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사카에 조국 세우는 재일조선인 소년의 이야기… 독자들 과몰입 부른 '신인만화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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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삶 다룬 화제작, '오사카 환상선'
'오사카 환상선' 혀나현 작가 인터뷰
재일조선인: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거주하게 된 교민을 일컫는 말. 일본에 정착하여 일본 국적을 취득하거나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살고 있는 동포를 가리키는 재일 교포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난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만들 거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조국을."
어디에서도 깊숙하게 다루지 않는 '재일조선인'들의 삶이 웹툰에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오사카에서 핍박과 멸시를 받으며 고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의 이름은 바로 <오사카 환상선>이다.
<오사카 환상선>은 지난해 연재를 시작해 초반부터 웅장한 서사와 밀도 높은 전개로 큰 관심을 받았으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매주 토요일 연재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반 역사물과 사뭇 다르다. 학창 시절 배우는 역사책에도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토록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다. 많은 독자가 놀라는 지점은 학창 시절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역사책에서도 깊이 배우지 못한 역사를 웹툰을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사카 환상선>은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 당시 여러 집단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낸다. 메인 주인공은 12살 소년 '김용'이다. 김용은 1968년 오사카에서 아픈 할머니,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지만, 김용은 남한으로도 북한으로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들에게 핍박당하고 부당한 시비를 겪어야 했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조선인’이라고 불리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김용은 매번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일본인 또래 친구들과 다투어 왔음에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똑같이 그 애들을 응징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큰 사고를 저지르게 되고, 상대의 머리를 돌로 내리친 탓에 결국 경찰서까지 연행되고 만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자포자기하던 김용의 앞에 한 야쿠자가 나타난다.
야마자키 건설사의 통제 하에 있는 야쿠자 집단 ‘히자쿠라회’의 아나이 코지는 김용에게 위험한 제안을 건넨다. 지하철 건설을 막아 서고 있는 조선인 부락의 우두머리 이시범의 위조된 신분증을 가져오면 이번 일을 선처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민하던 김용이었지만, 빼앗긴 돈의 10배를 주겠다는 말과 각박한 집안 사정을 떠올리며 결국 제안을 수락하고 조선인 부락에 잠입하게 된다.
김용은 조선인 부락에 이시범과 그의 딸인 '마루'라는 여자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그 마을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며 정체를 숨기지만, 눈치 빠른 이시범에게 얼마 가지 않아 들통나고 만다. 이시범은 괜히 조선인들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시범은 김용을 벌하기보다 "조국을 세울 것이다"라는 장대한 목표와 마을의 사연을 설명해 주며 김용이 야쿠자와의 거래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조선인'이라고 불리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김용은 처음에는 이 계획에 반신반의해 한다.
하지만 이시범이 김용의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김용은 자신 때문에 이시범이 떠났다는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김용은 12년 인생(?)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소속되고 싶지 않았던 이 아이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이시범의 뜻을 이어받아 그의 딸 마루와 함께 이시범이 남긴 흔적을 찾아 ‘조국 세우기’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프롤로그'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뒤로는 용이와 마루에게 도움을 주며 친구가 되는 타쿠와 아오이, 그리고 북관과 남관으로 나누어져 이념 대립을 하는 등 매번 패싸움이 벌어지는 엉망진창인 학교 내에서 각 관의 리더로 군림하고 있는 백산과 준고가 등장한다. 단순히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더욱 거대한 이해관계를 형성한다.

