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재단 엄청난 분노...영화 '암살자(들)' 상대로 결국 '2가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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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긴 영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육영재단, 박정희학술원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 제작진에게 대국민 사과와 영화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세 기관은 1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박정희 대통령과 그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긴 ‘암살자(들)’의 제작진과 관계자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영화가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실제 사건에 근거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세 기관은 “역사적 사건의 외형만을 차용한 채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마치 실제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것처럼 묘사해 국민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행위는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영화 '암살자(들)' 출연 배우. (왼쪽부터) 박해일, 유해진, 이민호 / 뉴스1
영화 '암살자(들)' 출연 배우. (왼쪽부터) 박해일, 유해진, 이민호 / 뉴스1

이어 영화가 1974년 발생한 국가적 비극을 흥행과 오락의 소재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세 기관은 “특히 국가적 비극을 흥행과 오락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역사적 인물과 유족, 나아가 해당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상처와 모욕감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오랜 기간 쌓아 온 빛나는 성취까지 좀먹는 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세 기관이 제작진에 요구한 내용은 세 가지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부분에 대해 국민과 유족, 관련 당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역사적 사실처럼 전달해 발생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에 대해 책임 있는 해명과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당 영화의 상영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암살자(들)’은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로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발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미수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사망했다.

영화는 이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문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당시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건의 경위 외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옛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가설 가운데 하나로 다루고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놓인 박 대통령 내외 사진 / 뉴스1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놓인 박 대통령 내외 사진 / 뉴스1

일부에서는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 측이나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기획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장면을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작진은 영화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제작진은 지난달 28일 공식 입장문에서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사건과 관련하여 작성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고 밝혔다.

이어 “본 작품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라며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창작 의도와 성격을 넘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영화로 해석하는 데에는 선을 그었다.

허진호 감독 역시 논란이 커진 뒤 직접 입장을 밝혔다. 허 감독은 지난달 30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피격을 지시했다는 내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허 감독은 “박정희가 육영수를 죽이라고 시켰다는 내용을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다”며 “그 부분은 모순되고 개연성이 없다”고 말했다.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영화 '암살자(들)'
영화 '암살자(들)'

다만 허 감독은 중앙정보부 개입 가능성을 다룬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기록과 증언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영화가 아무런 자료 없이 특정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관련 다큐멘터리와 인터뷰, 당시 사건을 둘러싼 여러 자료를 검토한 뒤 영화적 가정을 더했다는 취지다.

허 감독은 앞서 “이렇게까지 폄하될 줄은 몰랐다”며 배우와 제작진이 작품에 참여한 과정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박정희가 육영수를 죽였다’, ‘북한 영화를 따라 했다’, ‘김정일이 사과했다’는 식으로 영화에 대한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세 개가 다 다른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영화의 제목인 ‘암살자(들)’ 역시 논란의 한 부분이다. 복수형 표현을 사용해 실제 사건의 저격 주체가 문세광 외에 더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제작진은 제목과 영화 속 설정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정적 판단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치권에서도 영화에 대한 입장이 엇갈렸다. 국민의힘 등에서는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온 반면, 영화가 허구적 설정을 포함한 극영화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 전 시의원은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것처럼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이에 대해 영화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공개된 기록과 자료 등을 토대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 첫 공식 기념메달 출시 / 뉴스1
박정희 대통령 내외 첫 공식 기념메달 출시 / 뉴스1

영화의 상영 중단이 실제로 가능한지도 관심사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만으로 곧바로 행정기관이 상영을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다. 국내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를 거쳐 상영되며, 영화비디오법은 전체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으로 등급을 나눈다. 이 가운데 제한상영가는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해 인간의 존엄이나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어 상영과 광고·선전에 제한이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다만 제한상영가 제도 역시 역사적 사실을 잘못 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금지하는 제도는 아니다. 현행 법상 제한상영가 영화는 제한상영관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한된다. 즉 영화의 내용과 표현 정도가 법에서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역사적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의 상영을 막는 방법으로는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절차도 있다. 실제로 법원은 과거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유가족 등이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상영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다만 상영금지가 인정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법원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사용한 자료의 확실성과 신빙성, 제작진이 실제 사건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조사했는지, 영화 내용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함께 고려한다. 과거 법원은 실제 사건과 영화의 내용이 일부 다르더라도 관객이 영화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오인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영화 자체의 상영을 금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영화나 홍보 과정에서 허구의 내용을 실제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 특정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별도의 금지 조치가 인정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