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외식은 끊었는데…” 고물가에 한국인들이 대거 몰린 뜻밖의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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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여행 지출 줄고 OTT·가전에 몰려…'홈코노미' 확산
고물가와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외식과 여행, 의류처럼 집 밖에서 돈을 쓰는 소비는 줄어드는 반면 OTT와 영상음향기기, 반려동물 서비스 등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지출은 늘어나는 ‘불황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5일 국가데이터처 가계지출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의류·신발 실질 지출은 12만3420원으로 1년 전보다 1.0% 감소했다. 2024년을 제외하면 최근 5년간 2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가 이어진 것이다.
옷을 사는 데 쓰는 돈이 줄어든 것은 단순히 의류 가격 변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외식과 모임, 출근과 같은 외부 활동이 줄면 새 옷을 구매해야 할 필요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이다. 고물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외출 자체를 줄이고 꼭 필요한 품목 위주로 지갑을 여는 흐름이 의류 지출에도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행 관련 지출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숙박비의 올해 2분기 실질 지출은 1만3054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1% 감소했다. 명목상 숙박비는 2022년 2분기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 기준에서는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교통·운송 관련 지출도 줄었다.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교통·운송 실질 지출은 26만7176원으로 1년 전보다 10.1% 감소했다. 자동차 구입비는 6.1%, 운송기구 연료비는 10.6%, 철도운송비는 10.1% 각각 줄었다.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과 활동이 줄면서 주류·담배 지출도 전년 동기보다 2.5% 감소했다. 의류와 교통, 숙박, 주류 등 여러 항목에서 지출이 동시에 줄어든 것은 가계가 외부 활동과 선택적 소비에 들어가는 비용부터 줄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필요한 소비는 다른 흐름을 보였다.
올해 2분기 OTT 등이 포함된 ‘방송 및 시청각 콘텐츠 이용’ 실질 지출은 1년 전보다 1.3% 증가했다.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을 시청하는 데 필요한 콘텐츠 이용료가 늘어난 것이다.
집에서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기기 구매도 크게 증가했다. 가구당 영상음향기기 실질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3% 늘었다. 가전 및 가정용 기기 지출은 36.9%, 가구·조명 및 장식서비스 지출은 25.4% 증가했다. 악기·음반 및 비디오물 지출도 17.8% 늘었다.
소비자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단순히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집 안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돈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외식이나 여행처럼 한 번 소비하고 끝나는 지출보다 집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전이나 영상기기, 가구 등에 돈을 쓰는 방식으로 소비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홈코노미’ 소비가 확대되는 배경에는 외부 활동에 드는 비용 부담이 있다. 식사 한 번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고 여행에서는 숙박비와 교통비가 함께 발생하기 때문에 물가가 높아질수록 외출 한 번에 필요한 전체 비용이 커진다.
반면 집에서는 이미 보유한 가전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추가 비용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다. 배달이나 포장 음식 등을 이용하더라도 외식과 비교하면 모임 장소와 이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 여가를 보내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려동물 관련 소비도 증가했다. 올해 2분기 ‘화훼 및 반려동물 서비스’ 실질 지출은 1년 전보다 45.1% 상승했다. 해당 항목은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와 화훼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
반려동물 지출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소비 변화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외부 활동에 쓰던 돈의 일부가 반려동물 돌봄이나 생활환경을 꾸미는 데 사용되면서 집 안에서의 만족도를 높이는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현상은 OTT 이용률에서도 확인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조사에서는 지난해 OTT 이용률이 81.8%로 집계됐으며 유료 OTT 이용률은 65.5%였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전체 OTT 이용률은 4.8%포인트, 유료 OTT 이용률은 8.5%포인트 높아졌다.
소비자들이 모든 지출을 줄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번 소비 변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이다. 외식이나 여행처럼 외부 활동에 필요한 지출은 줄이면서도 집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와 제품에는 돈을 쓰는 방식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가성비 소비’도 이런 흐름과 맞물려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SPA 브랜드의 성장세가 꼽힌다. 의류 기획·제조·유통을 한 회사가 맡는 SPA 브랜드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유니클로의 국내 사업을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매출은 최근 1년 사이 약 28% 증가했다. 의류 전체 지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브랜드의 매출이 늘어난 것은 소비자가 옷 자체를 사지 않는 것과 저렴하거나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황형 소비는 모든 소비를 동일하게 줄이는 현상과는 다르다. 소비자가 지출 항목마다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외식 대신 집밥이나 포장 음식을 선택하고, 여행 대신 집에서 OTT를 이용하거나, 비싼 의류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SPA 브랜드를 찾는 식이다.

이런 소비 패턴에서는 ‘밖에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실제 가계지출에서도 의류와 숙박, 교통 관련 지출이 감소한 반면 영상음향기기와 가구, 가정용 기기 등 집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품목의 지출은 크게 증가했다.
다만 집콕 소비가 늘었다고 해서 소비 자체가 위축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자가 외부 활동을 줄이는 과정에서 집 안에서 사용할 상품과 서비스로 지출을 옮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나 외식처럼 여러 산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소비가 줄고 특정 가정용품이나 콘텐츠 서비스에 소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와 고물가가 맞물리면서 이러한 소비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와 고물가가 집콕 소비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면서 내수 진작과 대인 관계 단절 예방을 위해 오프라인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나타나는 소비 변화는 단순히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의류·숙박·교통처럼 외부 활동에 필요한 지출은 줄고 OTT·가전·영상음향기기·가구·반려동물 서비스처럼 집 안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지출은 늘면서 가계가 한정된 돈을 어디에 사용할지를 다시 선택하는 모습이 통계에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