이 작품이 특히나 호평을 얻은 지점은 독자가 그 누구의 편도 쉽게 들 수 없도록 각 캐릭터의 서사를 무척 촘촘하고 입체적으로 쌓아 올렸다는 데 있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은 자신이 애정하는 캐릭터나, 읽다보면 더 마음을 울리는 서사를 가진 캐릭터 등에 과몰입하고 그 캐릭터의 편에 서서 작품을 읽게 된다. 하지만 '오사카 환상선'은 다르다. 각각의 사연과 서사를 지닌 등장인물들은 독자가 어느 누구의 편에 설 수 없도록, 그저 그들의 서사에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특히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는 캐릭터들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예를 들어, 언제나 품행이 바르고 신뢰를 줄 것 같았던 남관의 리더 준고가 알고 보니 야쿠자와의 뒷거래로 거액의 자금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반전과 거칠어 보이지만 내면에 인간적인 면모를 품은 북관의 리더 '백산'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토록 촘촘한 서사와 역사적 사건 사이에 1960년대 오사카의 스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시대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혀나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이고 독보적인 작화와 섬세한 연출은 작품의 완성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거칠고 어두운 시대적 비극과 차별 속에서도 인물들 사이에 피어나는 끈끈한 유머와 뭉클한 감동을 놓치지 않으며,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깊은 여운을 주는 명작 웹툰으로 자리매김했다.
남과 북의 이념 대립 속에서 각자가 처한 현실과 생존의 문제가 맞물려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남과 북 혹은 일본이라는 거대 체제 사이에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던 재일조선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독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진정성 덕분일까. '오사카 환상선'은 탄탄한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아 제23회 부천만화대상에서 신인만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심사위원단은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삶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는 시대적 공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밀도 높은 서사와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통해 신인 작가로서의 완성도 높은 작품성과 향후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묵직하고도 섬세한 이야기를 탄생시킨 혀나현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을까.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오사카 환상선>을 그리게 된 계기와 그 안에 담은 진심을 전했다. 다음은 <오사카 환상선>의 혀나현 작가와의 일문일답.
"독자님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만화를 그리겠다"...작품에 진심을 담는 혀나현 작가
- 제23회 부천만화대상 신인만화상 수상 소감과 함께, 수상을 어느 정도 예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연재를 시작한 신작들 중에서 굉장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신인만화상 수상 조건인 ‘연재 이력이 없을 것’이라는 제한 때문에 제가 운 좋게 수상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전혀 예상을 못 했고, 7월 중에 편집자님께 수상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 왔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모로 현재의 저에게 과분한 상이라고 느꼈지만, 그에 걸맞은 작품이 될 수 있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연재에 임하고 있습니다.

-재일조선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독자들의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오사카 환상선>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만화를 그려서 공개된 장소에 게시해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보니, 공모전에 1화를 처음 투고할 때는 그야말로 눈 감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이 작품을 봐주시고 재미있다고 해 주셔서 어안이 벙벙하고 무척 기뻤습니다.
-작품을 연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독자들의 반응이나 인상 깊었던 댓글이 있었다면요.
최근 들어서는 독자님들께 의외성이라는 재미를 방해 없이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댓글이나 반응을 의도적으로 덜 보려 하는 편입니다. 꼭 필요한 피드백은 지인에게 한번 걸러서 듣는 식으로요.
하지만 연재 초반에는 하나하나 소중하게 들여다봤었어요. 본인의 경험을 얘기해주시는 댓글이나 저도 미처 몰랐던 고증 이야기를 하는 댓글들도 많이 기억에 남는데요. 아직까지도 가장 인상깊었던 반응은 공모전 당시 처음 1화 원고를 공개했을 때 달렸던 댓글입니다. 게시 후 반나절 정도 지나고 댓글이 3개인가 4개 정도 달려 있었던 시점이었는데요. 갑자기 전체 댓글이 8개로 훅 뛰어서 봤더니 어떤 분이 이 만화 너무 재미있다고 댓글을 세 개나 연속으로 달아주신 거예요. “너무 재밌다.” “정말 재밌다.” “와! 이 만화 정말 재밌다.” 이런 식으로요. 세 개라니! 그때의 놀랍고 기쁜 감정이 정말 크고 생생해서, 아직도 그분 닉네임이 기억나요.

-'오사카 환상선'의 기획 계기가 무엇인가요. 타이틀인 '환상선'에 담긴 중의적 의미나 의도가 궁금합니다.
작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시작점을 꼽자면 일본에 잠시 거주하던 시절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이에요.다들 일본을 좋아해서 그곳에 모인 친구들이다 보니 자연스레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이런 점이 우리나라 정서하고는 달라서 신기하다, 일본인의 특성은 이러이러한 것 같다, 일본의 이런 점은 마음에 드는데 이런 점은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이야기들이요. '일본'이란 뭘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것도 있잖아요. ‘외부에서 바라본 일본’이라는 주제에 한동안 빠져 있었는데, 그 흐름에서 자연스레 재일조선인에 대한 테마로 관심사가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오사카 환상선>이라는 제목은 몇몇 분들이 추측해주시는 대로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제목인데요, 연재하며 차차 풀어가볼 생각입니다!
-196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복잡한 역사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데, 기획 시 참고한 내용이 있다면요.
가장 많이 참고했던 자료는 학술 논문들이고, 국내에 번역된 재일조선인/류큐인 관련 서적들은 최대한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전부 읽어보려 했습니다. 많은 서적과 논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특히 작가이자 평론가이신 고(故) 서경식 선생님의 저서에 큰 빚을 졌습니다. 도쿄경제대학 교수로 지내시며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평생에 걸쳐 여러 에세이와 학술서를 쓰신 분이신데요. 작품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에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주셨습니다.
-"역사 공부를 하고 싶어진다"라는 독자들의 반응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사카 환상선'에 더 과몰입하기 위해서 참고하면 좋은 책이 있을까요.
참고 문헌 목록은 단행본 말미에 수록될 예정인데요.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 독자분들 중 <오사카 환상선>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테마나 실제 사건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미리 몇 권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전개에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면서도 <오사카 환상선>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모두 흥미롭게 읽으실것 같은 책들이에요.

