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1심 무기징역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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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1심 무기징역
귀갓길 여고생을 성범죄 목적으로 납치하려다 살해한 장윤기(23)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3부(재판장 이정호 부장판사)는 30일 오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윤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0시 10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인적 드문 보행로에서 귀가하던 고교 2학년 이채원 양(17)을 성범죄 목적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이 양이 강하게 저항하자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양의 비명을 듣고 도우러 달려온 고교 2학년 남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두 사람 모두 장윤기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선고 공판은 이날 오후 2시 광주지법 법정에서 진행됐으며, 사건 발생 약 5개월 만에 나왔다. 장윤기는 지난 6월 22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네 차례 공판을 거쳤다. 첫 공판이 열린 날은 공교롭게도 이 양이 세상을 떠난 지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경찰은 수사 단계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범행의 잔혹성 등을 고려해 장윤기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 사형 구형에도 무기징역…'강간 등 살인'은 사형 아니면 무기
장윤기에게 적용된 성폭력처벌법 제9조 제1항의 강간 등 살인죄는 강간 등의 죄를 범한 사람이 피해자를 살해했을 때 적용된다.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두 가지뿐이다.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형법상 일반 살인죄보다 처벌 수위가 훨씬 무겁다.
다만 재판부가 작량감경을 적용하면 유기징역으로 형이 낮아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장윤기의 뒤늦은 자백과 반성문이 감경 사유로 받아들여질지도 관심사였다. 공판 과정에서는 자백 등이 감경 요소로 인정되면 무기징역보다 형량이 더 내려갈 수 있다는 법조계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무기징역 아래로 형을 낮추지는 않았다.
검찰은 지난 8월 3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장윤기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신상정보 공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보호관찰 명령도 함께 청구했다.
검찰은 "피고는 5월 3일 자정부터 5월 5일 자정 무렵까지 불과 이틀 동안 피해자 3명을 상대로 강간 등 상해, 살인, 예비 강간 등 살인, 살인 미수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가 사회에 복귀할 경우 재범의 위험이 매우 높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장윤기의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 결과는 기준점에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정서적 고위험성과 냉담한 반응을 고려하면 살인과 성폭행을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검찰은 장윤기가 불특정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케이블 타이 등을 미리 준비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고, 잔혹한 방법으로 생명을 빼앗았다고도 했다. 도우려고 나선 남학생에게까지 중상을 입힌 점도 죄질을 무겁게 보는 근거로 들었다.

■ 범행 이틀 전 동료 성폭행…"극단선택 전 길동무" 주장
장윤기의 범행은 이 양 사건 이틀 전부터 이어졌다. 그는 5월 3일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20대 베트남 국적 여성을 13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은 경찰에 신고한 뒤 다른 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장윤기는 휴대전화 유심칩을 뺀 채 30시간가량 여성의 집과 직장 주변을 맴돌았다. 경찰이 보낸 스토킹 경고 문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 여성을 찾지 못한 장윤기는 5월 5일 0시께 일면식도 없는 이 양을 노렸다. 검찰은 이틀 사이 벌어진 동료 여성 성폭행과 스토킹, 이 양 살해, 남학생 살인미수 등을 한데 묶어 장윤기를 재판에 넘겼다.
장윤기는 경찰과 검찰 조사 단계에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경찰 역시 처음에는 단순 살인 혐의만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혐의를 강간 등 살인으로 바꿨다. 장윤기가 이 양을 등 뒤에서 제압한 뒤 차량 쪽으로 끌고 가려 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동료 여성을 성폭행하기 직전 상황과 수법이 겹치는 점도 근거가 됐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지난 6월 2일 장윤기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장은 검경 수사 과정에서 (이양에 대해) 자살 전 길동무라는 주장을 거듭했지만, 피고의 휴대전화에서는 자살에 관한 어떤 검색 기록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범행 당시 장윤기가 차량 뒷문을 열어둔 사실도 변경된 공소장에 반영됐다. 장윤기는 차량에서 발견된 케이블 타이에 대해 "과거 컴퓨터를 구매할 때 함께 산 것"이라며 범행과 관련이 없다고 맞섰다.
■ 영상 증거 앞에 뒤늦은 자백…10여 장 반성문도 제출
수사 내내 성범죄 의도를 부인하던 장윤기는 지난 7월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입장을 바꿨다. 법정에서 범행 당시 영상 등 증거를 직접 확인한 뒤 검찰이 적용한 성범죄 목적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유족 측은 장윤기가 형량을 낮추기 위해 태도를 바꿨다고 반발했다. 검찰 송치 당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 장윤기는 법정에서는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기는 10여 장 분량의 반성문도 법원에 냈다. 반성문에는 "뒷생각 없이 무책임한 생각으로 피해자를 해쳤다. 그로 인해 수많은 분에게 영향을 미치고 당연했던 일상의 한 조각을 앗아갔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심 공판 최후진술에서는 "한 가정에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피해자께 송구스럽고 평생 죗값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 측 김문석 변호사는 "(피고인이) 형식적으로 모든 범죄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의도를 부인하면서 사실상 억울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라며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달 중순에는 광주교도소에서 장윤기와 같은 동에 수감됐다는 수용자가 MBC에 제보를 했다. 장윤기가 무기징역보다 사형을 받고 싶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수용자는 장윤기가 사형수에게 붙는 빨간색 명찰이 "멋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장윤기에게서 반성하는 기색을 찾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당시 장윤기는 감시 필요성이 높은 수용자에게 붙는 노란색 명찰을 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딸 이름·얼굴 공개한 유족…사형 확정은 2016년이 마지막
응급구조사를 꿈꾸던 이 양의 부모는 지난 6월 1일 딸의 이름과 얼굴을 직접 공개했다. 부모는 장윤기가 다시는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엄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부모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을 꿈꾸고 누군가를 돕는 일을 좋아했던 아이를 잃은 뒤 가족의 삶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며 "딸의 억울함을 풀고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심신미약이나 거짓 반성문 같은 변명으로 부당한 감형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정 장관은 청소년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악질 범죄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6월 21일에는 광주시교육청 시민협치진흥원에서 이 양의 49재 추모식이 엄수됐다.
사건 초기 수사를 맡은 광주 광산경찰서는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광산서 수사팀장은 장윤기의 성범죄 의도를 입증할 핵심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형사과장은 살인과 성범죄 사건을 나눠 수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청 특별수사단이 그에게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두 번째 영장 심사 뒤에도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로 기각 사유를 밝혔다.
1심 판결에 불복하는 검찰이나 피고인은 선고일로부터 7일 안에 항소할 수 있다.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이 유족의 엄벌 요구를 받아들여 항소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장윤기 측도 형량에 불복해 항소할 수 있다. 항소가 제기되면 사건은 광주고법에서 다시 다퉈지게 된다.
한편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확정된 사례는 2014년 강원 고성 22사단 GOP(일반전초)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숨지게 한 임모 병장이다. 임 병장은 2016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이후 국내에서 사형 확정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이다. 한국은 30년 가까이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생존 사형수는 57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4명은 군형법에 따라 사형이 확정된 경우다.