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첫날 벌어진 일... 전국서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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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검찰 체제 막내리고 수사·기소 분리 시작
미완의 출범... 중수청·공소청 첫날부터 어수선
검찰청이 문을 닫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이 2일 동시에 업무를 시작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발한 검찰청 체제가 78년 만에 막을 내리고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새 형사사법 체계가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새로 꾸려진 중수청은 청사 공사와 인력 배치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열어 첫날부터 어수선했다. 기존 검찰 조직을 그대로 바꾼 공소청은 비교적 조용히 업무를 시작했다. 다만 공소청도 전산 권한 문제로 일부 민원 업무가 멈춰 섰다.

수사는 중수청·경찰, 기소는 공소청
이날부터 형사사건 수사는 중수청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나눠 맡는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신설된 중수청은 부패·경제·방위사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범죄 등 중대범죄와 법왜곡죄 수사를 전담한다. 나머지 일반 범죄는 경찰이 맡는다.
법무부 산하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심사,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 통제에 집중한다. 검사의 직접 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은 폐지됐다. 공소청 검사는 보완수사가 필요하면 경찰이나 중수청에 요구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영장을 신청하면 헌법상 영장청구권을 가진 공소청 검사가 이를 검토해 법원에 청구한다.
중수청 "정치적 중립·수사 독립 지키겠다"
중수청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빌딩에서 개청식과 현판 제막식을 열었다. 초대 청장이 아직 임명되지 않아 전종민 중수청 차장이 행사를 이끌었다.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절차는 아직 진행 중이다.
전 차장은 "중수청은 절제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전 차장은 "지난날의 과오를 거울삼아 같은 잘못을 이름만 바꿔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과거 검찰의 정치 수사와 별건 수사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 차장은 운영 원칙으로 범죄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 우선,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 수호,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직무 수행, 최고 수준의 전문 수사 역량 확보, 인권과 적법 절차 보장 등 5가지를 내걸었다. 전 차장은 '부실 개청'이라는 지적에 대해 2001년 개항 당시 우려를 딛고 세계적 공항으로 자리 잡은 인천국제공항을 예로 들며 "중수청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축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 있는 자들의 범죄를 다루는 동시에, 가장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중수청에 맡겨진 임무"라고 말했다.
개청식에는 김영진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노경필 법원행정처장, 오동운 공수처장, 최재민 서울지방중수청장 등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형사사법체계 개편 과정에서 범죄 대응 공백이나 사건 처리 지연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 위원장은 "중수청이 미국의 FBI보다 훌륭한 수사기관이 돼 달라"고 했다.
공소청은 비공개 개청식…"존재 이유 다시 증명해야"
공소청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옛 대검찰청 본관에서 비공개로 개청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이정현 검찰총장 직무대행(공소청 차장검사)과 핵심 간부 일부만 참석했다.
이 직무대행은 "오늘부터 우리는 공소청의 존재 이유를 국민들께 다시 증명하고 신뢰를 회복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직무대행은 중용의 '행원자이(行遠自邇)'와 '등고자비(登高自卑)'를 인용해 가까운 곳부터 살피고 낮은 곳을 향하는 자세를 주문했다.
공소청은 직접 수사를 하던 전국 청의 인지·합동수사부 42개를 없애고 중대범죄기소부 29개로 바꿨다. 본청의 중대범죄 관련 부서도 통폐합했다. 공소청은 중요 사건에서 적법한 증거 수집이 이뤄지도록 경찰과 중수청을 지원하는 한편 공소 제기·유지와 형 집행, 범죄수익 환수에 역량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공사 중인 청사·빈자리…지방중수청 '미완의 출범'
전국 지방중수청의 첫날 풍경은 대체로 어수선했다. 중수청은 정원 2874명 가운데 66.1%인 약 1900명으로 출범했다. 초기 수사 인력 상당수는 검찰청에서 특례 임용으로 옮겨온 검사와 수사관들이다. 중수청은 추가 특례 임용과 경찰·변호사·회계사 등을 대상으로 한 경력경쟁채용으로 빈자리를 채울 계획이다.