<그림의 길, 음식의 길>(홍성익) - 재일조선인 화가이자 덕산물산 3대 경영자이신 홍성익 회장님의 자전적 일대기입니다.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은 회화 작품으로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식품회사를 창립하게 된 후 사업가로서 대성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언뜻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화가의 길과 사업가의 길을 어떤 방식으로 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매혹적인 책입니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마쓰시타 류이치) - 현재 연재되고 있는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전공투' 이야기를 조금 더 폭넓게 알아보고 싶은 독자님들께 추천드립니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의 시점은 제 작품보다는 더 나중의 이야기이고, 또 작중에 등장하는 전공투 학생들과는 약간 다른 노선의 조직이 등장하는 책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생소할 수 있는 '전공투'라는 집단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해 추천드립니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일본전몰학생기념회) -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학도병들의 유고를 모은 책입니다. 이 책도 <오사카 환상선>의 시대적 배경보다 20년 정도 앞선 전쟁 시기를 다룬 책입니다만,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핵심적인 뿌리인 20세기 초 제국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깊게 알아가볼 수 있는 좋은 책이기에 추천드립니다.

-극 중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하고 있는 백산과 아연, 그리고 용이와 마루 등등 유사 가족 설정도 독자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포인트입니다. 역사와 개인의 서사를 유기적으로 엮어낸 노하우나 연출 방법이 있으신가요.
자료조사를 선행하고, 그에 맞춰 실제 있었던 이슈나 정치적 쟁점에 캐릭터들이 깊게 연관될 수 있는 사건을 구상해 기승전결을 맞춰가는 식으로 스토리를 짰습니다. '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꼭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일화는 정말 흥미롭다' 싶은 부분들을 최대한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지향점 중 하나로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말씀해주신 백산-아연, 용이-마루의 관계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종류의 서사인데요. 제가 ‘와, 좋다’라고 생각하며 그린 것들을 ‘오, 이거 좋네요’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인생에 얼마나 드물게 찾아오는 행운인지 곱씹곤 합니다. (웃음)

-메인 주인공인 '김용'은 고작 초등학생임에도 독자들 사이에서 '상남자', ‘안정형 남주’라 불릴 만큼 묵직한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주요 캐릭터들의 설정을 잡으실 때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다양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잘 전달할 수 있게 대비와 통일감을 주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의 개성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용이와 마루는 나란히 있을 때 남매처럼 보였으면 해서 비슷한 무드로 디자인했고, 타쿠와 아오이는 모든 요소를 다 반대로 놓고 만들었어요. 마루는 넷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설정이라 무대포적이고 과감하지만 서툰 면이 돋보였으면 했고, 그런 특성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용이는 정석적인 "소년" 이미지에서 조금 더 어른스럽고 침착한 캐릭터가 됐습니다.
외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로 따지면 더 거칠고 소년미 있는 쪽이 용이/타쿠, 더 섬세하고 선이 얇은 쪽이 마루/아오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또 성격적 분류로 따지면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쪽은 용이와 아오이,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는 쪽은 타쿠와 마루인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넷이 각각 다양한 조합으로 묶인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재밌어하는 포인트입니다. 이 점도 꼭 이후의 전개에서 재미있게 풀어가보고 싶어요.

