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작정하고 시작한 일...'이 사람' 재산 일부 환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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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부호가 남긴 재산,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정부가 일제강점기 친일파 김한규의 후손들이 보유하던 대전 소재 토지 약 189평을 국가로 환수했다.

지난 정부에서 중단됐던 친일재산 환수 소송이 다시 진행되면서 이뤄진 두 번째 환수 사례지만, 당시 조선의 부호로 꼽혔던 김한규의 전체 재산 규모를 감안하면 이번에 되찾은 토지는 일부에 그친다.

지난 4일 JTBC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환수된 토지는 대전에 있는 임야로, 면적은 약 189평이며 가치는 약 5300만원으로 알려졌다. 현장에는 농작물이 자라는 곳과 수풀이 우거진 곳이 함께 있고 토지 앞쪽으로는 도로가 나 있다. 법무부는 지난 7월 김한규 후손들을 상대로 한 재산 환수 절차를 통해 해당 토지를 국가에 귀속하는 데 성공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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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가 일제강점기에 남긴 재산의 규모를 살펴보면 이번 환수 대상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알 수 있다. 김한규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부호로 분류한 인물이며 50만엔 이상의 자산을 가진 조선인 자산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50만엔이라는 금액은 현재의 화폐가치와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김한규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상당한 재산을 보유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김한규의 친일 행적은 조선총독부가 일제 통치에 협력한 조선인들의 공적과 경력을 정리해 발간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조선공로자명감에는 김한규를 두고 청년의 모범이 된다는 취지의 평가가 실려 있다.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한 인물을 공로자로 소개하는 자료에 이름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당시 김한규가 총독부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도 드러난다.

김한규는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이었던 중추원에서도 활동했다. 서울역사편찬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한규는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됐고, 이후 경제계에서 활동하다 1933년 중추원 참의를 맡아 1936년까지 재임했다. 한일은행 전무취체역과 경성상업회의소 관련 직책 등을 맡은 경력도 확인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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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으로 설치됐지만, 실제로는 식민통치에 협력한 조선인 유력자들이 참여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관련 자료에서도 김한규는 중추원과 경제 분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중추원을 이완용·박영효·송병준·권중현 등 거물급 친일 인사들이 모인 곳으로 설명했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 처벌을 위해 설치됐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도 중추원 출신 인사들은 주요 처벌 대상으로 거론됐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로 형성된 재산이라고 해서 현재 남아 있는 토지를 곧바로 국가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가 재산을 환수하려면 해당 재산이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해 형성된 재산이라는 점을 법적으로 입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토지의 소유관계와 매매 과정, 상속관계를 추적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특히 친일파가 생전에 보유했던 재산이 여러 차례 상속되거나 매매된 경우에는 현재 소유자와 최초 재산 형성 과정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인해야 한다. 토지 자체가 남아 있지 않고 이미 처분돼 현금이나 다른 자산으로 바뀐 경우에는 추적해야 할 범위가 더 넓어진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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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 환수 작업이 중단됐다가 다시 움직이게 된 배경에는 관련 법과 조사기구의 변화가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회는 올해 5월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다시 설치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해당 법은 6월 공포됐으며 12월 3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2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하면 과거 조사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재산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이미 토지나 건물을 처분해 현금화한 경우처럼 현재 등기부상 친일파 후손의 소유로 남아 있지 않은 재산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정부는 새 조사위 활동을 통해 숨겨진 친일재산을 추적하고 국가 귀속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 김한규 재산 환수는 새 조사위가 공식 출범하기 전에 기존 법적 절차를 통해 이뤄진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5300만원 상당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했다고 해서 김한규가 일제강점기에 보유했던 전체 재산의 규모가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례는 친일재산 환수 과정에서 남아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토지대장과 재산 관련 기록을 비롯해 상속과 매매 자료를 장기간에 걸쳐 추적해야 하고, 해당 재산이 친일 행위의 대가로 형성됐다는 사실도 법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김동아 국회 법제사법위원은 이미 드러난 재산뿐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재산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취지로 밝혔다. 친일파 후손들이 토지를 처분해 현금화한 재산에 대해서도 면밀한 추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2월 출범하는 2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2010년 1기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마친 뒤 16년 만에 다시 설치되는 조사기구다. 법무부는 새 법률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김한규 후손으로부터 이번에 환수된 토지는 약 189평, 5300만원 규모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부호로 분류됐던 인물의 재산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돼 국가로 돌아온 일부라는 점에서, 앞으로 남은 재산을 어떻게 찾아내고 법적으로 입증할지가 친일재산 환수 작업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