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친일' 하영 캐스팅했다가… 편성 제외되고 초비상 걸린 한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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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논란 여파… SBS '승산 있습니다' 상반기 라인업 제외
SBS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의 내년 상반기 편성이 전격 무산됐다. 주연 배우 하영의 증조부를 둘러싼 친일 이력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방송가 전반으로 논란이 급속히 확산한 여파다.

19일 방송가 및 OSEN 보도 등에 따르면 SBS는 최근 새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를 내년 상반기 편성 라인업에서 전격 제외했다. 당초 내년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제작이 진행됐으나 주연 배우인 하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함에 따라 내부 논의 끝에 편성 보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승산 있습니다’는 전직 스타 변호사이자 현직 법률사무소 승산의 사무장인 권백(이제훈 분)이 오합지졸 멤버들과 함께 승산 없는 싸움을 승산 있게 만들어가는 명랑 코믹 법조 탐정물이다. 극 중 이제훈은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자격을 박탈당한 뒤 괴짜 사무장으로 복귀하는 권백 역을, 하영은 돈과 빽은 없지만 성실함으로 무장해 권백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는 신참 수석 변호사 여심희 역을 맡았다.

‘시그널’, ‘모범택시’ 시리즈의 이제훈과 ‘중증외상센터’로 주목받은 하영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해당 작품은 촬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주연 배우의 친일파 논란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SBS 측은 작품을 위해 땀 흘린 수많은 스태프와 출연진의 노고를 고려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방안을 다각도로 신중하게 고심 중이며 현재로서는 하반기 편성 여부나 미편성작으로 남을지 여부 등 향후 일정에 대해 확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앞서 하영은 해당 논란의 여파로 차기작인 ‘중증외상센터’ 시즌2와 시즌3에서 이미 하차한 바 있다.
방송 발언에서 시작된 가문 조명…‘내선일체’ 기록 발굴로 논란 격화
이번 논란은 배우 하영이 방송과 인터뷰 등에서 집안의 내력을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지난해 1월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증조부에 대해 "당시 한양 안에 첫 양방을 개업하신 의사였던 것으로 들었다"라며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 당연히 자랑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난 8월 6일 넷플릭스 드라마 홍보 관련 콘텐츠 및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하영의 가문사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같은 날 오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말 '조상 대대로' 의사 가문인 배우"라는 제목의 홍보성 게시글이 올라오며 화제를 모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8월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 323회였다. 당시 하영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사를 배출한 가문이라고 직접 소개했다. 그는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서양식 의원을 개업했으며 고종을 진료하기도 했다는 세부적인 내용을 덧붙였다.
그러나 방송 직후 소셜 미디어(X, 구 트위터)의 한 이용자가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의 과거 '내선일체' 옹호 발언 및 친일 행적이 담긴 사료를 발굴해 공개하면서 논란이 급물살을 탔다. 온라인상에서는 하영이 자랑스러워한 가문의 기반에 친일 행적이라는 어두운 역사가 포함돼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최초 대응에서 구체적인 검증 없이 혐의를 부인해 논란을 키웠다. 소속사 측은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친일 의혹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역사적 문헌과 당시 언론 매체인 '매일신보' 기사,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등 객관적인 물증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대응은 대중의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소속사는 불과 하루 만에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소속사 측은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라며 "충분한 역사적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 성급히 답변하여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배우 하영 역시 이번 사안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인물 안상호는 누구인가…국비 유학 후 귀국 거부와 친일 행적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는 한국 근대 의학사에서 주요 인물로 언급되는 한편 대표적인 친일 변절 인물로 평가받는다.
안상호는 1896년 조선 정부가 근대 국가에 필요한 의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선발한 국비 유학생(관비 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종 황제는 1895년 '교육입국조서'를 발표하며 인재를 양성해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외 유학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안상호 역시 매월 학비와 피복비 등 체류비를 국고로 지원받으며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서 공부했다.
1902년 학교를 졸업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한 안상호는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서 수련을 이어갔다. 1903년 혁명일심회 사건의 여파로 대한제국 정부가 국비 유학생들에게 귀국령을 내리고 체류 연장 시 사비 전환 방침을 밝혔으나 안상호는 귀국하지 않고 잔류를 선택했다.
1904년 대한제국 학부는 관립의학교 교관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안상호를 의학교 교관으로 임명하고 '3급 봉급'을 지급하며 귀국을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1905년 1월 21일 자 대한제국 관보 제3042호 기록에 따르면 안상호는 정부의 지속적인 전보와 임용 압박에도 불구하고 복귀를 거부했다. 결국 정부는 그를 교관 직위에서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1907년 3월이 돼서야 귀국한 안상호는 궁내부 촉탁의로 지정돼 황실 의료에 관여했다. 황실 의료를 전담하는 '전의' 직을 수차례 제안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촉탁의 신분을 유지했으며 1919년 고종이 서거할 때까지 임금의 진료를 맡았다. 1908년 1월에는 서울 종로 3가에 서양식 개인 병원인 '안상호진료소'를 개원해 민간 개업의로 활동했으며 일본인 의사들의 이익 단체에 맞서 한국인 의사들로 구성된 '한성의사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안상호는 국가의 유학 지원과 기대를 저버리고 친일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한 것은 물론 각종 친일 모임에 이름을 올리고 "자신은 일본인과 같다"며 일제의 내선일체 통치 논리를 앞장서 선전했다.
이 같은 행보는 같은 시기 관비 유학생으로 일컬어졌던 김익남의 삶과 대조를 이룬다. 김익남은 근대 의학을 배운 뒤 귀국하여 관립의학교 교관으로서 근대 한국인 의사 32명을 배출했고 조선보병대 근무와 간도 지역 봉사 등 국익과 민족을 위해 의술을 펼쳤다. 반면 안상호는 국가의 혜택을 받은 인재였음에도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하며 엇갈린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