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영화평론가가 ‘유해진 집 앞 시위’에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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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 비판할 수 있지만 배우 집앞 시위는 집단 괴롭힘"
"서북청년단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표현의 자유 보장돼야"

라이너 영화평론가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영화는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면서도 "배우의 집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집단적인 괴롭힘"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과거 서북청년단이 했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며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5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배우 유해진이 8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암살자(들)'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스1
배우 유해진이 8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암살자(들)'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스1

박재홍 앵커는 방송에서 '암살자(들)'이 관객 200만명을 넘긴 가운데 주로 국민의힘 쪽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상영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제작사가 부산국제영화제 무대 인사까지 취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라이너 평론가는 "영화는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도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가진 태도라든지 허진호 감독이 진실을 말하는 방식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같은 것을 다룰 때는 조금 다른 방식을 취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이런 부분의 비판은 당연히 가능한 것이고 이뤄져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 이뤄지고 있는 여러 방식은 매우 잘못돼 있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출연 배우인 유해진을 향한 공격을 사례로 들었다. 라이너 평론가는 "유해진 배우의 집 앞에서 '북한상'이라고 하는데, 북한상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라면서 "배우의 집 앞에서 시위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제가 볼 때 집단적인 괴롭힘이다. 과거에 서북청년단이 했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작품에서 나온 결론이나 의문 제기, 음모론 같은 것들은 비판받을 수 있고 반박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영화와 관련 없는, 혹은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공격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앵커는 "많은 분이 제기하는 문제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면서도 "당시 자유언론 실천을 향한 언론인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도 방점을 찍어서 영화를 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이날 방송에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에 대해서도 자세히 평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받았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출연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올해 저는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했다"며 "일단 인물들이 얽혀 돌아가는 관계가 너무 흥미롭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 이 두 부부의 이야기인데 그들이 과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탐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배우들의 연기도 높이 평가하며 "전도연 배우는 '밀양' 이후 정말 오랜만에 이 감독과 만났는데 이번 연기가 '밀양'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설경구 연기를 두고선 "대사가 별로 없는데도 이 사람이 화가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밀양'의 송강호 배우가 등으로 연기했다면 설경구 배우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너져 있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게 만드는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조여정의 연기에 대해선 "자칫하면 위선자로 보일 수 있는 위치인데 끝까지 캐릭터를 쥐고 가면서 한 사람의 사람으로 보이게 연기한 부분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배우 유해진 / 뉴스1
배우 유해진 / 뉴스1

상영 시간이 164분에 이르는 데 대해서는 "두 부부 사이가 한순간도 쉬지 않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장례식장에서 시작해 마스크 공장, 해고자 모임, 별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하나하나 잘 돼 있다"며 "마치 3막 정도로 구성된 연극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설경구 배우가 연기한 호석이라는 인물이 입을 열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관객도 그만큼 기다려야 한다"며 "보고 나면 164분이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자막에 주목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십계명의 다른 계명은 ‘죽이지 마라’, ‘훔치지 마라’처럼 행동을 금지하는데 마지막 계명만 유일하게 사람의 마음을 금지한다"며 "이 감독은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영화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이 영화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남의 아내, 남의 고통까지 탐한다"고 말했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는 "보통 사랑 이야기는 불가능한 사랑을 다루는데 여기서는 가능한 사랑"이라며 "무언가를 탐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방향이 같은데 어디서 갈라지느냐를 묻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이 작품의 결론은 탐하는 걸 멈추는 순간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계급 격차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으로 '몸'을 꼽았다. 라이너 평론가는 별장에서 아이가 호루라기를 불자 그곳에서 일하는 인물이 달려 나오는 장면을 예로 들며 "그 장면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아이는 호루라기를 불어 보고 싶었을 뿐이고 그 사람은 소리를 들으니까 몸이 달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계급이라는 게 통장에 새겨지는 게 아니라 몸에 새겨진다는 점이 무섭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조여정 배우가 연기한 인물은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이 많지만 자기 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며 "이 감독의 날카로운 비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마스크 공장 장면에 대해서는 "노조를 만들자고 말하는 노동자 세 명은 모두 한국인이고 그 뒤로 외국인 노동자 두 명이 그냥 지나가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조여정의 카메라가 놓치는 부분을 이창동의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도 비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기생충'은 가난한 쪽이 계획을 세워 부잣집으로 숨어드는 이야기이고 '가능한 사랑'은 가진 쪽이 계획을 세워 가난한 쪽에 다가가는 이야기"라며 "방향이 정반대"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기생충'에서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말은 가난한 사람의 삶은 계획을 세워 봤자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체념"이라며 "계획을 할 수 있는 힘 자체가 계급 차이에서 온다는 점을 건져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가 꼽은 명장면은 조인성과 조여정이 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이다. 라이너 평론가는 "남편이 '너 지금 메소드 연기하는 거잖아'라고 말하자 아내가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하는 거야'라고 답한다"며 "사랑하려고 한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계급적으로 들릴 수 있구나 싶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그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주는 시혜적인 사랑"이라며 "더 무서운 것은 그 인물이 진심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라이너 평론가는 "사마리아인의 사랑은 내려다 주는 사랑이 아니라 옆에 있어 주고 부축해 주는 사랑"이라며 "영화 뒷부분에 그 인물이 처음으로 탐욕을 내려놓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랑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