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가 집안인 민주당에서 더 난도질당하는 이유
작성일
이 대통령과 각 세운 앙금까지 겹쳐 궁지에 몰린 추미애
추미애 경기지사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소방 예산을 '재정 빨대'에 빗댄 지 나흘 만에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끝내 숨졌다. 들끓던 비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국민의힘은 물론 추 지사가 몸담은 더불어민주당까지 등을 돌렸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추 지사를 대신해 고개를 숙이고 당사자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인선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워 온 추 지사를 향해 친명(친이재명)계는 기다렸다는 듯 칼끝을 겨누고 있다. 침묵하던 추 지사는 순직 소방관 빈소를 찾아서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대표는 17일 당 공보국을 통해 낸 메시지에서 "당 소속 도지사의 발언으로 상처를 받으신 소방관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도 당을 대신해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당사자에게도 깊은 자성 어린 사과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당은 앞으로 당 소속 공직자들의 이런 부적절한 발언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깊은 숙의를 거쳐서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발언을 두고 당 차원의 조치까지 거론한 것이다.
민주당은 앞서 이용우 대변인 명의 서면브리핑으로 사과했다. 이주희 원내대변인도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추 지사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위험한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분들의 노고와 자부심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5선의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촉구했다. 박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추 지사도 애도를 표하셨지만, 순직 소방관이나 동료들은 '빨대' 운운에 대한 솔직한 사과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 소방인들은 추 지사의 명확한 사과를 기다린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김지용 청장 인선 국면에서 이 대통령 쪽에 섰던 인물이다. 박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여권 의원 중 다섯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전체가 아니다"라며 당시 후보자였던 김지용 청장을 감쌌다.

국민의힘의 공세는 더 거칠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추 지사가 사과하기 전 페이스북에 "추 지사는 아직도 재정 빨대 망언을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소방관의 순직 앞에, 등 돌린 소방관의 눈물 앞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가. 그런 인식으로는 소방관 안전도, 국민 안전도 지킬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소방관이 재정 빨대라는 추미애 지사의 인면수심… 민주당 뒤에 숨지 말고 사죄하십시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박 수석대변인은 "추 지사의 망언은 7만 소방공무원과 국민을 향한 명백한 인격 모독이자 언어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작 본인은 보증금 12억원이 넘는 호화 관사에 억대 관용차를 몰며 도민의 혈세에 빨대를 꽂고, 목숨 걸고 화염 속으로 진입하는 소방관들의 필수 예산을 줄이고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를 위한 예산마저 전액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민주당의 대리 사과를 겨냥했다. 조 대변인은 "추 지사의 망언에 국민은 분노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민주당이 당사자를 대신해 사과했다"며 "이게 무슨 황당하고 비겁한 정치냐"라고 말했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이재명 정부와 추 지사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 마련에 즉각 나서라"고 요구했다.
논란이 된 발언은 지난 13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추 지사는 경기도 재정 비상 선언에 관한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며 "인건비만 하더라도 2027년에 1조1000억원을 잡아먹게 되고 사업비만 5000억원가량, 그러니까 국가직임에도 소방 인건비와 사업비를 합쳐 1조7000억원이 나가게 된다"고 답했다.
소방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성명에서 "소방공무원은 경기도 재정을 갉아먹는 '빨대'가 아니라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도 "칠흑 같은 화마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목숨 값이 고작 '빨대'냐"고 반발했다. 홍은광 경기도 대변인은 "해당 발언은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관련 재정을 지자체가 대부분 부담하고 오히려 국고 지원 비율이 줄어드는 것을 강조하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논란이 이어지던 전날 오전 8시40분쯤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한 금속부품 도장공장에서 불이 났다. 선착대로 투입된 김진석 소방위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이날 오전 0시55분께 끝내 숨졌다. 이 불로 소방대원과 공장 관계자 등 모두 8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추 지사는 전날 제주 일정을 취소하고 화재 현장을 찾았다. 그는 재정 빨대 발언에 대한 소방노조 반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얘기 하지 마라"라며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떠났다. 추 지사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했던 고인의 용기와 헌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현장의 안전과 근무환경을 더욱 철저히 살피겠다"고 적었다. 이 글에서도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추 지사는 결국 이날 오후 순천향대 부천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진석 소방위를 조문한 뒤 사과했다. 추 지사는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전날 현장에서 질문에 답하지 않은 데 대해선 "그 자리에서 드릴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사과를 안 하겠다는 취지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발언 나흘 만이자 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한 지 몇 시간 만이다.
이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추 지사를 겨냥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전날 제주에서 열린 제107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기념사에서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 화재를 진압하다 심정지 상태로 입원해 있는 소방관이 있다"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헌신하는 그분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추 지사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를 두고 "당내에서 자신과 각을 세워 온 추 지사가 망언으로 궁지에 몰리자, 기다렸다는 듯 '천금을 준들 아깝겠느냐'며 저격 정치, 훈수 정치에 나섰다"고 비꼬았다.
여권 내부에서 추 지사를 향한 시선이 싸늘한 배경에는 김지용 청장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추 지사는 김지용 청장이 지난달 7일 초대 중수청장 최종 후보로 낙점된 뒤 줄곧 지명 철회를 요구해 왔다. 추 지사는 지난달 12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일한 사람이 중수청 수장이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6일께에는 페이스북에서 김지용 청장을 아돌프 아이히만에 빗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김지용 청장이 친윤 검사가 아니라 오히려 반윤 검사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대통령은 "친윤계 김지용 정치검사는 쓰지 말아 주세요"라는 지지자의 글을 지난달 30일 엑스(X·옛 트위터)에 공유하며 "김지용 후보자의 친윤 아닌 굳이 말해 반윤 행적은 이미 언론 보도로도 다 확인되는 사실"이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사장으로 발탁 승진시켰다"고 말했다. 김지용 청장이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일하며 윤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 사건의 재기수사명령과 기소를 지시했다가 좌천됐다는 점도 짚었다. 이 대통령은 "억지 주장이라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비방이고, 국정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국정 방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추 지사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맛집'이라고 추천받아 갔더니 위생과 서비스가 엉망이었다는 비유 글을 올리며 맞섰다. 지난 7일 밤에는 SNS에 "저의 사람 보는 실력이 형편없음을 고백하고 가슴을 친다"고 적었다.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도 "친윤 검사일뿐 아니라 공직자로서 그 자리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못 박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15일 김지용 청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이 과정에서 친명계와 당 지도부가 추 지사를 거듭 겨눴다. 김 대표는 지난달 15일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제왕이 돼버리는 그런 단체장들을 두는 것은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볼 때 옳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8일에는 "절제가 필요하다"며 "필요한 부분은 당에서 제어하겠다"고 했다. 지난 14일 민주당 유튜브 방송에선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는 분들은 절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황명선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추 지사의 발언을 "대통령을 흔들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직격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 지사 발언을 두고 "균형감각을 잃은 말씀"이라며 "좀 과했다"고 비판했다. 이해식 의원은 김지용 청장 인사청문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아 김지용 청장을 엄호했다.
김진석 소방위의 장례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경기도청장(葬)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19일 엄수된다. 한병도 원내대표와 한정애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당 차원에서 먼저 조문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18일까지 이어지는 부산 일정을 마친 뒤 조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