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투병한 50대 여성…마지막 순간 ‘3명’ 살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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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투병도 멈추지 않은 나눔, 마지막 선물로 3명 살렸다
25년간 투병 생활을 이어오면서도 주변을 돕는 일을 놓지 않았던 50대 여성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새 생명을 전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구진희(55) 씨가 지난달 18일 고신대학교복음병원에서 간과 양쪽 신장을 기증해 3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7일 밝혔다.
딸과 떠난 베트남 여행… 다음 날 갑작스러운 뇌출혈
구 씨는 지난달 딸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던 길에는 딸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냐"고 물으며 함께 여행한 소감을 나눴다. 작은딸 지원 씨에게는 "엄마가 힘들어도 이거 보여주려고 같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지난달 12일 아침 구 씨는 호텔에서 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구 씨는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후 국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구 씨는 생전 가족에게 장기기증에 대한 뜻을 여러 차례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편 김기선 씨는 "평소 아내와 마지막 순간 장기기증을 하면 좋은 일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딸들도 아내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2021년 김 씨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시신 기증을 선택한 일도 구 씨와 가족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두 딸 역시 어머니가 평소 강조했던 남을 돕고 선한 영향을 끼치자는 가치관에 따라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25년 투병 속에서도 이어간 봉사와 나눔

서울에서 태어난 구 씨는 1994년 김 씨와 결혼해 두 딸을 뒀다. 2001년 임신 중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을 진단받은 뒤 약 25년 동안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
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구 씨는 주변 사람들을 돕는 일을 이어갔다.
2015년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부산으로 옮긴 뒤에는 남편 회사의 신앙 모임에서 활동하며 직원과 가족들을 도왔다. 어린 자녀를 대신 돌봐주거나 새로 입사한 직원들이 직장 생활에 적응하도록 힘을 보탰고, 환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와 몽골 등 해외 봉사에도 참여했다.
건강이 비교적 안정됐을 때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항공사 기장인 남편과 가족은 많게는 1년에 서너 차례 여행을 떠났고 구 씨에게도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큰 즐거움이었다.
최근에는 가족에게 기쁜 일도 이어졌다. 구 씨는 지난 8월 큰딸 지수 씨가 낳은 첫 손주를 품에 안았고, 내년 결혼을 앞둔 작은딸 지원 씨와는 결혼 준비를 함께했다.
"엄마의 가치관 이어가겠다"… 가족이 전한 마지막 인사
큰딸 지수 씨는 "앞으로도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엄마의 가치관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여행을 함께한 작은딸 지원 씨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다"며 "마지막까지 나와 같이 여행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전했다.
남편 김 씨도 아내를 향해 "당신을 만난 지 33년,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 잘 간직하겠다"며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었으면 한다. 사랑하고 너무 고마웠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25년의 긴 아픔 속에서도 늘 가족과 이웃을 먼저 살폈던 구진희 씨가 마지막 순간까지 3명의 환자에게 생명을 나눴다"며 유가족에게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장기기증이란 무엇일까…뇌사 기증부터 생체 기증까지 알아둘 내용
장기기증은 다른 사람의 손상되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기를 대신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대가 없이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기증된 장기는 의학적 판단과 정해진 절차를 거쳐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된다.
국내에서 장기기증은 크게 살아있는 사람이 장기의 일부를 기증하는 생체 기증과 뇌사 상태에서 이뤄지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생체 기증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장 한쪽이나 간 일부를 기증하는 경우다. 기증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가 먼저 진행되며, 기증 가능 여부는 의료진의 판단과 관련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
뇌사 장기기증은 뇌 전체의 기능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정지해 법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이뤄진다. 단순히 의식이 없거나 혼수상태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뇌사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검사와 판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뇌사 상태에서는 심장, 폐, 간, 신장, 췌장 등 여러 장기의 기증이 가능할 수 있다. 다만 실제 기증 여부와 기증할 수 있는 장기의 종류는 기증자의 건강 상태와 각 장기의 의학적 상태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앞으로 뇌사 또는 사망했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본인의 의사를 미리 표시해 두는 제도다. 희망등록을 했다고 해서 등록 즉시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기증 상황이 발생하면 의료적 조건과 법적 절차 등을 확인하게 된다.
장기이식은 기증자와 이식대기자 사이의 혈액형을 비롯한 여러 의학적 조건과 응급도 등을 고려해 진행한다. 장기를 사고파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장기기증은 금전적 대가 없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
장기기증과 이식은 한 사람의 결정만으로 곧바로 진행되는 단순한 의료행위가 아니다. 기증 가능 여부 확인부터 뇌사 판정, 장기 적출과 이식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의료·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