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통, 딸에겐 이어지지 않도록…” 4천 빌려 이자만 5천 갚은 주부, 결국 스스로 생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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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한 장으로 시작된 수사, 연 578% 고금리 사채조직 적발
4천만원 빌려 5천만원 이자 갚고...비극으로 끝난 사채 악순환
연 최고 578%에 달하는 살인적인 금리와 가혹한 채권추심으로 채무자를 몰아세운 사채업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에게 4천만원을 빌린 50대 자영업자 주부는 이자만 5천만원 넘게 갚고도 불법 빚 독촉에 시달리다 지난 4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남긴 유서를 단서로 수사에 착수해 불법 사채업자 조직의 전모를 파악했다.

유서 한 장에서 시작된 수사
광주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사채업자 A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구속된 2명은 공소청에 송치됐다. 수사 범위는 구속된 2명에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불법 사채업자 6명과 이들에게 금융계좌를 제공한 14명 등 총 20명의 범죄 혐의점을 확인해 입건했다.
수사의 출발점은 숨진 B씨가 남긴 유서였다. 유서에는 '매일매일, 수천만 원의 이자를 갚고도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제가 겪은 고통이 딸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이 유서를 토대로 B씨가 거래한 사채업자들을 추적했고, 같은 수법의 피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 최저 66%, 최고 578%…법정 한도를 크게 넘은 이자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2024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각각 불법사금융업체를 운영했다. 이 기간 법정 기준금리를 초과한 이자를 받았다. 이들이 적용한 이자율은 연 최저 66~184.5%, 최고 328~578.2%였다. 현행 대부업법이 정한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이므로, 최고 이자율은 법정 한도의 28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채무자 19명이다. 이들에게서 챙긴 부당이득은 합산 1억240여만원에 이른다. 경찰은 추가 피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후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확인된 19명 외에도 피해자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전단 한 장 보고 찾아간 사채 사무실
B씨는 평범한 자영업자이자 주부였다. 지난해부터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자금 압박을 받았고, 길거리에 뿌려진 전단을 보고 A씨 등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길거리 전단으로 영업했다는 점은 금융권 대출이 막힌 소상공인이 가장 먼저 접하는 경로가 광고 전단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B씨가 빌린 원금은 약 4천만원이었다. 그러나 수개월 사이 갚은 이자만 5천만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자가 원금을 넘어선 것이다. 원금 4천만원은 단 한 푼도 줄어들지 않은 채 이자만 쌓이는 구조였던 셈이다. 연 수백 퍼센트대 금리에서는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B씨 역시 고리대금을 갚느라 다른 사채까지 끌어 썼다.
하루 연체에도 독촉…주변인까지 괴롭힌 추심
문제는 금리만이 아니었다. B씨는 하루만 이자 상환이 늦어져도 A씨 등으로부터 시달렸다. 경찰 조사에서 A씨 등은 채무자뿐 아니라 주변인까지 괴롭히는 방식으로 채권추심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무자의 가족, 지인, 직장 등 주변 사람들을 압박해 변제를 강요하는 방식은 불법 사채 추심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꼽힌다.
B씨는 이 같은 독촉을 견디다 못해 지난 4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숨지기 전 남긴 유서에는 자신이 겪은 고통이 딸에게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불법 추심 피해는 채무자 본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남은 가족에게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을 B씨가 직접 지목한 셈이다.

계좌를 빌려준 14명도 입건
해당 사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금융계좌 제공자 14명이 함께 입건됐다는 점이다. 불법 사채업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계좌를 쓰지 않고 제3자에게 빌린 계좌로 이자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자금 흐름 추적이 어려워진다. 경찰은 계좌를 빌려준 사람들도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형사 책임을 묻고 있다. 계좌 제공자는 입건된 20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인 14명이다.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타인에게 넘기는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대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불법 사금융 피해를 입었다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센터(1332)에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해 지급한 이자는 무효이고, 이미 낸 초과분은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도 대부업법에 명시돼 있다.
경찰, 추가 피해 수사와 유족 지원 병행
경찰은 구속된 2명 외에 나머지 입건자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는 한편, 이들이 운영한 업체의 추가 피해자를 찾고 있다. 확인된 피해자 19명 외에 피해를 보고도 신고하지 못한 채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불법 추심은 채무자가 보복이나 주변 노출을 우려해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 규모는 드러난 수치보다 클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악질적인 불법 사금융업자를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남겨진 가족이 또 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보호와 회복 지원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B씨의 유족은 수사 결과에 따라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이미 낸 이자에 대한 반환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 20%를 넘겨 받은 이자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면 구속된 A씨 등에게는 대부업법상 최고금리 위반과 불법 추심 혐의가 함께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