수원지방중수청은 경기 수원시 광교신도시 경기신용보증재단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8~10층을 내년 6월까지 임시 청사로 쓴다. 이후 경기 성남시에 새로 짓는 청사로 옮길 예정이다. 수원중수청 정원은 343명이다. 현재 63.6%인 218명만 채워졌다. 첫 청장으로는 김형근 변호사가 부임했다. 청사 주변에는 공사 차량이 오갔다. 민원실에는 정리되지 않은 전선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일부 직원은 출범 직전까지 소속 부서를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건물에 수사기관이 들어서면서 입주사 직원과 방문객 사이에서는 불안해하는 반응도 나왔다. 수사 부서가 있는 층은 입주사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로만 오갈 수 있어 피의자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원 322명 규모의 부산지방중수청은 부산 강서구 명지동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출근한 직원들은 보안 시스템에 지문과 얼굴 정보를 새로 등록하느라 줄을 섰다. 사무실 곳곳에는 풀지 않은 서류 상자와 컴퓨터 집기가 쌓여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엘리베이터가 붐벼 고층 직원 일부가 비상계단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부 조직의 주요 업무 담당자도 아직 다 정해지지 않았다.
대구 남구 대명동 대구지방중수청은 일부 층에서 공사가 이어졌다. 대구중수청 안팎에서는 조직과 전산, 청사 정비 상황을 고려하면 연말까지 정상 업무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종시 소담동에 자리 잡은 대전지방중수청도 공사 자재를 실은 트럭과 시설 점검 인력이 드나들었다. 관사와 주차 공간 부족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불만도 나왔다.
고소·고발장 쇄도…접수증 없어 수기로 처리
중수청에는 개청 첫날부터 고소·고발장이 몰렸다. 서울 중구 본청·서울청 민원실에는 개청식 전부터 10여 건이 접수됐다. 개인 민원인과 시민단체들은 저마다 '1호 사건'이라며 취재진에게 고발장 사본을 나눠주기도 했다.
첫 고소장은 서울 관내 경찰관을 법왜곡죄 등으로 수사해 달라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들은 대기업 경영진의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배임 의혹, 시중은행의 탈세 의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직무유기 의혹 등을 담은 고발장을 잇따라 냈다. 현직 대통령과 정치인을 상대로 한 고발장도 들어왔다.

전산 시스템은 아직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다. 민원실은 접수 서류를 수기로 처리했다. 접수증 양식이 없어 도장을 찍은 고발장 표지 복사본으로 접수증을 대신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은 일부 기능만 먼저 열렸다. 나머지 기능은 12월에 열린다.
수원중수청과 광주지방중수청 등 다른 지방중수청에도 첫날부터 고소·고발장이 접수됐다. 대전중수청에서는 인력 사정으로 상담이 어렵다는 안내를 받고 발길을 돌린 민원인도 있었다.
간판 바꾼 공소청…인증서 오류로 민원 '먹통'
전국 공소청은 청사 외벽과 유리문의 '검찰' 표식을 '공소청'으로 바꿔 달고 업무에 들어갔다. 기존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 청사를 그대로 쓰는 만큼 시설 정비는 따로 없었다.
민원 창구에서는 혼선이 빚어졌다. 서울중앙지방공소청 종합민원실에는 이날 오전 업무 시스템 개편으로 접수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기존 검찰 인증서는 폐기됐다. 새 공소청 인증서가 직원들에게 제때 발급되지 않아 업무 권한이 설정되지 않은 탓이다. 업무 시작 시각에 맞춰 찾아온 민원인들이 접수를 못 하고 돌아가면서 곳곳에서 항의가 이어졌다.
공소청은 항고장처럼 제출 기한이 정해진 서류는 우선 수기로 받기로 했다. 기한에 여유가 있는 민원은 나중에 다시 제출하도록 안내했다. 공소청 본청은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사전에 발급 절차를 공지했는데도 일부 민원실 직원이 이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본청은 인증서를 받지 못한 직원부터 우선 발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공소청 민원실에는 전산 정비로 1~2일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대구지방공소청에서도 증명서 발급과 벌금 납부를 하러 온 민원인들이 그냥 돌아갔다. 민원실의 순번 대기표와 신청서에는 여전히 '검찰청'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수사관 상당수가 중수청으로 빠져나간 공소청도 바뀐 업무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청주지방공소청에서만 수사관 23명이 중수청으로 옮겼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구속 피의자 추가 조사 처리 등 새로 익혀야 할 지침이 수백 가지에 이른다는 말이 나왔다.
수장·인력·시설 공백…'사법 공백' 우려 여전
중수청과 공소청은 수장과 인력, 설비 어느 것도 온전히 갖추지 못한 채 출범했다. 중수청장 자리는 인사청문 절차가 끝날 때까지 비어 있다. 검찰총장 역할도 직무대행 체제다.
검찰에서 넘어온 미제 사건 처리도 과제다. 출범을 앞두고 전국 검찰의 미제 사건은 16만5000건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들은 경찰과 중수청으로 나뉘어 넘어간다. 공소청 검사는 불가피한 사건에 한해 최대 90일까지 수사를 이어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논평을 내고 보완수사권 폐지로 범죄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며 보완수사권 복원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