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톱배우 판빙빙 "'이 한국 영화' 보고 충격…부러웠다"
작성일
AI도 못 따라잡는 인간 배우의 감정
판빙빙이 말하는 연기의 본질
중화권 배우 판빙빙이 인공지능(AI) 기술이 영화와 연기 영역에 빠르게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인간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은 대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판빙빙은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그는 아시아영화의 창 초청작인 웨인 왕 감독의 '미친 노인의 일기'와 아시아 단편 경쟁 부문의 '그녀가 말했다'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판빙빙은 "새로운 영화에 도전할 때마다 새로운 창문이 열리는 것 같아요. 그 창문을 통해 재미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죠"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여러 나라의 영화인들과 꾸준히 협업해왔다. 판빙빙은 "저는 중국 배우지만 다양한 나라의 영화인들과 함께 작업해왔다"며 "나라마다 영화의 언어와 스타일, 특색이 다른데, 배우로서는 다양한 경험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2023년 한슈아이 감독의 '녹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데 이어 3년 만에 다시 부산을 방문했다.
특히 한국 영화와 배우들에 대한 평가가 눈길을 끌었다. 판빙빙은 코로나19 시기 한국에서 '녹야'를 촬영하며 한국 영화계의 제작 환경과 배우들의 연기를 직접 경험했다. 그는 한국 영화의 다양한 장르와 배우들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에 자극을 받았다고 밝혔다. '녹야'에서 함께 연기한 이주영에 대해서도 프로페셔널하면서 신선한 배우라는 평가를 내놨다.
그가 한국 영화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며 꺼낸 작품이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다. 판빙빙은 토론토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뒤 배우들의 연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토론토영화제에서 '가능한 사랑'을 정말 좋게 봤다"며 "배우들이 영화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데뷔한 지 30년이 됐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며 "감독과 배우가 서로를 잘 알기에 가능한 연기였고, 관계와 삶의 고난을 잘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AI 숏폼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판빙빙은 "AI 숏폼 드라마를 가끔 보지만 등장인물의 모습이 비슷해 얼굴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AI 콘텐츠에서 배우들의 외형과 표현 방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 젊은 세대가 장편영화보다 숏폼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현재 중국의 청년들이 다양한 장편영화를 접하며 예술적 심미안을 키우던 우리 때와 달리 숏폼만 소비하고 있는 상황이 아쉽다"고 밝혔다. 기술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영화와 연기를 접하는 경험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취지다.
AI가 배우를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판빙빙은 "일부 감독들이 예산 감축을 위해 AI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연기할 때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전달 방식, 삶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과 스킬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사람이 연기할 때 나오는 감정과 삶에서 쌓인 노련함, 표현 방식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AI가 배우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판빙빙은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그는 오랜 기간 여러 작품을 경험한 배우로서 '가능한 사랑'의 연기가 특히 강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통해 자신의 연기 방식까지 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판빙빙은 인간 배우의 경험과 관계가 연기에 녹아드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이는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웨인 왕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뇌졸중으로 왼쪽 신체가 마비된 70대 노인 우츠기와 그를 돌보는 중국인 며느리 수수 사이에서 발생하는 욕망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릴리 프랭키가 우츠기를 연기하고 판빙빙이 수수 역을 맡았다.

판빙빙은 이 작품에서 나이와 질병, 죽음, 욕망이라는 주제를 주목했다. 그는 "나이, 질병, 죽음, 욕망이라는 심도 있는 키워드를 담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며 "보통 나이가 들면 욕망이 줄어든 채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이 인간으로서 갖는 욕구와 욕망을 무시해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으로는 흥행 가능성이나 캐릭터의 크기만을 꼽지 않았다. 판빙빙은 "좋은 캐릭터와 각본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감독들과 어울려 즐겁게 작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그래야 더 좋은 컨디션을 찾고 스트레스도 덜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웨인 왕 감독과의 작업 역시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가 작용했다.
'그녀가 말했다'는 싱가포르 출신 신예 아이번 탄 감독의 단편이다. 판빙빙은 신인 감독의 제안을 받고 대본을 읽은 뒤 작품에 참여했다. 싱가포르와 대만을 거쳐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점에 대해서도 신진 감독과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들어 기쁘다는 취지로 소감을 밝혔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국가와 장르를 기반으로 하지만 판빙빙이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판빙빙은 영화제 특별 프로그램인 '까르뜨 블랑슈'에도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문화계 인사가 자신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준 작품을 직접 골라 관객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지난해 처음 마련됐으며 올해는 김지운 감독, 판빙빙, 홍경표 촬영감독이 참여한다.
판빙빙이 선택한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2016년 영화 '아가씨'다. 그는 "박찬욱 감독의 카메라가 담아낸 여성들은 위험하면서도 자유롭다"며 "그 명료함과 담대함, 생명력이 나를 깊이 빠져들게 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아가씨'를 통해 한국 영화의 표현 방식에 대한 관심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판빙빙은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이유를 자신의 영화 활동을 바라보는 방식과 연결했다. 그는 새로운 감독과 배우, 언어와 장르를 만날 때마다 연기자로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마더부미(지모)'를 위해 5개 국어를 배우고 이번 작품을 위해 현지 언어를 익히는 등 작품마다 필요한 준비를 해왔다.
그는 "새로운 영화에 도전할 때마다 새로운 창문이 열리는 기분이다. '마더부미(지모)'를 위해 5개 국어를 배우고 이번 작품을 위해 현지 언어를 익힌 것처럼, 배우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성을 찾는 과정은 너무나 소중하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도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처음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의 A-리스트 영화제로 승격된 가운데 6일부터 15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판빙빙은 두 편의 출연작과 '까르뜨 블랑슈'를 통해 영화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한국 영화와 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함께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