-김용이 점점 조선인 부락 사람들과 동화되며 '오사카에 조국 세우기'라는 거대한 계획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 심리 변화를 어떻게 표현했나요.
용이는 백지 같은 아이로 설정하고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설정하는 편이 초반부 여러 사건과 설정을 설명하고 독자님들이 이입하는 데에 더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변화했다기보다 오히려 말씀해주신 것처럼 부락 사람들과 동화되고 '내 편이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캐릭터성이 탄생하고 김용이라는 인물이 제 안에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토록 묵직하고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서사의 중심에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독자님들 입장에선 생소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해야 할 일이 작중에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지한 어린아이들로 주연들을 설정하는 편이 독자님들이 읽어나가시기에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친숙한 '소년 만화'의 틀 안에서 이야기를 꾸리고 싶었던 마음도 커서, 10살~12살 외에 다른 나잇대는 처음부터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작품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눈에 띄는 작화 스타일이 인상적입니다. 이 매력적인 비주얼을 완성하기까지의 대략적인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매주 미리 짜 둔 대략적인 스토리라인에서 한 화의 상세한 글 콘티를 줄글로 작성하고, 그림 콘티를 만든 다음, 마감에 맞춰 작화를 그리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현재 배경 작화는 전부 어시스턴트이신 '이후'님이 맡아주고 계십니다. 그림 콘티를 짜면서 동시에 배경 구도를 에셋으로 지정하고 이후님께 보내면, 제가 인물 작화를 하는 동안 이후님은 제가 지정한 배경을 하나하나 손그림으로 바꿔 작업한 후 보내주십니다. 벌써 1년 남짓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고 이제는 정말 든든하게 너무 잘해주고 계셔서, 저도 항상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이후님께 늘 감사하고 아무쪼록 끝까지 쭉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당시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레퍼런스로 삼았던 숨은 명작이나 자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후님과 함께 작업하기 전인 초반부에는 가로(ガロ)계 만화들에 등장하는 쓰게 요시하루 풍의 배경 묘사들을 많이 모사하려고 했어요. 마침 시대적 배경도 60년대~70년대로 동일하고요. 다만 역시웹툰 포맷에서 구현되기에는 한계가 많더라고요. 초반에는 제가 동경하고 뒤쫓고 싶었던 작풍이 도무지 구현되지 않는다는 점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타협하고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발전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중고 서점의 사진집 코너에서 몇 시간씩 죽치고 있곤 해요. 대표적으로 <昭和の大阪>, <大阪市の昭和> 같은 책들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체적인 작풍상 초반에 많이 영향을 받고, 지침으로 삼고 따라가려 애썼던 작가님들을 꼽아보자면 츠치다 세이키(土田世紀), 유즈키 카즈(ユズキカズ), 타츠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 세 분입니다. 츠치다 세이키의 작품은 <밤의 제왕>이라는 시리즈물만 한국에 정발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책보다 훨씬 러프한 화풍으로 그려진 <未成年>이라는 단편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애정이 가는 캐릭터나 장면 혹은 독자들 반응이 좋을 것 같다고 예상한 부분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독자님들이 좋아해주신 부분들이 대개 저도 좋아하고 공들여 그린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또 중간에 자를 부분이 마땅치 않거나 독자님들께 한 호흡으로 보여드리고 싶어 평소 분량보다 길게 그려진 회차들은 작업할 땐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애정이 가곤 하는데요. 예를 들어 조선학교 첫 에피소드인 36화는 평소 분량의 1.7배였는데, 이때 이후로 한 주에 더 긴 분량을 소화할 수 있게 되어서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 분기점처럼 느껴지는 회차입니다.
또 주인공 4인방 외에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는 조선학교 교사로 등장하는 '송미주'를 꼽고 싶은데요. <키사라즈 캣츠아이>(木更津キャッツアイ)라는 드라마의 '미레이 선생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입니다. 미레이 선생님은 마음 여린 선역이고 주인공의 든든한 지지자이지만 어딘가 허당이고 동시에 좀 사악한 면이 있는 인물인데요.
기 센 갸루 학생들에게 허구한 날 무시당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등 여러 수모를 겪지만, 알고 보니 뒤에서 학교를 폭파하려고 한다든가 하는 음침한 귀여움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미주도 미레이 선생님과 비슷하게 '어른이 왜 저렇게 책임감이 없냐' '아이들에게 좋은 보호자가 아닌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그런 좀 못 미덥고 살짝 고문관스러운 점까지 통틀어서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오사카 환상선에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완결 시점이나 이후 전개는 말씀드리면 재미가 떨어질 것 같아 말을 아끼겠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다시피 작중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중요한 무대 중 하나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오사카 시내에서 북쪽으로 30~40분 정도만 전철을 타고 가면 1970년 당시의 엑스포 회장 일부를 보존해둔만박기념공원이 있는데요.혹시나 오사카에 여행갈 일이 있다면 이곳에 꼭 들러서 당시의 분위기를 경험해보시고 <오사카 환상선>의 이후 전개를 기대해보시면 즐겁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즐겨봐주시는 독자들을 위한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작업을 하며, 그리고 다른 작품들을 지켜보며 깨달았던 점을 감히 말해보자면 어떤 작품이든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정말로 그만큼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꼭 <오사카 환상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작품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주간연재를 지속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만화가 될 수 있을지 고심하고, 몇 년이고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작품을 사랑해주는 독자님들의 마음과 피드백이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생계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독자님들이 더 많은 기대를 걸수록 그만큼 작가에게도 개인의 역량을 초월하는 힘이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몇 작품씩 신작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웹툰을 수시로 디깅하고, 추천 글을 작성하고, 자신이 재미있게 본 만화를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품을 들여 한 번이라도 더 언급해 주는 많은 분들을 지켜보면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런 분 한 분 한분께 업계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감사한 분들의 힘으로 한국 만화가 더 풍부해지고,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내주시는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넘어, 독자님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만화를 그리겠다고 꼭 약속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