도 그에 못지않게 뛰었다. 시위를 이끈 포르투갈노동자총연맹(CGTP)은 임금과 연금 인상, 주거비·연료비 부담 완화를 요구했다. 시위대는 리스본 호시우 광장에 텐트 40여개를 쳤다. 카를루스 아브레우 아모링 포르투갈 의회담당 장관은 정부가 거리 시위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