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곡성'만큼 섬뜩... '암살자(들)' 꺾고 박스오피스 1위 오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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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10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명 넘긴 일본 애니
보수를 100배 준다는 전단 한 장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작고 귀여운 캐릭터들은 남국의 섬에 도착해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주민은 노래로 손님을 맞고 포장마차 음식을 내놓는다. 바닷가 숙소에서 보내는 나날은 휴가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섬에선 실종자가 잇따르고 있다. 알고 보니 이 섬의 동굴엔 복수에 주려 주민을 잡아먹는 거대 인어가 살고 있다. 이렇게 기과한 이야기를 담은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한국 극장가 정상에 다시 올랐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지난 11일 하루 관객 11만9961명을 모아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전날 2위에서 한 계단 올라선 기록이다. 같은 날 2위 ‘암살자(들)’은 10만8047명을 동원했다. 두 영화의 격차는 1만1914명이다.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의 이날 매출액은 12억2838만원으로 전체의 31.1%를 차지했다. 누적 관객은 128만1485명이다.
여건은 불리했다. 이날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의 스크린 수는 1067개로 ‘암살자(들)’의 1248개보다 적었다. 상영횟수도 3562회로 ‘암살자(들)’의 4016회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좌석판매율은 26.2%로 상위 10편 가운데 가장 높았다. ‘암살자(들)’의 좌석판매율은 18.8%였다.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대원미디어 배급으로 지난달 30일 국내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조짐이 보였다. 개봉 전날 낮 기준 사전 예매량이 21만명을 넘겼다. 예매율은 41.4%로 전체 1위였다. 개봉 당일에는 약 12만2000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높은 오프닝 기록이다.

이후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출연한 ‘암살자(들)’과 1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개봉 10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명을 넘겼다.
일본의 열기는 더 뜨겁다. 영화는 7월 24일 일본에서 먼저 개봉했다. 개봉 첫날에만 흥행 수입 9억9000만엔을 올렸다. 개봉 사흘 만에 흥행 수입은 22억엔을 넘어섰다.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일본 현지 집계에 따르면 영화는 개봉 75일 차인 지난 6일까지 흥행 수입 172억엔, 관객 1178만명을 기록했다. 올해 일본 개봉작 가운데 흥행 1위다. 일본 역대 흥행 순위로는 15위권에 올라 있다. 제작진은 극장 입장 특전을 다시 배포하기로 했다. 4DX 상영과 관객이 함께 응원하며 보는 응원 상영도 화제가 됐다.
연출은 오이카와 케이 감독이 맡았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TV판을 만든 사이게임스픽처스가 담당했다. 원작자 나가노 작가가 직접 각본을 썼다. 작품 전체 감수도 나가노 작가가 맡았다.

‘치이카와’는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 작가가 2020년부터 X(옛 트위터)에 연재해 온 만화다. 일본어 원제는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국내에선 이를 줄인 ‘먼작귀’로도 알려져 있다. 2022년부터는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되고 있다.
이번 극장판은 원작에서 가장 긴 에피소드로 꼽히는 ‘세이렌 편’을 옮겼다. 연재 당시에는 ‘섬 편’으로 불렸다. 나가노 작가는 이 이야기를 2023년 3월부터 11월까지 약 9개월 동안 X에 연재했다. 작가의 입원으로 한동안 연재가 멈췄다가 6월 재개되기도 했다.
연재 방식 자체가 일본 팬들을 붙잡았다. 짧은 분량의 만화가 X에 하나씩 올라왔다. 팬들은 다음 회를 기다리며 해시태그와 인용 게시물로 감상과 추리를 쏟아냈다. 그림 한 칸에 숨은 단서를 찾는 해석 글도 잇따랐다. 일본 팬들 사이에서 “영화로 만든다면 무조건 이 편”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2025년 11월 24일 극장판 제작 발표 게시물은 하루도 안 돼 ‘좋아요’ 50만개 이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치이카와, 하치와레, 우사기 일행은 하늘에서 떨어진 전단 한 장을 손에 넣는다. 보수 100배의 간단한 토벌 의뢰라는 내용이다. 일행은 섬으로 합숙을 떠난다.

섬 주민들은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하지만 주민들에겐 따로 속셈이 있었다. 주민들은 잇따른 실종의 원인으로 지목된 괴이 ‘세이렌’을 물리쳐 줄 이방인이 필요했다. 전단에 적힌 100배 보수도 사실이 아니었다.
세이렌은 인어 셋을 거느린 존재다. 작품 속에서 손꼽히는 전투력을 지녔다. 세이렌의 노래는 원래 섬의 농작물을 잘 자라게 했다. 세이렌과 주민들은 한때 공존했다. 균열은 인어 한 마리가 사라지면서 시작됐다. 세이렌은 주민 가운데 누군가가 인어를 먹었다고 믿고 보복에 나섰다. 치이카와는 사건을 쫓다 인어 고기에 얽힌 비밀에 다가간다.
외지인이 낯선 공동체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는 끝까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의 2016년 영화 ‘곡성’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다. ‘곡성’은 외지인이 나타난 뒤 시골 마을에서 기이한 사건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관객은 마지막까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환대하는 공동체가 실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설정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2019년 영화 ‘미드소마’와도 닮았다. ‘미드소마’의 주인공 일행은 스웨덴 시골 마을 축제에 초대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축제 뒤에는 마을의 섬뜩한 풍습이 숨어 있었다.
다만 ‘곡성’, ‘미드소마’와 달리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의 주인공은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이다. 이 귀여운 캐릭터들이 실종과 복수, 인어 고기를 둘러싼 비밀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일본 관객 사이에선 귀여운 작품으로만 알았는데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인상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원작은 일본의 ‘야오비쿠니(팔백비구니)’ 설화를 참고한다. 인어 고기를 먹은 소녀가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됐다는 전설이다. 후쿠이현 오바마시와 아이치현 가스가이시 등에 전해진다.
국내에선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가 주 소비층으로 꼽힌다. 어린이 관객 가운데는 예상보다 어두운 전개에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편 '암살자(들)' 제작비는 190억 원, 손익분기점은 약 370만 명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