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설경구,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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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의 재회,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이 그린 '가능한 사랑'
계급 갈등과 사랑의 가능성, 베네치아 은사자상 수상 작품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다시 부부로 만난 전도연과 설경구가 서로를 향해 거침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을 웃음으로 물들였다.

전도연은 설경구를 두고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고 농담했고, 설경구가 옆에서 해명하려 하자 “내려놔, 내려놓으세요”라고 받아치며 오랜 동료다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가능한 사랑’ 오픈 토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해 영화의 제작 과정과 배우들의 호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 조여정, 전도연, 설경구 / 뉴스1
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 조여정, 전도연, 설경구 / 뉴스1

‘가능한 사랑’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섰던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부유한 남편 상우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설경구가 호석을, 전도연이 미옥을, 조여정이 예지를, 조인성이 상우를 연기했다.

이야기는 단순한 부부 관계나 남녀 간의 사랑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고 노동자와 자본가에 가까운 인물들이 만나면서 경제적 격차와 계급의 차이가 드러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카메라에 담아 작품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윤리 문제도 함께 다뤄진다.

이창동 감독은 앞서 작품을 소개하면서 해고 노동자 이야기이면서 계급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윤리와 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두 부부를 통해 관객과 함께 느끼고 질문하고 싶었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 제목인 ‘가능한 사랑’에도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 담겼다. 이 감독은 사랑을 남녀 간의 관계에만 한정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받아들여지고 축복받는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사랑의 가능성과 한계를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이 작품이 관심을 받은 배경에는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라는 점도 있다. ‘가능한 사랑’은 2018년 ‘버닝’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장편 영화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꾸준히 다뤄온 이 감독이 오랜 공백 끝에 내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관심을 모았다.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의 재회도 19년 만이었다. 두 사람은 2007년 영화 ‘밀양’에서 처음 함께 작업했다. 전도연은 ‘밀양’에서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를 연기했고, 이 작품으로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첫 사례였다.

‘밀양’은 배우 전도연의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지만 촬영 현장에 대한 전도연의 기억은 이번 작품과 상당히 달랐다. 전도연은 올해 초 ‘가능한 사랑’ 관련 행사에서 “‘밀양’은 치열 살벌한 현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즐겁게 촬영해보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촬영장에서는 “눈뜨면 현장에 가고 싶을 정도로 힐링 되는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이번 부산 오픈 토크에서도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과 다시 작업한 현장의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이창동 감독님과 ‘밀양’을 같이 해봤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를 예상하고 갔다”면서도 실제 촬영은 예상과 달랐고 “정말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배우 전도연 / 뉴스1
배우 전도연 / 뉴스1

전도연은 설경구와도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는 오히려 무뚝뚝한 성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가 무뚝뚝한 사람들이라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거나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며 설경구를 향해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곧바로 전도연은 “아, 아마 ‘가장’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설경구가 마이크를 들고 해명하려 하자 전도연은 “내려놔, 내려놓으세요”라고 말해 현장에 웃음이 터졌다.

전도연이 두 사람의 분위기와 대비되는 인물로 꼽은 것은 조인성과 조여정이었다. 두 배우가 촬영장에 합류한 뒤 서로를 배려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전도연은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힐링이 되는 현장이었다”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게 다 두 사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인성과 조여정이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면 “상냥한 사람 둘이 가고 무뚝뚝한 사람들 둘만 남았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설경구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저는 조인성, 조여정 씨가 미웠다”며 두 사람이 너무 배려를 많이 하고 젠틀해서 오히려 자신이 전도연에게 더 많은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인성, 조여정 같은 이런 두 사람이 더 드물다. 저 같은 사람이 많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레드카펫에서 있었던 일화도 공개했다. 설경구는 자신은 레드카펫을 걸을 때 앞만 보고 가는 편인데 뒤를 돌아보면 조인성이 전도연과 조여정을 양쪽에서 에스코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이를 두고 “그래서 저는 이 두 배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농담했다. 작품 속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과 가치관을 가진 두 부부를 연기한 네 배우가 실제 행사에서는 서로를 놀리며 친근한 분위기를 보여준 셈이다.

‘가능한 사랑’은 해외에서 먼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월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뒤 공식 상영 직후 6분에서 7분가량 기립박수가 이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외신들은 영화의 계급과 욕망, 불평등, 착취에 대한 접근과 배우들의 연기를 주목했다.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서로 다른 주제와 분위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이창동 감독의 연출을 높이 평가했고, 할리우드리포터는 현대 사회의 경제적·감정적 불안을 파고드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영국 가디언은 영화의 절제된 균형감을 언급했고, 스크린데일리는 계급과 욕망, 착취를 다룬 강렬한 복귀작이라고 평가했다.

전도연의 연기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해외 매체들은 노동자 가족이 겪는 상처와 욕망을 작은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한 점에 주목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작품을 위해 촬영하는 과정 역시 영화의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평가됐다.

특히 영화 속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작품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과 연결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가 해고 노동자 부부의 삶을 기록하면서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그 고통을 자신의 작품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두 부부의 계급적 차이와 서로 다른 삶의 태도도 점차 드러난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주역들 / 뉴스1
영화 '가능한 사랑'의 주역들 / 뉴스1

‘가능한 사랑’은 결국 서로 다른 두 부부가 가까워지는 과정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해고 노동자의 삶과 부유한 계층의 삶이 만나고, 이를 바라보는 카메라까지 개입하면서 사랑과 공감, 계급과 욕망,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겹쳐지는 구조다.

베네치아에서의 평가와 수상도 이런 작품의 성격과 맞물려 있다.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이 베네치아에서 본상을 받은 것은 2002년 ‘오아시스’로 은사자상 감독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이다. 한국 영화가 베네치아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창동 감독은 수상 당시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배우 전도연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에게도 작품의 생명을 불어넣었다며 공을 돌렸다.

국내에서는 지난 9월 일부 극장에서 먼저 개봉했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도 예정돼 있다.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에 따르면 국내 일부 극장에서는 9월 23일부터 상영됐고, 넷플릭스 공개일은 11월 6일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5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가능한 사랑’ 팀은 영화제 기간 오픈 토크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만났고, 이날 행사에서는 작품의 무거운 주제뿐 아니라 전도연과 설경구가 보여준 현실적인 동료 관계까지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