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묘소에 가져가겠다” 일본 땅에서 금메달 딴 '독립운동가 후손' 한국 선수, 눈물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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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태극기 높이 올린 독립운동가 후손의 금메달
할머니 유언 따라 선택한 한국 국적, 2년 재활 끝 아시아 정상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에서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렸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인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경북체육회)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허미미는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업어치기 유효승으로 제압했다. 전날 여자 52㎏급 장세윤이 은메달을 따낸 데 이어 나온 이번 대회 한국 유도의 첫 금메달이다. 생애 첫 아시안게임 출전에서 거둔 성과이기도 하다.
경기를 마친 허미미는 5대조 할아버지에게 금메달을 가져가겠느냐는 질문에 "가지고 가겠다. 이번에는 금메달을 땄으니까 아무래도 기분 좋게 가져가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 4강서 팔 통증… 결승은 10여 초 만에 승부 갈랐다
정상까지 가는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허미미는 앞선 경기에서 필리핀, 중국 선수를 잇달아 한판으로 꺾으며 기세를 올렸다. 고비는 4강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아마노바를 상대한 그는 상대의 무리한 공격에 왼팔 통증을 느꼈지만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상대의 반칙패를 이끌어내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힘을 앞세우는 몽골 선수를 상대로 오히려 먼저 몰아붙였다. 경기 시작 10여 초 만에 특기인 업어치기를 성공시켜 유효를 따냈다. 이후 지도 하나를 받았지만, 다급해진 상대의 공세를 노련하게 흘려보내며 끝까지 리드를 지켰다. 관중석 곳곳에서 흔들린 태극기도 그의 등을 밀었다.
허미미는 경기 뒤 이 장면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는 "평소에는 경기 초반에 점수를 따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오늘은 초반에 유효를 받았다"며 "시계를 봤더니 3분 50초나 남아 있어서 '이걸 어떻게 버티나' 싶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고 말했다.

■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수술 뒤 찾아온 가장 힘든 시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터져 나온 눈물에는 지난 2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허미미는 2024년 5월 아부다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7㎏급에서 우승하며 한국 여자 선수로는 29년 만에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나선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같은 체급 은메달과 혼성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결승은 아쉬움이 컸다. 세계랭킹 1위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와 정규시간 내내 팽팽하게 맞섰지만, 연장전(골든스코어)에서 세 번째 지도를 받아 반칙패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라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잇따랐다.
시련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허미미는 어깨 수술을 받으며 긴 재활에 들어갔고,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아부다비 그랜드슬램 정상에 오르며 반등의 신호를 보냈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예전 기량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허미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올라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불안은 결승 전날까지 이어졌다. 그는 "수술 후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다. 어제는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며 "친구들에게 연락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했다.
파리 은메달 이후 높아진 기대도 어깨를 짓눌렀다. 허미미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면서도 "주변에서 '금메달이 아니어도 된다'고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고 아시안게임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금메달을 딸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태극마크 달고 일본 땅에서 '금메달'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란 재일교포다. 중학생 시절 일본 전국대회 정상에 오를 만큼 현지에서도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태극마크를 택한 건 "한국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유언 때문이었다.
한국에 온 뒤에는 자신의 뿌리도 알게 됐다. 경북체육회 김정훈 감독이 선수 등록을 위해 그의 본적지를 찾았다가 독립운동가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경북도와 국가보훈처, 주일 대사관, 지역 면사무소까지 나서 가족 관계를 추적했고, 그 결과 허미미의 할아버지 허무부 씨가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증손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허미미 본인도 귀화 이후에야 자신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경북체육회와의 인연도 우연만은 아니었다. 경북은 허미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군위가 있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기량을 끌어올렸고, 2022년 첫 국제대회였던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곧바로 우승하며 한국 여자 유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허석 선생은 일제강점기 경북 지역에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1984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허미미는 파리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2024년 8월, 첫 일정으로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허석 선생의 기적비를 찾아 은메달과 동메달을 바쳤다. 당시 그는 "할아버지, 메달 따 왔어요"라고 인사를 건넨 뒤, "다음에는 금메달 갖고 올게요"라고 다짐했다. 올림픽 무대는 아니지만, 2년 만에 그 약속에 한 걸음 다가선 금메달을 손에 쥔 셈이다.

당시 참배에는 김진열 군위군수와 경북도체육회 관계자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모 화환을 보냈고, "허미미 선수가 선대의 용기와 투지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며 격려했다.
허미미는 대회 전 금메달을 가져가겠다고 한 다짐이 동기부여가 됐느냐는 질문에 "가져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시합에 집중을 많이 했다"며 "이렇게 금메달로 마무리돼 정말 기쁘다"고 답했다.
우승 직후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할머니였다.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을 들고 할머니 영전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허미미는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제가 선택을 했고, 이렇게 좋은 금메달을 달고 엄청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정말 감사하다"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 목이 메어 끝내 다 부르지 못한 애국가… "다음 스텝은 올림픽 금메달"
이번 금메달로 허미미는 오래 품어온 바람 하나도 이뤘다. 그는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시상대 맨 위에서 따라 부르기 위해 애국가를 외웠지만, 은메달에 그치며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당시 그는 "(애국가를) 연습했는데 너무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선 꼭 부르고 싶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은메달은 할머니에게 바쳤지만, 시상대 맨 위에서 부르는 애국가는 숙제로 남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어려운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애국가 1절을 다시 익혔다.
하지만 정작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목이 메었다. 허미미는 몇몇 구절만 작게 따라 불렀다. 그는 "다 외웠는데 막상 시상대에 서서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를 들으니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나오려 했다. 눈물을 참느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 한국어도 전보다 늘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어머니의 나라이자 자신이 국적을 내려놓은 일본에서 열린 대회였던 만큼 부담도 남달랐다. 허미미는 대회를 한 달 앞둔 미디어데이에서 "일본에서 하니까 조금 더 긴장도 되고 부담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부담을 이겨내고 오른 시상대였기에 의미는 더 컸다. 일본 국적을 내려놓고 태극마크를 택했던 그는 이제 자신이 자란 일본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아시아 정상에 서며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아시아 정상에 선 허미미의 시선은 벌써 다음 무대를 향하고 있다. 그는 3일 열리는 혼성단체전에서 대회 2관왕에 도전한다. 이번에도 정상에 선다면 파리에서 못다 부른 애국가를 다시 한번 시상대에서 들을 수 있다. 장기 목표는 2028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에서 파리의 은메달을 금메달로 바꾸는 것이다.
허미미는 "다음 스텝은 올림픽 금메달"이라며 "우선 이번 대회 혼성단체전에서 2관왕에 도전한 뒤 올림픽을 향해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