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방송에 등장한 고 구하라...달라진 '상속'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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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 중 사망한 아내, 남편이 4억 상속재산 2억8500만원 청구
구하라법으로 배우자 상속권 박탈 가능할까?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아내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세상을 떠난 뒤 남편이 약 4억원의 상속재산 가운데 2억8500만원을 요구한 사연이 공개됐다.
남편은 자신이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며 상속재산 분할을 요구했고, 자녀들은 어머니를 돌보지 않은 남편의 상속권을 막아달라며 이른바 ‘구하라법’에 기대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2026 상속 전쟁: 남겨진 가족의 시간’에서는 이혼 소송 중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정수연 씨(가명)와 남편 이 씨 사이의 상속 갈등이 소개됐다. 제작진에 따르면 정 씨는 20년 넘게 홀로 두 자녀를 키운 뒤 8년 전 재혼했지만, 결혼 생활 중 남편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된 뒤 이혼 소송을 진행했다.
정 씨는 재혼 후 약 5년이 지난 시점에 남편의 여러 부적절한 관계를 자녀들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방송에서 소개됐다. 이후 이혼을 결심하고 소송에 들어갔지만 폐암 진단까지 받으면서 항암치료와 이혼 절차를 동시에 이어갔다.

지난해 2월 내려진 1심에서는 이혼이 선고됐지만 재산분할과 관련해서는 정 씨가 남편에게 115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단이 나왔다. 정 씨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폐암이 전이된 상황에서도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재판을 이어갔다.
하지만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정 씨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진행 중이던 이혼소송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게 됐다.
재판상 이혼청구권은 당사자에게 전속된 권리이기 때문에 소송 도중 배우자 한쪽이 사망하면 상속인이 소송을 이어받을 수 없다. 대법원도 이혼소송 계속 중 배우자가 사망하면 이혼소송 자체가 종료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 씨의 경우 항소심에서 이혼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사망하면서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가 되지 않았다. 이혼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인관계가 사망으로 종료된 만큼, 남편은 배우자의 지위를 유지한 채 상속 문제의 당사자가 됐다.
여기서 상속 문제가 복잡해졌다. 민법상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직계비속인 자녀와 함께 상속인이 된다.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은 자녀 한 명의 상속분에 50%를 가산하도록 규정돼 있다. 즉 자녀들과 배우자가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이 자녀보다 많게 정해져 있다.

정 씨 자녀들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도 여기다. 방송에서 자녀들은 어머니가 재혼하기 전부터 형성한 부동산 재산까지 남편이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다. 남편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내 집사람인데 당연히 (청구를) 해야 한다”며 자신이 자녀들에게 한 부분이 있고 아내의 재산도 자신으로 인해 늘어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남편이 요구한 금액은 약 2억8500만원이다. 정 씨가 남긴 상속재산은 약 4억원으로 소개됐으며, 남편은 법정상속분뿐 아니라 자신이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까지 인정해달라는 취지로 기여분을 주장했다.
상속에서 말하는 기여분은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공동상속인 가운데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거나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한 사람이 있는 경우, 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상속분을 조정하는 제도다.
따라서 남편이 실제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는 단순히 ‘남편이므로 얼마’라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상속재산의 범위와 형성 과정, 혼인 기간, 각자의 재산 형성 및 유지에 대한 기여 정도, 다른 상속인들의 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따져질 수 있다.
더구나 정 씨의 재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재혼 이전에 형성된 재산이라면 그 재산이 상속재산에 어떻게 포함되는지도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속재산분할에서는 사망 당시 피상속인에게 귀속된 재산이 무엇인지가 먼저 확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 씨 자녀들이 또 하나 주목하고 있는 것은 올해 시행된 상속권 상실 제도다.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은 애초 자녀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은 부모 등이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는 문제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논의됐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상속권 상실 대상이 배우자와 자녀 등 모든 상속인으로 확대됐다.

현재 민법 제1004조의2는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했거나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상속권 상실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6년 3월 17일부터 시행된 현행 규정에서는 배우자 역시 대상에 포함된다.
중요한 점은 가족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상속권을 없앨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피상속인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고, 그런 유언이 없다면 공동상속인이 일정한 사유를 근거로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상속권을 잃게 할지는 가정법원이 판단한다.
법원은 상속권 상실 여부를 판단하면서 부양의무 위반이나 부당한 대우가 있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다. 현행 민법은 해당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속권 상실이 확정되면 상속이 개시된 시점으로 소급해 상속권을 잃게 된다.
정 씨 자녀들이 주장하는 사정 가운데 남편이 투병 중인 정 씨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부분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앞으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상속권 상실 요건이 충족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부양의무를 얼마나 위반했는지, 부부 사이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이혼소송 당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 측에서 반대로 자신이 정 씨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면 이 역시 법원이 판단할 자료가 될 수 있다. 방송에서도 자녀들은 남편 측이 일정 부분 생활비를 보탰다고 주장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남편은 이혼소송 중이어서 부양 의무를 다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이번 사례가 더욱 복잡한 이유는 이혼과 상속이 서로 다른 법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 씨가 생전에 이혼 판결을 확정받았다면 남편의 배우자 지위와 상속 문제는 지금과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혼소송 중 사망하면서 이혼소송은 종료됐고, 남편은 법률상 배우자의 지위를 가진 상태에서 상속 문제를 맞게 됐다.
재산분할 문제 역시 별도로 구분해야 한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은 혼인 중 부부가 함께 형성한 재산을 청산하는 제도이고, 상속은 사망 당시 피상속인에게 귀속된 재산과 채무를 상속인에게 승계하는 절차다. 대법원은 재산분할이 단순한 재산권과 동일하지 않고 혼인 중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26년 1월에도 이혼한 배우자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한 경우 생존한 전 배우자가 사망한 사람의 상속인을 상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혼한 뒤 한쪽이 사망하더라도 일정한 경우 재산분할의무가 상속인에게 승계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는 이미 이혼이 성립한 사건으로, 이혼소송 자체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배우자가 사망한 이번 사례와는 법적 전제가 다르다.

‘PD수첩’이 이번 사례와 함께 조명한 것은 상속 분쟁이 특정한 부유층이나 대기업 일가에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MBC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분할 청구는 3612건으로 10여 년 전보다 약 5배 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부모가 평생 마련한 집과 토지를 둘러싼 가족 간 갈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속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전에 재산의 범위와 소유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의 의사를 법적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유언이 있더라도 모든 분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속인이 누구인지와 재산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가 명확해지면 가족들의 해석이 충돌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
정 씨 자녀들은 방송에서 어머니의 재산을 둘러싼 이번 싸움을 두고 쉽지 않은 법적 절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속권 상실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배우자에게 부양의무 위반이나 심히 부당한 대우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실제 법원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상 상속권 상실 청구는 가정법원이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해 인용하거나 기각하도록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